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가 종로에 갔다’, 이것 하나로 소설이 된다고, 소설은 플롯에 의해 만들어지니까 어떤 모티브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나는 학생들에게 잘난 척했다. 소설 창작시간에. 나도 종로에 갔다. 보름 전쯤이다. 다녀오면 단편소설 하나쯤 만들어지나 싶었다.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제자들에게 한 말은 다 헛소리였나. 그래도 짧은 수필이라도 하나 건지고자 보름 전 일을 회상하며 따라가 본다.
보름 전쯤 나는 무작정 종로로 갔다. 소설에서 괜히 하는 행동이 없어야 한다. 모두 인과에 의해 서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란 게 꼭 인과에 의해서 진행된단 말인가. 아니다. 그날 나도 아무 인과관계없이 그저 종로로 가고 싶었을 뿐이다. 종로3가역에서 내리려던 참인데, 친구 ‘희’가 전화를 했다. 어디야? 응 종로. 그래? 그럼 내려, 내려! 어디서? 경복궁역에서. 일단 만나서 얘기해. 그렇게 나는 경복궁역에서 희를 만났다. 예정에 없이. 이렇게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 좀 많은가.
그렇게 희를 만났고, 우리는 경복궁에 입장했다. 희와 나는 팔짱을 끼고 걸었다. 날은 꼭 봄날 같았다. 더 이상 좋을 순 없었다. 뜻밖에 만난 희와 이 좋은 날 한유하게 고궁을 거닐다니, 부족할 게 무엇이랴. 궁금했다. 어떻게 나왔는지 또 나를 떠올려 전화를 했는지. 희도 나와 같았다. 무료해서 그저 길을 나섰고, 얼마 전에 나온 무료 교통카드를 써보고 싶었으며, 나와 통화가 되면 만날까 했단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모두 즉흥적으로 든 생각이었다고 했다.
경회루는 꽁꽁 얼어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한복을 편리하게 개량한 것 같았지만 색깔이나 모양이 우리 전통 한복과 거리가 멀었다. 경복궁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떻게 좀 안 될까 싶다. 우리 한복의 멋과 색을 살리면서 정체성 있는 의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살이 찌푸려졌다. 희가 내 속내를 읽고 생긋 웃었다. 뭘 그래, 그냥 편히 살아, 이제. 맞는 말이다. 내가 어찌해 볼 도리 없는 일이다.
경회루에서 나와 입구로 오니, 안내원이 수문장 교대식을 한다며 보고 가란다. 아침도 안 먹고 나온 우리는 시장했다. 더구나 들은 정보에 의하면 덕수궁 내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문신 전’을 할 터였다. 그때서야 내가 종로에 가게 된 이유를 생각해 냈다. 의식 저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것은 바로 문신 작가의 전시회 관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과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희도 좋단다. 의기투합. 대궐 앞 수문장지기들은 마네킹처럼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 앞에 가까이 가서 쳐다보았다. 그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대단한 연기다.
‘영이가 종로에 갔다’는 모티브로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희를 만났고, 경복궁에서 해설을 듣다가, 경회루로 갔으며, 이제 덕수궁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 아닌가. 플롯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제만 형상화하면 된다. 덕수궁까지 걸어가다가 들어가고 싶은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심을 걷는 게 오랜만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음식점은 대부분 한가했다.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나는 떡만둣국을, 희는 메밀국수를 먹었다.
식사 후 우리는 또 팔짱을 끼고 식당 근처 골목을 기웃대다 덕수궁까지 걸어서 갔다. 골목을 다니는 것도 재밌다. 희가 다리 아프다며 택시를 타자고 했다. 검색해 보니 택시 탈만큼 거리가 아니었다. 1km 남짓 걸으면 되었다. 희를 살살 달랬다. 내가 업고 갈까, 했더니 희가 소녀처럼 손사래 치며 웃었다. 덕수궁도 역시 무료입장이다. 거기다 전시회 관람까지.
왜 갑자기 ‘문신 전’ 볼 생각을 했느냐고 희가 물었다. 문학과 미술, 음악, 철학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까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응, 아들이 전시회 계획하고 있어서, 그림 그리는 아들의 어미가 그쪽을 너무 몰라도 그렇잖아. 내 말에 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은 안 한대? 희의 물음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작업하느라 정신없는 아들에게 결혼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은가. 응, 아직은. 미술관 앞 배롱나무는 나목으로 서있었다.
‘문신 전’은 대단했다. 그림에서 판화, 조각, 공예까지 미술 전반에 걸쳐 경지에 이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저렇게까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저 경지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저 그림을 즐기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겠다. 그림뿐 아니라, 판화와 조각도 아들은 조금씩 손대고 있지만 그림만 했으면 좋겠고. 문신 작가처럼 대단히 이름을 날리지 않아도 좋으니, 즐겼으면 한다. 문신 전을 본 내 소감은 그랬다. 창작의 외로움과 지난한 고통, 훌륭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미술관에서 나와도 아직 해는 남아 있었다. 희는 다리가 괜찮은지 남대문시장에 가고 싶단다. 우리는 또 걸었다. 시장 골목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차를 마셨고, 시장구경을 했다. 모자를 써보고 사지 않았으며, 목도리를 만져보고 사지 않았다. 희는 머리핀을 만지작거렸지만 역시 사지 않았다. 둘이 마주 보며 싱긋 웃었고, 희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아, 좋아. 우리 언제 또 만나지? 희는 아이처럼 칭얼댔다.
햇볕이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직전 우리는 회현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희와 나는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당분간 수요일엔 전시회를 보자며.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엔 나에게 일이 있어서 못 갔고, 이번 수요일엔 희에게 일이 있단다. 계획처럼 되지 않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다 괜찮다. 쇠털같이 많은 날인데, 또 만날 날이 없으랴. 흐르는 대로 하리라.
내가 불현듯 종로에 갔던 일은 소설 한 편으로 탄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필 한 편은 남게 되었다. 경회루에서 든 생각이, 음식점 있던 서촌 골목이, 덕수궁 배롱나무가, 앞으로 쓸 내 소설의 어느 한 장면에 그려질지 알 수 없다. ‘영이가 종로에 갔다’는 모티브로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성실히 소설을 써야 하리라. 내가 종로에 갔던 일을 계기로, 소설 쓰기에 시동을 걸 수 있을까. 별 것 아닌 일로 시동을 걸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