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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17. 2023

별명 5 : 가당키나 한가, 최 장군

나도 여자다

 

나도 여자다. 그런데 ‘장군’이란 별명이 가당키나 한가. 성까지 붙여 최 장군. 뭔가 묵직하고 틀이 대단한 남자 같지 않은가. 나는 분명히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며 부드러운 여자인데 말이다. 아니 노파인가. 휴, 생각해 보면 ‘땡삐’보다 더 흑역사다. 그래도 공개한다. 지금까지 불렸던 별명 중에 마지막이니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남들은 하나 갖기 힘든 별명을 나는 다섯 개나 갖고 있다니, 이 시리즈를 쓰면서 나도 놀랐다. 나는 왜 이렇게 특성이 많을까. 특성이라기보다 별났던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별난 사람, 그래 어쩌면 나는 별난 사람이다. 별쭝맞다, 인정하자. 지금도 가끔 불리는 별명이 있다, 그건 ‘최 장군’이다. 두루 불리지 않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공개한다. 솔직해야 하므로.


이 전에 ‘캔디’라고 잠깐 불리기도 했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다. 캔디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에 예쁜 소녀는 아니지만. 또 학위논문 쓸 때는 ‘독종’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캔디 이미지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더 강화되었다. ‘왕씩씩’으로 지칭되었던 때도 있었다. 그것도 유사한 이미지다. 심지어 등산하는 멤버들은 내 종아리를 보고 ‘이만기 누나’로 부르기도 했다. 아, 이 별명은 지금도 산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불린다. 웃기잖은가. 좀 예쁜 별명을 붙여주지 않고. 모두 ‘땡삐’ 이후에 잠시잠깐 불렸던 별명이다. 그것으로도 한 꼭지 쓸 수 있겠으나, 구구절절해질 것 같아 생략하기로.  


최 장군, 이 별명을 부르는 사람은 몇몇 친구들이다. 몇 년 전에 ‘경’과 ‘화’, 두 친구와 함께 회갑기념 여행을 갔었다. 강릉과 대전에 사는 두 친구와 대전에서 만났다. 전주를 거쳐 고창, 해남, 강진, 통영, 남해 등으로 해서 다시 대전까지 4박 5일 동안 2,500km를 다녔다. 그건 완전히 쏘다닌 거다. 내 차 ‘소냐’를 타고. 2월 중순이어서 아직 길이 미끄러운 곳이 있었고, 도중에 눈을 만나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경이 붙여준 별명이다. 


경과 화는 뒷좌석에서 가슴을 졸였는데, 정작 운전자인 나는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더란다. 글쎄, 나도 남해 보리암 올라갈 때 차가 미끄러져 속으론 무서웠는데, 그것이 표출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경치 좋은 길을 따라다니느라 몇 번이나 경로를 변경하기도 했다. 그럴 때도 자기들 보기엔 내가 당황하지 않고 잘 찾아다녀서, 마음을 푹 놓고 여행했단다. 그때 붙여준 별명이 ‘최 장군’이다. 내 성에다 장군을 붙인 것이니 이 또한 연약한 여자인 내게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연약한 여자다, 무섬증이 많아 어둠을 싫어하고, 덩치 큰 사람을 보면 무조건 위축된다, 큰소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 떨려 말을 더듬게 되는, 약하디 약한 갈대보다도 더 약하고, 아이스크림보다도 더 부드러운, 여자 중의 여자라 해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온 식구로부터 친구 그리고 동료들까지. 어떤 사람은 내가 송충이도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데, 민달팽이도 맨손으로 못 집는다. 바퀴벌레는 손바닥으로 때려잡지만. 그렇다, 나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때려잡는 여자다. 


