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그날 새벽에도 비가 내렸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였다. 새벽기도를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비가 많이 내려서. 꼭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잠시 망설였다. 갈까 말까.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왕복 2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교회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이는 교회 십자가인지라, 작정한 기도를 포기하고 다시 누울 수 없는 노릇. 우산을 들고 나섰다.
찻길을 건너 교회 앞에 다다르니 벌써 바짓가랑이는 흠뻑 젖어 있었다. 꾹꾹 눌러 빗물을 짰다. 주르르 물이 흘렀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새벽이었다. 새벽예배 장소는 지하였다. 계단에도 물기가 제법 있었다. 조심, 또 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순간 물기 때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주저앉으며 드드드득 몇 계단을 엉덩이로 내려왔다. 앗차!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엉덩이와 허리가 아팠다.
마침 새벽기도에 오던 교우가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속으로 회개했다. 비 때문에 갈까 말까 갈등한 약한 믿음을. 뭐든지 흔쾌히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불상사가 일어날 때가 많다. 그건 아무래도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더 이상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계속 욱신거리는 허리와 엉덩이 때문에 불편했지만 참으며 예배를 마쳤다.
허리를 잡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거리가 십 리는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예사롭지 않게 걷는 나를 보고 물었다.
“왜 그래?”
“나 좀 부축해 봐요. 넘어졌어요. 허리와 꼬리뼈를 다친 듯해요.”
“어디서?”
“교회 계단 내려가다 빗물 때문에 미끄러졌어요.”
“그래? 근데 교회는 괜찮아?”
“뭐라고요?”
눈을 하얗게 흘겼다. 남편은 히힛거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리 장난을 좋아해도 그렇지,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아내에게 할 소린가 싶었다.
“아니, 왜 교회 땅을 사려고 그래. 다른 곳에 사지. 그 땅 좋지도 않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장난을 친다.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심각성을 몰라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시끄러워요. 파스 있나 찾아봐요.”
남편이 파스를 허리에 붙여주었다. 일이 심각하게 된 것을 그제야 알고 괜찮으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후 한 달 가까이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다. 그동안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썼지만 나는 쉬 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별 것도 아닌데, 그까짓 걸 가지고 마음 상했던 내가 우습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도 섭섭했다.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장난이나 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어긋나는 마음 때문에 서로 갈등할 때가 많았다, 우리 부부는.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아무것도 아닌데. 남편은 그런 방식으로 내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을 거고, 그 정도로 다쳤을 거라곤 생각 못했을 것 같다. 일단 걸어서 들어가긴 했으니까.
이 나이만큼 살아보니, 부부처럼 특별할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겠다. 그가 나고 내가 그니까. 내 마음을 나처럼 비슷하게라도 알아줄 사람이 그밖에 더 있을까. 여행을 가도 가장 편한 동행자가 되고, 어떤 일을 도모할 때도 가장 좋은 협력자가 되는 사람이 부부다. 옆에 건강하게 있을 때는 잘 모르는. 그것을 깨달을 때면 옆에 남편이나 아내가 없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다 마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남편 꿈을 꾸었다. 건강한 그와 나 그리고 아이들이 물 맑은 고향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꿈이었다. 우리는 굵은 다슬기를 한 움큼씩 손에 들고 함박웃음을 웃었다. 어찌나 즐겁고 신나던지, 다슬기는 왜 그리 많던지, 꿈속에서 한없이 행복했다. 잠에서 깨어나니 베개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눈과 얼굴에도 눈물이 흥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