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간다. 걸어서. 늘 걷던 천변 산책로를 따라 2km 정도 가면 치과가 있다. 동네가 새로 생기면서부터 있는 곳이다. 평소와 달리 길이 생소하다. 이유는 있다. 이가 많이 상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일이 생기면 태연하지 못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청둥오리가 물에서 놀고 있건만 평소와 달리 말을 걸지 않고 걷는다. 재두루미와 두루미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데 신기하지도 않다. 오로지 내 치아에 신경이 집중돼 있다.
오른쪽 윗니가 부서졌다. 안에서 두 번째 어금니다. 땅콩 두 알 먹을 때였다. 이 무슨 황당한 노릇인지. 세 알도 네 알도 아니고 겨우 두 알 먹는데 이가 부서지다니. 그것도 튼튼하기로 이름난 어금니가. 혀로 가만히 더듬어보니, 어금니 안으로 포옥 들어가면서 거칠거칠한 것이, 부서진 게 틀림없다. 땅콩에 부서진 치아부스러기가 섞였는지 어석거린다. 먹기를 그치고 양치를 했다. 찬물이 닿거나 뜨거운 물이 닿으면 시릿하다.
먹던 것들 모두 그만두었다. 소식(小食)을 해도 영양분이 결핍되면 안 될 것 같아 땅콩을 몇 알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억지로라도 소식을 하게 생겼다. 막 볶아놓은 땅콩은 유난히 고소했다. 지난번 안산에 갔던 날,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거라며 동생이 준 땅콩이다. 그래도 어금니가 이렇게 되었으니 덧정 없다. 땅콩을 밀폐 통에 넣어 냉동실에 휙 던져 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충치라면 아프기라도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어금니가 그리 힘없이 부서져 내릴 수 있는 걸까. 내 몸이 부실한 걸까. 기운이 없지 않고, 의욕이 없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식욕이 떨어진 것 또한 아니고. 지난번 건강검진 결과도 특별히 이상소견 없었다. 그날 치아 검사도 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 튼튼한 어금니가 매칼없이 부서진단 말인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즘, 한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 감다가 허리를 삐끗해 치료 중이라고 하지 않나, 또 한 친구는 넘어졌는데 손목을 다쳐 깁스를 했다고 하지 않나, 들리는 소리가 모두 아프고 부서졌다는 소리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우리도 이제 늙어 가는가 보라며, 아픈 얘기 하면서도 키득거렸는데.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땅콩 먹다, 그것도 겨우 두 알 먹다, 어금니가 부서졌다고 해야 하나. 심란하다.
치과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싫지만 급하니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아치료를 미루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치과 특유의 치이, 샤아 하는 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까지 들린다. 아, 저 소리, 너무도 싫다.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치료할 때 나는 소리는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린다. 치료 과정에서 날 수밖에 없는 소린데.
내 차례가 되어 치료실로 들어갔다. 그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며 의사가 설명해 주었다. 치아가 무단히 그런 게 아니고, 오래전부터 금이 조금씩 가다가 딱딱한 음식물을 먹을 때 버티지 못하고 부서진 거란다. 아주 조금이라 그냥 때우기만 해도 된단다. 다행이다. 당일로 해결이 되니까. 부서진 곳을 때우고 스케일링을 했다. 아까 밖에서 들었던 소리가 내 입에서 한동안 났다. 두 손을 꼭 쥐고 참았다.
의사에게 물었다. 왜 치아가 부서지는 거냐고. 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노화죠. 노화, 삶의 여정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마음은 늘 같은데 몸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니, 더 물을 게 무언가 말이다. 더 이상 묻지 않고 치료 의자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부드러운 것으로 먹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다음날부터 전에 발치한 곳 임플란트를 시작하잔다. 그러겠다고 했다. 미루고 미루었던 임플란트. 오늘 고기 먹으면 안 돼요? 내 물음에 의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될 수 있으면 부드러운 걸로요, 하면서.
천변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조급하다. 부서져야 할 아집은 더 견고해지고, 튼튼해야 할 치아가 그렇게 부서지다니. 아직도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말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주희가 권학문에서 읊은, 미각지당 춘초몽(未覺池塘 春草夢)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이란 말인가. 연못가의 봄풀은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뜰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을 알리는 것처럼.
임플란트를 하니 ‘새 이’ 같더라는 친구에게, 까치가 ‘헌 이’ 물어가고 ‘새 이’를 갖다 놓은 줄 알았냐고 놀렸는데, 내가 임플란트를 하게 생겼다. 치아치료받으며 남의 일처럼 놀렸던 것도 반성해야 한다. 내게는 닥치지 않을 줄 알고, 한 치 앞도 못 보고 그랬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물론 친구는 웃으며 받았지만 말이다. 이제 남의 일이 모두 내일이 되고 있다. 겨우 땅콩 두 알 먹다가 이가 부서지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청둥오리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싱긋 웃어주었다. 아까 모른 척했던 게 미안해서다. 전화벨이 울린다. 딸이다.
“어디야?”
“왜 물어.”
“참나, 어디시냐고.”
“치과 갔다 와. 산책로다, 왜.”
“무슨 일로 심통이 나셨어?”
“뭐야! 끊어.”
“아, 아니, 정말 왜 그래.”
“땅콩 두 알 먹다가 이가 부서져서 치과 다녀와. 임플란트도 시작하재.”
“난 또 뭐라고. 자연스러운 거잖아. 노화라구.”
“뭐야! 나, 너, 내 딸 하기 싫어. 끓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기분 상한다. 저는 안 늙을 줄 아나. 거리 두기 더 심화해야겠다. 무엇을 더 추가할까. 그 생각하며 걷다 보니 바로 집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