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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29. 2022

공연히, 그런 날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때로 그런 날이 있다. 공연히, 마음이 싸해지면서 바람이 휘익 지나간다든지. 공연히, 서러운 일이 없는데 눈물이 주룩 흐른다든지. 공연히,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난다든지. 공연히, 한 줄 문장 속에 감정이 이입되어 견딜 수 없다든지. 공연히, 텔레비전의 먹는 장면에 한숨이 나온다든지. 공연히, 뒷산에 정신없이 올라가고 싶다든지. 공연히,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을 보며 그리움이 솟구친다든지. 그런 날, 공연히 그런 날이 있다. 


사춘기야, 오춘기야, 아니 육춘긴가! 없는 말을 지어내며 묘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마음을 정돈한다. 아직 감성을 잃지 않은 거야, 작가는 호흡이 멎는 날까지 그런 감성을 갖고 있어야 해. 작가적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감성이 필요해. 풍부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게. 덤덤하고 맨송맨송한 감성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언젠가부터 나를 인정하기로 한 거니까, 이런 부분도 인정하자. 사춘기, 오춘기, 육춘기도 아니고 소중한 나의 감성이라고. 


감성의 바탕이 되는 감정에 솔직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닌 척, 그런 척, 모른 척, 아는 척, 대부분 ‘척’하며 살지 않는가. 지금까지 그런 면이 있었다 해도, 이제부터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솔직 담백하게 다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도록. 호연지기까지 아니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쉽지 않겠지만 한 번 해보리라. 맑은 시냇물 속이 다 들여다보이듯 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솔직한 것은 아름다운 거니까. 


이제, 마음이 싸해지면서 바람이 휘익 지나가는 날은, 친구를 만나리라. 주머니 뒤집어 털 듯 마음을 다 털어놓아도 좋은, 언니이자 친구 같은 ‘한 작가’를 만나, 깔깔깔 웃고 떠들며 율동공원을 걸으리라.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도 늘 그랬듯 웃음이 멈추지 않을 테지. 번지 점프하는 곳을 지나 호수 가장자리에 언 얼음을 보며 겨울을 만끽하리라. 철새 떼와 물오리들이 우리를 쳐다보겠지. 그래, 그런 날은 그녀를 만나 실컷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먹고, 걸어야겠다. 


서러운 일이 없는데 눈물이 주룩 흐르는 날엔,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명동에 가야겠다. 사실, 옷을 예쁘게 차려입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강단에 설 때는 학습자들의 시선강탈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거의 무채색에 단순한 차림이었으니까. 마스크 때문에 립스틱 짙게 바르는 건 의미가 없고, 마스크라도 핑크색으로 써야지. 베이지색 코트에 엊그제 산 보라색 모자까지 쓰고. 북적이는 명동거리를 걸으며 눈요기를 하다가, 시장기를 느끼면 그 유명한 칼국수 집에 들어가 우아하게 칼국수를 먹을까. 아, 칼국수 먹는 장면은 아무래도 우아하지 않다. 아무튼. 


전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면, 가차 없이 전화기를 들리라. 콕콕 문자를 찍어 통화 괜찮아? 라며 눈치 보는 짓 하지 않고. 물론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을 확률이 99%지만. 거리두기고 뭐고 그만두고, 그런 날만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리라. 하나가 안 받으면 다른 하나에게 하겠다. 분명히 또 20초 만에 끊을 테지만. 그래도 어떠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봤으니. 또 자식인데 자존심 상할 게 무엇이랴. 


독서하다 한 줄 문장 속에 감정이입이 되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하리라. 독자가 그래야지. 글은 글대로 자기는 자기 대로면 독서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율곡 선생이 『격몽요결』의 ‘독서장’에서도 말씀하시지 않던가.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면 책 읽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감정이입이니까 그 의미 아닌가. 일단 감정이입이 되어야 감동을 하고, 그래야 실천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말은 된다. 


텔레비전의 먹는 장면에 한숨이 나오는 것은, 그 음식을 함께 먹던 사람이 생각나거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서일 게다. 그러면,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 가지고 와, 다듬고 조리하여 푸짐하게 차린 후, 함께 했던 좋은 시간들을 불러내 추억하며 먹으리라. 추억은 저장된 현재이니까. 언제나 불러낼 수 있는 현재, 그렇지 않은가. 소식(小食) 중이지만 그런 날은 배부르게 먹고, 햇살 고운 천변을 발밤발밤 걸으며, 눈부신 윤슬을 보리라. 


뒷산에 ‘정신없이’ 올라가고 싶은 날은, 또 그리 하리라. 산 좋아하는 내가 망설일 게 있으랴. 조붓한 오솔길을 지나 가파른 등산로에 다다르면 정신없이, 그래 정신없이 전투적으로 올라가자, 모든 힘을 소진할 때까지. 가끔씩 힘을 다 빼는 것도 괜찮다. 힘이 빠지면 욕심도 빠지고 순수만 남으니까. 언젠가 딸과 함께 산에 간 적이 있다. 서른 살 초반이던 딸이 그랬다. 엄마는 산도 전투적으로 전사처럼 올라간다고. 지금 생각하면 과히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다. 그때는 별로였는데. 그렇다면 ‘정신없이’를 ‘전투적’이라고 수정해도 되겠다. 그렇게 오르면서, 지금까지는 전투적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느긋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리라.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을 보며 그리움이 솟구친다면, 그래 그러자.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억지로 참고, 잊으려 애쓰고, 도리질하지 말고. 잊힐 날이 있으면 잊힐 것이고, 아니면 또 어쩌랴. 미워하는 것보다 그리워하는 게 낫지 않은가. 그리움은 사랑이니까. 추억이든, 사람이든, 장소든, 음식이든, 모든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하리라. 산다는 것은 그리운 것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때로, 공연히, 그런 날들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나서리라. 지난날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삶일 테니까. 내 삶의 주인공은 또 나니까. 주도적으로 내 삶을 더욱 알차게 엮어나갈 의무 또한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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