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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16. 2023

별명 4 : 흑역사 중의 흑역사, 땡삐

부정할 수 없는 나


‘땡삐’, 이 별명은 정녕 나의 흑역사 중의 흑역사다. 인자해 보이는 인상, 호구 취급받을 정도로 어리숙한 행동, 장난기와 웃음. 그것이 많은 나에게 이런 별명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과장되었거나 못난둥이 2세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작명자의 악의적인 의도 아니고, 이 별명으로 불릴 이유 없다. 하지만 수필의 특성이 허구가 아니고 솔직하게 쓰는 글이라고 하니, ‘솔직하게’ 공개한다. 그렇다, 집에서 내 별명은 ‘땡삐’였다. 


땡삐는 벌의 한 종류인 땅벌의 방언이다. 쳇바퀴, 책벌레, 울숙이를 거쳐 곤충 이름 별명까지 갖게 될 줄이야. 땡삐는 땅 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을 쏘지 않는다. 하지만 건드렸다간 친구들과 같이 총공격을 하기 때문에, 등산이나 벌초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할 벌 중의 하나다. 더구나 벌집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발견이 어렵다. 


가만 보면 내 속성과 땡삐의 속성이 닮았다. 건드리지 않으면 세상 둘도 없는 ‘요조숙녀’지만 불의한 짓을 하거나 내게 위해를 가할 때는, 결사적으로 덤벼들어 끝을 보고 말기 때문이다. 간혹 전사 같다는 말을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행동이 내게 손해 되고, 안 되고, 유익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일단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나의 성격. 불의하다 생각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빈다. 그런 무모하다시피 한 ‘용감함’을 쉰 살 이후로 버렸지만 계산하지 않는 그 순수함이, 지금도 나는 좋다.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억울함’이다. 그것은 위해를 가할 때 또는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오해는 대화나 행동을 통해 풀 수 있다. 하지만 악의적인 의도로 발생되는 것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따지며 교정하려 하는 게 내 속성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참을 인(忍) 자를 책상 앞에 써 붙여 놓을 정도로, 울분이 많았던 나다. 정당하지 않은 것처럼 억울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날로부터 현재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부당한 모습들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나에게 또는 이웃에게 부당하게 위해를 가하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럴 때도 땡삐처럼 달려들어 해결을 보곤 했다. 때로는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으나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물론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었지만. 그것 역시 쉰 살이 되면서 상당 부분 유연해졌다. 


그래서 쉰 살을 지천명이라고 하는 걸까. 하늘의 명을 안다는 것은, 바로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때라는 의미일까. 하긴 지천명도 공자님의 경우지, 나처럼 보통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닐 터다. 어쨌든 마흔 살 중반부터 쉰 살 중반까지 십여 년의 세월은, 나를 담금질하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조금씩 다듬어졌던 것 같다. 맹자 고자장구 하 15장을 그때 알았다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회갑이 넘어서 알고 무릎을 쳤다. 


‘땡삐’는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신혼 초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분가해서 어렵사리 살림을 일구어 나갈 때였다. 모든 게 내 생각과 부딪치는 상황을 겪어 나가기 힘들어 그랬을까. 뻔히 보이는 것도 인식해내지 못하는 게 답답해 그렇게 쏘아붙였던 걸까. 생각해 보면 그 별명을 그이밖에 부른 사람이 없다. 감히 누가 부르겠는가. 아이들이나 시동생 시누이들이 부를 수 없잖은가. 더구나 남들이 그랬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 


남편은 나와 의견이 부딪쳐 갈등할 때마다 으이구 저 땡삐, 라며 꼬리를 내렸다. 져주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어느 집이나 한 사람이 져야 집안이 평안한 법이니까. 나는 내가 져줬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아니었을지도. 그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심에서 땡삐라는 별명을 생각해 냈을까. 그래서 약 올리듯 그렇게 불렀을까. 내가 쏘아붙일 때마다, 꼭 못난둥이 정진이처럼, 땡삐 땡삐 하며 쭝얼거렸다. 얘들아, 니들 조심해라, 또 엄마한테 쏘일라. 땡삐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꼭 네 엄마 같단다. 쏘이면 붓고 아프고 쓰리고 엄청나, 하며 아이들을 향해 과장과 엄살을 떨어댔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분명히 ‘못난둥이 2세’ 정진이를 닮았다. 


이 별명을 공개하는 것은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내 품위가 훼손되는 행위다. 그래서 정녕 흑역사라고 보았다. 속으로 뭐 대단한 품위를 갖고 있다고 저러나 구시렁댈 독자도 있으시겠다. 그럴 수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독자도 있을 테고. 그러거나 저러거나 할 수 없다. 올해는 거침없이 쓰기로 했으니까. 또 독자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려 비위에 맞는 글만 쓸 수는 없잖은가. 아무튼 이 ‘땡삐’는 나에게 흑역사 중의 흑역사다. 지금의 이미지와 품위에 손상되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괜찮다. 그 또한 나니까. 


지금 나는 쏘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순을 넘긴 지 한참인데 지금도 그런다면, 사람 되기 멀고 먼 얘기가 될 테니, 안 될 일이다. 속엔 아직 그 속성이 남아있을지라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을 이중적이고 외식적이라 생각지 않는다. 조금은 익어서 치우치지 않고 중심 잡으려 애쓰는 흔적이라 본다. 내 삶의 여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나니까. 부정할 수 없는 나. 


이제 나는 땡삐로 불리지도 않는다. 이 나이에도 불린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밖에서든 집에서든 ‘땡삐’처럼 행동했던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의 내가 현재를 만들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또 못난둥이 2세 같던 남편의 사람 보는 눈을 인정한다. 그 혜안(?)이 아니면 과연 나를 아내로 선택했을까.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던 나를. 눈은 확실 좋은 사람이다. 하하하. 아주 오랜만에 자뻑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며 한바탕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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