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아버지
1969년 겨울 어느 날, 중학교 입학고사 날이었다. 어머니는 외가에 가시고, 집에는 할머니와 동생들만 있었다. 어렸지만 알았다. 어머니가 나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는 걸. 담임선생님이 입학시험 원서를 내주셨던 터다. 서러웠다. 지난여름 더위를 먹어가며 시험공부하는 것을 본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모르진 않았다. 그래도 서러웠다.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밤새 뒷산 부엉이도 울어댔다.
아가, 일어나, 어여. 나를 살살 흔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할머니다. 윗목에 밥상이 놓여 있었다. 찰밥이다. 할미가 찰밥 지었어. 어여 먹고 시험 보러 가야제.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목소리. 시험 잘 보거라. 붙기만 혀. 할미가 어떻게든 중핵교에 보낼 테니. 할머니는 알고 계셨다. 내 마음속의 소망을. 눈 비비고 일어나 찰밥을 먹었다. 꼭꼭 씹어 먹어라. 우리 손녀 꼭 붙어야 한다. 밥상머리에서 할머니는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읍내 명문으로 일컫는 여중학교에 몇 명이 붙는가 하는 것은, 담임선생님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재량으로 나는 원서를 냈던 것이다. 여학생들은 해마다 한두 명이 붙거나 아예 합격자가 없을 때도 있었다. 남학생들은 조금 더 붙었지만. 그만큼 합격하기 힘든 학교였다. 부잣집인 옆집 상희는 중학교 시험 원서도 못 냈는데, 입에 풀칠도 어려운 내가 중학교입학시험 원서를 냈다. 그것은 합격자를 높여 능력을 보이고자 한 선생님의 생각도 작용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입학시험 장소는 10km 족히 되는 읍내에 있는 여중학교다. 마당에 내려섰을 때, 밖은 아직 어둑했고, 놀랍게도 밤새 내린 눈이 무릎 가까이 쌓였다. 할머니는 차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여 걸으라고 재촉하셨다.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왔던 할머니는 쌈짓돈을 꺼내 차비하고 점심 사 먹으라며 쥐어준 후 집으로 들어가셨다. 혼자서 눈을 헤치며 걸었다. 암담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시험시간까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작로까지만 가면 차가 오든지 길이 나있든지 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부지런히 걸었다.
내가 살면서 힘들 때마다 입학시험 치르던 그날이 생각났다. 눈 덮인 암담한 길도 걷다 보니 걸어지던, 춥기보다 열이 나던, 그날. 어느 누구도 없이 나 혼자 어둑한 새벽길을 걷던, 내 꿈 향해 발걸음 옮기던, 그날이 생각나곤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열세 살 아이도 걸었는데, 나아갔는데,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 플러스요 마이너스인지 모르겠다. 겪은 모든 것들이 어려움을 벗어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신작로는 누구도 다닌 흔적이 없다. 차 역시 다니지 않았다. 내가 일찍 나와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km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면 친구들이든 선생님이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릎 가까이 쌓인 눈을 헤치며 걷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작은 내 발자국만 나 있을 뿐, 아무도 없다. 남자애들도 있는데, 모두 아직 안 나왔다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걸어야 했다. 차가 안 다닌다면 시험 장소까지 걸어가야 하므로.
아랫동네를 지날 때였다. 삼륜차가 하나 오더니 섰다. 차 안에는 옆집 동급생 ‘현’이 타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시험 보러 가느냐고. 그렇다고 하니까 타라고 했다. 현이 운전석 쪽으로 자리를 좁혀 앉았다. 행운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까. 당시 행운의 편지가 유행했을 때였다. 행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게 피상적으로 들렸는데. 돈이 많이 생겨 벼락부자가 되는 게 행운일까. 도깨비방망이가 생기는 게 행운일까. 잘 몰랐는데, 바로 이것이 행운일 것 같았다.
구원의 여신처럼 어떻게 때맞춰 삼륜차가 왔을까. 그리고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내게 시험 보러 가느냐고 물었을까. 더구나 현은 어떻게 그 차에 타고 있었을까. 가끔씩 그게 궁금했다. 용케, 때맞춰, 운 좋게, 기막히게, 안성맞춤으로, 이런 어휘를 쓸 때에도 그날의 광경이 겹쳐졌다. 그 행운을 열세 살에 경험했다는 게, 때로는 힘이 되기도 했다. 누가 알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이런 생각이 들면 요행수를 바라는 것 같아 고개를 저으면서도, 힘이 되었다. 아니, 희망이 되었다.
시험 장소에 도착했을 때, 눈 때문에 응시자들이 많이 못 왔다며 시험 시작을 한 시간 연기했다. 햇살이 퍼지자 눈은 녹기 시작했고, 교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요란했다. 따사로운 햇살은 눈을 금세 녹였다. 낙숫물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던 오전시험이 끝나고,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빵을 사 먹었다. 빵 사 먹으면 떨어진다는 말이 걸렸지만 혼자 온 내가 어디 가서 밥을 사 먹으랴. 마침 친구 ‘화’도 혼자여서 우리는 햇살 좋은 교실 벽에 기대서서 빵을 먹었다.
시험에 합격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서야 어머니는 외가에서 돌아오셨다. 동생들이 먼저 뛰어나가 언니 붙었다고, 누나 붙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니는 한숨만 푹푹 쉬셨다. 결국 나는 그 학교에 가지 못했다. 신설학교에 다시 시험을 보았고 용케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나는 중학교 입학시험 마지막 세대였다.
시험 보러 가던 날 때맞춰 온 삼륜차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 전 현으로부터 들었다. 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그 눈이 푹 쌓였던 날을. 반세기도 넘은 궁금증이 풀렸다. 삼륜차는 현의 아버지가 보낸 거였다. 사업하는 현의 아버지는 여기저기 거래처가 있었던 모양이다. 눈이 쌓여서 아들이 시험을 보러 못 가니 차를 보내달라고, 거기다 여자애 하나도 있는데 그 애도 태워주라고 했단다. 그 차는 읍내보다 더 멀고 큰 도시에서 온 거였다.
우연히 일어난 행운처럼 생각되는 일에, 알게 모르게 돕는 손길이 작용했다는 걸 알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삶의 여정에 일어났던 모든 좋은 일들이, 그렇게 선한 손길들에 의해 생겨난 결과라는 게 놀라웠다. 그걸 잊고 있었다. 내가 잘나서 아니고, 내가 노력만 해서 아니라, 마음으로든 행동으로든 돕는 이들의 마음이 모여 만든 결과라는 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의 의미가 명징하게 다가왔다. 이제 내가 돌려줄 차례라는 것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불특정한 누구에게든 작으나마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