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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13. 2023

별명 1 : 이름과 무슨 상관, 쳇바퀴

새삼 궁금하다 

  

내 별명은 한두 개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별명도 바뀌었다. 별명은 애칭 같은 것일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이미지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듣기 좋을 수도 있고, 때로는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별명인 것 같다. 별명 속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관심과 의도가 들어있고,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 별명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야말로 나의 흑역사 중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가는 발가벗겨지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기꺼이 공개하기로 한다. 물론 발가벗겨지는 게 싫은 작가도 있고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 그래야 글이 거침없이 써지고, 올해의 내 목표 중 하나가 ‘거침없이 쓰기’여서, 그것에 충실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처음 별명이 생긴 건 초등학교 때였다. 지금과 달리, 새침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순종적이고 공부 열심히 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숙제를 한 번도 빠뜨린 적 없고, 수업 중에 떠든 아이로 이름이 불리지 않는. 다행히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 부반장이나 부회장을 주로 했다. 그때는 여자가 반장이나 회장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모두 남자들이 했었다. 어릴 적에는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트집 잡거나 놀리는 일이 없었다. 하나의 권력일 수 있었을 테니까. 


고학년이 되자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반장과 부반장이 자기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5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 내 별명이 생겼다. 그것도 반에서 가장 작고 공부도 못하는 남자애가 지어 불렀다. 어이없고 기분 나빴다. 공부도 잘하고 멋진, 보기만 해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던 반장 ‘윤수’가 아니라는 게 더욱. 아, 난 그 애를 ‘못난둥이’로 부르고 싶다. 소심한 복수다, 이제 와서. 그 애 이름은 ‘정진’이었다. 공부에나 정진할 것이지, 되지도 않는 내 별명을 만들어 부르다니. 못난둥이. 


별명도 얼토당토않은 거였다. 국어시간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란 문장이 있었던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던가, 아무튼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 날 못난둥이가 나를 갑자기 ‘쳇바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성이 최가인 것 때문에 유추해낸 것 같은데, ‘쳇’씨도 아니고, ‘다’씨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의 초성이 ‘ㅊ’라 해도 멀어도 너무 먼 별명 아닌가 말이다.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못난둥이는 반에서 뿐 아니라, 내게는 더욱 아무런 존재감 없는 애였다. 공부 잘하고 잘생겨 내 마음 설레게 하던 윤수가 아니고, 왜 지지리 못나 보이던 정진이가 내 별명을 지어 부른단 말인가. 용납할 수 없었다. 우리 분단 옆 분단 맨 앞에 앉은 못난둥이는, 수업 중에도 슬쩍 돌아보며 내 눈과 마주치면 입모양만으로, ‘쳇바퀴’라고 하곤 바로 얼굴을 돌려 앞을 보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오빠라도 있다면 일러바쳐서 혼내주고 싶지었만, 그것도 아니고. 


복도에서 나와 못난둥이가 딱 마주친 날이었다. 왜 나를 자꾸 놀리느냐고, 내 이름과 쳇바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졌다. 못난둥이 정진이는 넌 최 씨니까 쳇바퀴지, 하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니, 우리 반에 최 가가 나뿐인가. 최 가는 네 명이나 되고, 이름까지 같은 아랫마을 최명숙도 한 명 있는데, 왜 내게만 그러느냐고 묻기 전이었다. 그때는 내가 그악스럽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한, 그저 열두 살짜리 소녀였을 뿐이다. 따라 들어가 더 따지지 못했다. 


하나씩 둘씩 내 별명을 부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 나를 ‘쳇바퀴’라고 부르는 애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옆 반 아이들까지 내 별명을 불렀다. 이상한 것은 남자애들만 내 별명을 부르는 것이었다. 여자애들은 내 별명 부르는 남자애들에게 나 대신 눈을 흘기며 쏘아주었다. 조금 지나자 남자 여자 두 편으로 나뉘어,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원수처럼 으르렁댔다. 그건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좋은 생각이나 행동이 그렇게 번져나갔으면 좀 좋으랴.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부담되었다. ‘남혐’과 ‘여혐’의 원조는 그때 우리 반 아이들이다. 


놀랍게도 남자애들 모두 내 별명을 불러도, 윤수는 절대 내 별명을 부르지 않았다. 그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던 우리 반 반장, 나의 윤수는 안 그랬다. 나의 윤수, 사감이 너무 들어갔지만 어쨌든. 못난둥이를 비롯한 반 남자애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그 애였다. 나와 반장 부반장 역할을 마음 맞춰서 잘하던, 내게 항상 살짝 웃는 모습으로 대해주던, 언젠가 같이 채점하고 하교하던 날은 내 책보를 들어준다고 했던, 윤수. 멋진 나의 윤수.


윤수는 자꾸 별명 부르며 놀리는 남자애들을 만류한 적도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책상에 엎드려 훌쩍거리던 날이었다. 그때는 왜 꼭 책상에 엎드려 울었는지 모르겠다. 느티나무를 붙잡고 울거나, 교실 뒤 벽에 기대어 울면 더 가엾고 낭만적으로 보였을 텐데. 여자애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 어깨를 다독여주며, 남자애들을 향해 원망의 눈길을 레이저 같이 쏘아대던 그날이었다. 그만해! 유치하게 그게 뭐야! 애들처럼. 백마 탄 왕자가 따로 있을까. 윤수가 왕자였다, 그날 내게는.


그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서서히 내 별명을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6학년이 되자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못난둥이 정진까지 부르지 않게 되고. 지금 생각해도 정진이는 얄밉다. 여전히 못난둥이다. 내 별명을 처음으로 지어 불렀다는 것만으로, 불경스러운 못난둥이다. 존재감도 없던 애가 어떻게 내 별명을 짓고 불렀던 것일까. 그만한 배짱이라면 무엇이든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사람은 열 번 된다니까 말이다. 


성인이 되어 동창회를 하게 되었을 때, 이상하게 정진이를 제일 먼저 보고 싶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사람 열 번 된다는데, 키가 컸을까.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만 정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다. 같은 동네 살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동네서 오래전에 가족이 모두 떠나 소식을 알 수 없단다. 나를 힐긋 돌아다보며 ‘쳇바퀴’라고 입모양만으로 쫑알대던 어린 정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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