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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15. 2022

이대로 좋은데

정민이

   

신학기가 시작된 첫 주였다. 3월은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안고 있는 달인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달이므로. 그건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생도 마찬가지다. 2학기보다 1학기의 시작은 언제나 그랬다. 그날은 1학기 첫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새내기들은 언제나처럼 풋풋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자, 한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교수님, 저 정민인데요.”

“네.”

“저, 정민이라고요.”

“그래요. 무슨 할 말 있어요?”

출석부와 교재를 정리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저 OO어린이집…….”

“어? 잠깐! 그 정민이? 애기?”

“네, 원장선생님, 저예요.”


예전에 내가 운영하던 어린이집에 다니던 정민이었다. 형제가 같이 다녀서 작은아이인 정민이에게 꼭 애기라고 불렀는데. 그 정민이가 벌써 대학생이 되어 내 강의에 들어온 것이었다. 정민이는 나를 알고 수강 신청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아 다가와 물었다고 했다. 


우리는 학교에 있는 카페로 갔다. 나보다 키가 훨씬 커버린 정민이는 어릴 적 모습이 남아 있었다. 일곱 살까지 어린이집에 다니고 학교에 들어갔으니까 벌써 십삼 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어쩌면 시간은 그렇게 빨리 흐른단 말인가. 정민이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렇게 두 번 나의 제자로 만나게 된, 정민이. 특별한 인연이었다. 


정민이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게 상담을 했고, 나는 성의껏 조언하고 용기를 주면서 한 학기를 보냈다. 어느 때는 결석이 잦아 전화와 문자를 하면서 출석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강좌를 이수했지만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과락을 면한 것이 나는 다행스러웠고, 정민이는 죄송해했다. 그 후 여름방학이 끝나고 바로 입대를 했고 나와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또 십여 년이 흘렀다. 오늘 정민이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전화번호가 바뀐 적이 없기 때문에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대뜸 정민이 소식부터 물었다. 

“정민이는 어떻게 됐어요?”

“직장에 잘 다니고 있어요. 가끔 원장선생님 이야기해요.”

“그래요? 저를 잊지 않았던가요? 우리 학교에서 다시 만났잖아요.”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교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정민이는 학교 졸업 못했을 거예요.”

“졸업을 했나요? 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대요?”

“성적을 그렇게 받았는데, 죄송해서 그랬대요. 그래도 제대 후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했어요.”

정민의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간신히 과락을 면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좋은 성적 주지 못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정민이 형은 어떻게 되었어요? 정기 말이에요.”

“어머! 이름도 아직 기억하세요?”

“그럼요, 어린이집 제자들은 다 기억해요. 오래 다녀서 그런가 봐요.”

“정기도 직장 잘 다녀요. 여자 친구도 있는 걸요.”

“어머나! 귀여워라. 결혼할 때 꼭 연락 주세요.”

“오시게요?”

“그럼요, 제자 결혼하는데 당연히 가야죠.”

우리는 모처럼 전화통화인데도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온갖 수다를 떨며 통화를 했다. 아이들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더구나 어릴 적 에피소드들은 고스란히 떠올라 옛날을 불러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조만간 정말 얼굴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정민이는 정작 내게 연락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내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안다. 멋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어서 그런다는 정민어머니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했기 때문이다. 


또 두 번이나 제자로 만났다는 게 특별하다. 그런 학생은 단 한 명 정민이뿐이다. 그래서 내게 남다르다. 선생은 제자들이 자기 몫의 일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보람인데. 제자들은 뭔가 특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대로도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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