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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06. 2022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우연히 찾게 된 선생님


우연히, 그래 우연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은 것이. 물론 마음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린 어구도 그거였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소설을 쓸 때에는 우연한 사건이어서는 안 된다. 원인과 결과에 의한 일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내가 선생님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든 건,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문학과 선생님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관련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꿈이 문학가와 교사였던 나는 마흔 살에 대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때부터 선생님 생각이 났다. 찾고 싶었다. 그리고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나는 숫기 없는 소심한 아이였다. 쓸데없이 생각만 많고 공상과 상상하기를 즐기는. 노인이 돌아가셔서 상여가 나가면 망연히 그것을 바라보며 울적해져,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람은 왜 죽는 거예요.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언제 돌아와요. 등등. 어머니는 이상한 소리 말고 나가서 놀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며 담장에 기대 있거나, 쭈그리고 앉아 땅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숫기 없고 소심한 아이였던 내가 쓴 글이, 어느 날 교실 뒤 게시판에 걸렸다. 원고지에 쓴 것이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나풀나풀 나부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 원고지를 쳐다봤던지.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해 여름 완도에 있는 초등학교와 우리 학교가 자매결연을 하게 되었다. 계기는 그 학교가 수해를 입어, 우리가 학용품을 모아 보내주게 되면서다. 선생님은 나와 친구 한 명에게 위문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학용품 상자 속에 편지를 넣어 보냈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선생님이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게시판에 붙었던 글 덕분이다. 그 외에도 나의 예민함이나 환경, 문자 중독에 가까운 글 읽기 등 여러 여건들이 작용했겠지만. 후에 작가가 되고 선생이 되면서 내게 영향을 끼친 선생님을 찾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교육청에 알아보고, 선후배들을 통해 알아봐도 오래전이라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 때문에 출판사에 갔던 날이다. 수필가 한 사람이 책을 내기 위해 와 있었다. 대화중에 초등학교 교사로 퇴임했고, 우리 고향 근처 학교에 근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심코, 내가 찾고 싶은 선생님이 있는데 이ㅇㅇ선생님이라고 했다. 그 수필가는 대뜸 선생님을 안다는 거다. 당신 친구라며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 근무했단다. 


선생님은 시인이며 수필가로 활동하며 서울 근교에 살고 계셨다.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쉽게 선생님을 찾았다. 간혹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심할 때, 우연한 기회에 풀리는 경우가 있다. 꼭 그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해도 안 되었는데, 의외로 쉽게 그것도 우연히 해결되다니. 


출판사에서 나와 선생님께 당장 전화를 했다. 기막히게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심지어 소심하고 숫기 없는 아이였다는 것도.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장 만나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당장은 물론 당장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뭐 그리 복잡한지 생각대로 안 되었다. 친구 몇에게 선생님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로나마 그들도 선생님과 사제의 정을 나누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되기 전에 선생님을 만났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세련되고 고운 선생님. 선생님은 유난히 까맣고 큰 눈이 여전하다며 웃으셨다. 출간한 책 몇 권을 들고 가서 드렸다. 기꺼워하는 선생님께, 작가의 꿈을 구체화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그래, 선생의 말 한마디에 제자의 일생이 걸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돼. 알고 있지? 나는 그게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그랬어? 나는 여전히 선생님의 학생이었다. 


지금도 선생님과 한 번씩 만나며 지내고 있다. 지난번에는 전화하셔서 맛난 밥을 사주겠다며 만나자고 하셨다. 내 퇴임 기념으로. 그게 벌써 몇 달이나 미뤄지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만나기로 했다. 이제 제자와 스승이 친구처럼 보일 정도로 세월이 지났는데, 선생님만 만나면 나는 어린이가 된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로. 괜히 징징대고 어리광도 부린다. 선생님은 다 받아주시고. 


후에 나의 제자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영향을 끼친 게 있을까. 겨우, 군대 가는 남학생에게 밥 사준 것, 면접 보러 가는 학생에게 간절히 기도해준 것, 밤이고 낮이고 카톡이나 전화로 질문하면 귀찮아하지 않고 답변해준 것, 최대한 내 재량껏 편의를 봐준 것 등 사소하고 시답잖은 것들뿐인데. 리포트 왜 안 내? 하루 늦으면 1점씩 감점이야! 이런 말을 안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녹록하지 않은 선생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바라는 것을 이루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고 싶은 간절함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그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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