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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n 08. 2023

대형 카페, 소박한 카페

그녀와 함께 


오후 2시 45분. 해야 할 공적인 일은 다 끝났다. 집으로 가서 쉬다가 저녁 식사를 한 후, 저녁 산책만 하면 된다. 물론 이 일은 사적인 일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오전에는 강의, 오후에는 내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 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울감이라고 표현했지만 허전함 같은 정서다. 이런 날은 누구를 만나 차라도 한 잔 하는 게 좋다. 


불쑥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마침 근처에 살고 있는. 전화했다. 집에 있단다. 차 한 잔 어떠냐고 물었다. 흔쾌히 좋다고 했다. 최근에 알게 된 여성이다. 시를 쓰는. 내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 차를 타고 남한산성에 간 적이 있는데, 마음결이 섬세하면서 따뜻했다. 그 여성이 불쑥 떠오른 것은 그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만나도 부담이 없을 것도 같은. 


그녀를 만나 근처 카페로 갔다. 우리나라 곳곳은 카페 천국인 것 같다. 어딜 가도 다양한 카페가 즐비하다. 주택가든, 근린상가 지역이든, 공원 근처든. 심지어 아무도 살지 않는 도로변에도. 천지사방에 널린 게 카페다. 언제부터 이렇게 카페문화가 우리 삶 속에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카페 순례가 취미라는 이도 있다. 그럴 만하다. 경치가 괜찮은 곳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자리하고 있으니까. 


엊그제만 해도 그렇다. 옛 동료 몇 사람이 만나 식사 후 차를 마시기로 했다. 차 마시는 것보다 공원이나 산책로 걷는 게 더 낫지만, 따라나섰다.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다는 거였다. 자기 차를 따라오란다. 앞서 가는 차는 한참 달렸다. 내 차에 합승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딜 가기에 이렇게 계속 달리는 거냐며 투덜댔다. 일단 가보자고, 우리를 어디 이상한 곳으로야 데리고 가겠느냐고 했다. 앞선 차의 운전자가 목사님인데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차가 멈춘 곳은 공장 같은 큰 건물 하나만 덜렁 있는 곳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입이 떡 벌어졌다. 수백 대 차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제3주차장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별천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에 온 것 같았다. 주차장 근처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갖가지 꽃들이 피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목사님은 익숙한 듯 차를 세웠다. 나도 따라 세우고 내렸다. 


아무런 실내디자인이 돼 있지 않은, 어찌 보면 마감이 덜 된 건물인 것 같은 내부로 따라 들어갔다. 카페다. 그곳은 더 놀라웠다. 가득 찬 사람들 때문이었다. 정원에 마련된 곳에 자리가 없었는데, 카페 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간 두 사람이 이쪽저쪽 두 건물 안을 살핀 다음에 겨우 한 자리가 있다며 전화로 연락했다. 어리벙벙했다. 이런 곳이 카페라니.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주택가가 아니고 그저 산 아래 도로변인데. 


자리 잡았다고 연락한 두 분에게 전화로 커피 주문을 받았다. 솔직히 혼란스럽기만 했다. 조용한 카페가 아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그곳. 생경했다. 촌스러울지 몰라도 그랬다. 커피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목사님이 그보다 먼저 할 게 있다며 이끌었다. 따라갔다. 빵이다. 천연발효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갖가지 빵이 전시돼 있었고, 많은 이들이 역시 줄을 서서 빵을 골랐다. 가격도 일반 제과점 빵보다 비쌌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보고 목사님이 빙긋 웃으셨다. 


빵과 주문한 커피를 들고 자리 잡은 곳으로 왔을 때 또 놀랐다. 그 넓은 곳에 빈자리가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요,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웃었다.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고 산만했다. 경치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우리는 서둘러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맛은 좋았다. 하지만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안내했던 목사님은 가끔 가족들과 온다고 했다. 


그녀의 집 근처 카페는 소박했다. 2층이다. 아래층에서 커피 주문을 했고 2층으로 올라갔다. 커피를 갖다 주겠다고 했기에. 2층은 갤러리였다. 여덟 명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고, 두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마시는 사람들도 그림으로 인식될 정도로 고요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저만큼에 탄천이 흐르고, 더 멀리에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산이 보였다. 산수화 같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왔다. 나는 디 카페인이다. 그녀가 말했다. 디 카페인은 맛이 다르다고. 진정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없다고. 그래도 할 수 없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보다 나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는 이야기로 시작해 문학 이야기, 여행 이야기, 가수들 이야기까지.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는 사이 허전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 집으로 가서 사적인 내 일정을 소화하고 싶어졌다. 의욕이 생겼다.


그녀는 왜 벌써 가느냐며 아쉬워했다. 자기를 불러줘서 고맙다는 말도. 정겨웠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엊그제 갔던 대형 카페보다 오늘 그녀와 갔던 소박한 카페가 내 취향에 맞았다. 그 카페에 가끔 가야겠다. 책 한 권 들고 가서 조용히 읽다 와도 좋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한 폭의 그림이 되리라. 마음을 맑히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 주위 풍경과 함께 나도 풍경이 되는 곳, 그 카페.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따뜻한 그녀의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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