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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14. 2023

별명 2 : 먹잇감을 찾다, 책벌레

오늘의 나를 위한 전주곡

    

한동안 내 별명은 ‘책벌레’였다. 어쩌면 못난둥이가 붙여준 별명 ‘쳇바퀴’보다 더 먼저부터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정진을 못난둥이로 지칭하는 것은 지극히 내 사적인 감정이니 이해하시라. 다시 생각해 보면 못난둥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키가 작고 나보다 앞에 앉았으며, 수업시간에도 나를 돌아다보며 입모양으로 ‘쳇바퀴’하고, 얼른 칠판을 보던 그 얄미움 때문에 그렇게 지칭한 것뿐이다. 나는 키 큰 사람보다 키 작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절대 키 때문도 아니다. 오로지 가장 두루 불렸던, 내 속을 상하게 한, 그 별명의 작명자라는 게 부정적 감정의 시초였을 뿐이다. 


‘책벌레’는 가족이나 친척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린 별명이다. 지금도 간혹 불리고 있으니 어쩌면 평생 별명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화장실에 갈 때 교과서를 들고 들어가면, 다 읽어야 나왔다. 교과서밖에 읽을 책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이 또 살림하러 가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늦게 나온다는 말이었는데. 옆집 상희네 오빠들 교과서까지 읽을 정도로 문자중독이었다. 옆집 오빠들도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다. 


형설지공을 익히 들어봤겠지만 ‘달빛지공’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지어낸 신조어니까. 말 그대로 달빛에서 책을 보아 보람을 얻었다는 의미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분부로 채점을 하고 나면, 나를 도서실로 데리고 가셨다. 책 두 권만 골라라. 선생님 말씀에 두 권을 고를 때, 모두 읽고 싶어, 이것 들었다 저것 들었다 하면, 세 권도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빌린 동화책들을 손에 들었을 때, 그 행복감 때문에 가슴이 뛰곤 했다. 


집까지 참고 갈 수 없어 신작로에서 책을 읽으며 갔다. 돌부리에 차이고, 어쩌다 차가 지나가면 뽀얗게 흙먼지가 일었다.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을 제대로 보려면, 밤이 되어야 했다. 하교 후 집에 가면 숙제하랴, 집 소제하랴, 동생들 보살피랴, 바빴다. 그러다 보면 꼭 밤이 돼야 빌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밤에 등잔불 아래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할머니가 석유 기름 닳는다, 그만 어여 자,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할머니 말이 법이었다. 


할머니의 ‘자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안타까워 견딜 수 없다. 셜록 홈즈가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무두장이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까, 백조왕자의 옷을 다 짤 수 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고 있을 때, 창호지를 통해 하얗게 달빛이 들어왔다. 살그머니 책을 들고일어나 나가, 빗자루를 깔고 봉당 한쪽에 앉았다. 교교하다고 해야 할까, 고요하다고 해야 할까, 달빛이 흐르는 밤의 분위기는 신비했다. 그 희고 밝은 빛으로. 달빛 아래서 책을 읽었다.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눈이 밝을 때라 그랬는지, 절실해서 그랬는지,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때도 가족들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다.


방학 때마다 외가에 갔다. 나를 데려다 놓고 어머니가 집으로 가셔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책 때문이었다. 사범학교에 다닌 외숙들이 계셨던 덕분에 다양한 책이 있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 농민잡지들까지. 한자가 섞인 아주 작은 글씨로 세로 쓰기 한 책들, 누렇게 바랜 책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났다. 그 책들은 골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비춰가며 책을 읽었다. 골방이어서 어둑했고, 흙벽에서는 가끔씩 흙이 오스스 떨어졌으며, 천장에서는 쥐들이 뛰어다녀 우르르 소리가 나던 방이었다. 책이 쌓인 한쪽에는 곡식과 잡동사니들이 있던 그 골방, 내가 문학적 감성을 키운 산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대화, 복네 도캇구나에서 ‘도캇구나’의 뜻을 몰라 얼마나 고심했던지. 그것이 ‘좋겠구나’의 평안도 사투리라는 걸 그로부터 한참 후에 알았다. ‘왈순아지매’ 만화를 처음 본 것도 그 골방에 쌓여있던 잡지에서다. <제인 에어>도 그때 읽었는데, 모두 초등학교 때였다. 대부분 이해되지 않았고, 섞여 있는 한자 때문에 어림짐작으로 읽었다. 그렇게 읽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했던지. 그때부터 내가 문학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것 같다. 그 행복감을 지속하고 싶어서. 


외가에서 불린 별명도 ‘책벌레’였다. 내가 가면 외삼촌은 책벌레 왔니? 하셨고, 외사촌들도 그랬다. 외가에 가는 게 좋았던 건 외가 식구들의 환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책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주로 골방에서, 여름에는 마루에서 책을 읽었다. 이모와 외할머니의 이불홑청 고르는 다듬이소리를 들으며 대청마루에 엎드려. 소나무를 켜서 만든 마루에서 나던 향기, 안산에서 불어오던 솔바람, 여름이 더운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결혼 후 웬만큼 삶이 안정되자 다시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가정살림과 일과 학업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살림과 일은 관록이 붙어 그런대로 했지만 학업은 쉽지 않았다. 문예창작학과 특성상 읽을 책은 물론, 창작해야 하는 리포트가 늘 쌓였다. 그래도 해낼 수 있었던 건, 읽고 싶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읽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책벌레’에게 책처럼 좋은 ‘먹잇감’이 어디 있으랴. 


지금도 간간히 책벌레로 불린다. 엄마는 뭐 책벌레니까, 당신은 책벌레잖아, 언니는 옛날에도 책벌레였어 등등. 괜찮은 별명이다. 아니 영원히 듣고 싶은 별명이다. 국민학교 때 정진이가 붙여준 ‘쳇바퀴’도 ‘ㅊ’이 들어가고 ‘책벌레’도 ‘ㅊ’이 들어가며 내 성도 ‘ㅊ’이 들어가는 게 재밌다. 거기다 다음 음절의 초성도 ‘ㅂ’ 또는 ‘ㅁ’으로 유사하다. 이렇게 나는 비약을 잘하고 상상이나 공상도 잘하는 그쪽의 대가다. 아무튼 못난둥이 정진이가 지은 별명을 시작으로 또 한 편의 글을 지었다. 


이렇게 모든 건 맞물리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사람의 생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잔인하거나 소중하거나 특별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삶을 쓸쓸하게도 따뜻하게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인생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못난둥이로 지칭한 정진이에게 우정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정진이는 ‘못난둥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잘난둥이’도 아니지만. 그냥 내 어릴 적 친구 ‘정진’이다. 어디서든 자기의 삶을 정진하는 자세로 살아가리라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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