바퀴벌레가 인류의 마지막 식량이 될 수 있다고 해도, 보이기만 하면 때려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순식간에 개체수가 늘어 온 집안이 바퀴벌레 천국이 되기 때문이다. 김칫거리 다듬다가 푸릇한 배추벌레 한 마리만 나와도 엄마야! 소리치며 내던지고 달아나는 나였다. 그렇게 연약한 나였지만, 바퀴벌레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그놈은 인기척을 느끼면 빛의 속도로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휴지고 뭐고 가지러 갈 새 없이, 손바닥으로 딱! 온몸의 체중을 실어 후려쳐 잡아야 한다. 그래도 내 마음은 누구보다 약하다. 


내 별명이 어떻게 소문났는지 모르겠지만 몇몇 친구들은 나를 장군님, 또는 최 장군으로 부른다. 저 위쪽도 아닌데 장군님은 또 뭔지 말이다. 이렇게 다 늙은 종이호랑이 같은 장군도 있다던가. 하긴 저번에 텔레비전에 장군이라며 나온 사람 보니 곱상하고 샤프하여 전혀 장군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 이제 나도 별명에 이골이 나, 어떻게 부르든 웃고 만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싫어한다고 안 부르는 것도 아니니까.


최 장군으로 불리는 것은 솔직히 불만이다. 친구들이 내게 부탁을 할 때 또는 운전하게 할 때 최 장군으로 부른다. 그건 나를 힘 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해서 자기들 마음이 덜 미안해하려는 작전 같다. 그걸 안다. 그래도 그냥 둔다. 난 아무래도 이타적 성향이 강한 인간인 듯하다. 친구 간에 알면서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이 우정이라 생각하며 넘어간다. 일일이 따지면 관계만 나빠질 수 있어, 땅 팔아 해결할 일 아니면 따지지 않는다. 속으론 불만이더라도. 


딸은 내 팔뚝을 보고 소도 때려잡겠다 하고, 아들은 나를 ‘철의 여인’으로 알고 있으니, 최 장군도 내게 어울리는 별명일 거다. 언젠가 아들의 진중일기장을 봤는데, 거기에 엄마는 철의 여인이다,라고 쓰여 있어서 어이상실이었다. 땡삐라고 부르던 남편은 아예 말이 없고, 어머니나 동생들도 나를 강하게 보는 것 같긴 해서, 당분간 이 별명으로 불리는 것에 트집 잡지 않고 수용하기로 했다. 


별명은 내가 짓는 것 아니고, 제삼자가 사람의 특성이나 이미지를 가지고 짓는 게 보통이므로, 지극히 객관적일 수 있다. 그걸 왈가왈부하는 건 배우는 자로서 가질 태도가 아닌 것 같다. 조용히 귀추를 보면서 이미지 쇄신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몸과 마음을 갈고닦으면서.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모르겠다. 늘 이렇게 ‘광녀 널뛰듯’ 마음대로 사는 나에게. 


이미지 쇄신하여 아주 예쁘고 고상한 별명이 생기는 날이 올까. 또 그 별명은 무엇일까. 내가 지어 슬쩍슬쩍 흘리면서 유도해 나가면 어떨까. 내겐 ‘국민누나’가 딱인데, 그건 가망이 없고, ‘브런치 누나’라도. 다 늙은 마당에 이 무슨 망령스럽고 허탄한 생각인지, 아무리 상상과 공상의 대가라 해도 못 말리는 나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들 속에서 내 별명 다섯 개를 모두 발설하고 말았으니, 글쓰기의 본질인 자기를 밝히고 발견하며 성찰하는 것에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최 장군’, 가만히 읊조려 본다. 좀 전까지 불만이었는데, 이제 괜찮다. 앞으로 삶을 별명에 부합되도록 꿋꿋하고 정직하게 걸어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내게 또 어떤 별명이 생길까. 이제부터 이미지 쇄신을 할지도 모르겠다. 누나, 누나로 재탄생하기 위해. 어느 독자가 이러시겠다, 그 누나 타령 '엥간히' 하라고. 가당치도 않는 별명 얻더니 가당치도 않은 걸 꿈꾼다고. 아무튼, 별명을 글감으로 어릴 적 나, 청소년기의 나, 중년의 나, 현재의 나를 두루두루 살펴본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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