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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25. 2022

멋진 그 청년

이웃

 

아침 산책길에서였다. 무거운 연장을 메고 가는 청년을 만났다. 어깨에 둘러멘 연장은 집이나 도로 고치는 데 쓰는 것 같았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청년의 어깨에 내리쬐었다. 한 손으로는 어깨의 연장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물병을 들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그마한 키에 단단해 보이는 몸집으로 볼 때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아직 소년티를 확 벗지 않은 모습이었다.


“손에 든 물병 내가 들어줄까요? 난 사거리까지 가는데요.”

청년이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미소 띤 맑은 얼굴이었다.

“아, 아닙니다. 무겁지 않아요.”

목소리도 맑았다.


“연장이 무거울 것 같은데, 바꿔서 메지 그래요. 그러려면 손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왜 나는 공연히 친절하게 말을 거는 걸까. 아들과 딸은 그런 행동에 질색한다. 그래도 안쓰러워서 말을 안 걸 수 없었다. 꼭 우리 학생들 같아서 그럴까. 엄마 또는 선생의 마음으로. 그 청년과 그렇게 대화를 하며 걷게 되었다. 그도 사거리에 있는 작업장으로 가는 중이란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실내 인테리어를 한다고 했다.


“그 일 재밌어요? 공간이 새롭게 꾸며지면 기분 좋죠?”

“네, 아직은 아빠 따라다니며 일 배우는 중이라 시키는 일만 해요. 그래도 완성되면 무척 기분 좋죠. 아빠는 40대부터 하셨는데, 지금은 오십 대 후반이에요. 돈도 많이 버셨고, 일이 적성에 맞아 오래 하신대요.”

청년은 말을 잘했다. 묻지도 않는데, 세세한 이야기까지 했다. 시종 웃으면서 말하는 바람에 나도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럼 전공이 실내디자인 뭐 그런 건가요?”

“아뇨, 저는 대학 안 갔어요. 지금 스무 살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아빠한테 일 배우고 있어요. 공부에 워낙 취미가 없어요.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걸요. 흐흐. 지금이 훨씬 좋아요.”

건강한 청년이다. 현재 하는 일에 조금도 불평하거나 대학 안 간 것에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내가 실례를 한 것은 맞는데, 청년의 말을 들으니 하나도 실례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만큼 경쾌했다.


“네, 그래 보여요. 아주 건강한 생각이고요. 멋집니다.”

그는 또 싱긋 웃었다. 생면부지의 청년과 걷는 아침 산책이 기분 좋았다. 사거리에서 그는 작업장으로 갔고, 나는 돌아서 집 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더욱 가볍고 마음도 경쾌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계속 감돌고 있었다.


물오리는 유유히 물 위에 떠 다녔다. 수크령은 무성해지고, 갈대도 긴 목을 흔들었다. 길가에 핀 원추리와 달맞이꽃도 청초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길, 그 멋진 청년의 미소와 당당하면서 친절한 말이 기분 좋게 만들었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화된 지 오래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물려받을 거라던 청년의 자신에 찬 목소리가 듣기 좋았던 것은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꼭 정해 놓은 틀대로 사는 게 좋은 것일까. 그건 또 누가 정했을까. 당당하게 자기의 삶을 주도적으로 산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실업이 문제라기보다 정해 놓은 대로 살지 않으면 결핍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태도가 문제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면서 살아왔다. 학업을 이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새로운 것에 겁내지 않았고, 어긋난 발걸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을 가지 못할 때도,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결핍이 많아도 부끄러워하거나 현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청년에게 말을 붙이고 대화함으로써, 기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나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산뜻한 감정이 밀려오면서 발걸음이 가뿐했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청년의 맑은 얼굴과 목소리가 고스란히 기억난다. 스무 살밖에 안 된 그 청년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율성이었던 것 같다. 자기가 결정하고 실행하며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보다 좋은 게 있을까. 누가 뭐래도 자기의 길을 스스로 알고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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