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정월 대보름을 꿈꾸며

내 더위 사줄 분

by 최명숙


정월 대보름 아침밥상은 여느 때와 달리 푸짐했다. 갖가지 묵나물과 무나물, 시래기나물에 들기름 발라 구운 김이 오곡밥과 함께 올라왔다. 김치와 된장찌개가 주된 반찬이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두 가지가 빠졌다. 봄내 산에서 뜯고 말린 취나물, 다래순, 잔대싹은 묵나물이 되었고, 가으내 말린 호박고지, 가지, 무청도 다시 불리고 삶아 나물이 되었다. 거기에 들기름 발라 구운 고소하고 맛있는 김으로 차려진 밥상.


아침상을 차리기 전 어머니는 쟁반에 소금과 들기름을, 마른 김과 함께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솔잎에 붙은 작은 솔가지도. 언젠가부터 내 일거리였다. 들기름을 솔잎으로 묻혀 마른 김에 바른 후, 소금을 뿌렸다. 그것도 어린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 때는 지루했고, 어느 때는 동생들이 소금 더 뿌리라는 둥 기름 다 바르라는 둥 참견을 해서 눈을 흘기곤 했다. 나를 무서워한 동생들은 내가 그러면 방구석으로 도망갔다가, 슬금슬금 다시 와 또 참견을 했다.


다 바르고 나면 기름과 소금 묻은 김 무더기를 한꺼번에 또르르 말아 꾹꾹 눌러 기름과 소금이 앞뒤로 골고루 배게 했다. 제사나 명절에도 내가 늘 했던 일이어서 나는 숙련공처럼 잘했다.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은 기름을 많이 바르면 느끼하고, 덜 바르면 맛이 덜했다. 소금도 적당 양을 뿌려야지 아니면 짜거나 싱거웠다. 무슨 일이든 적당해야 한다는 것을,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갔다. 앞뒤가 고루 배게 하려고 김을 말아 꾹꾹 누른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공부였다.


그렇게 준비된 김을 양면으로 된 석쇠에 두 장씩 놓고 구웠다. 아궁이 안에 있는 가랑잎이나 솔가리 땐 불을 '고무래'로 끌어당겨 앞으로 꺼내놓고. 김은 장작불 땐 불로 구우면 안 된다. 솔가리나 가랑잎 불이 적당하다. 밥 짓고 남은 연한 불에 천천히 구워야 한다. 양면 석쇠를 번갈아 뒤집어가며 두 장씩. 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넘어 마당으로 안방으로 번져나갔다. 동생들은 들락날락하며 또 참견을 해 어머니께 지청구를 들었다.


그렇게 숙련된 솜씨로, 구운 김 만들기를 20년쯤 전까지 했다. 마른 김 한 톳을 사서 먹고 싶을 때마다 들기름을 발라 프라이팬에 구웠다. 가는소금과 기름 바르는 도구도 나왔지만 나는 꼭 천일염을 작은 절구에 빻아 썼고, 기름은 작은 숟가락에 묻혀 발랐다. 맛소금을 쓰면 소금의 참맛을 느낄 수 없기에 천일염을 고집했다.


지금은 그렇게 직접 구운 김을 만들 필요 없다. 마트에만 가면 참기름 바른 김, 들기름 바른 김, 골고루 입맛대로 살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렇게 시간이 요구되는 것을 만들거나 해 먹을 정도로 한유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편한 것에 익숙해져서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편한 것 누리는 게 흠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걸까, 생각할 때 있다.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게을러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구운 김 이야기를 하느라, 본론으로 아직도 들어가지 못했다. 글을 구상할 때는 정월 대보름 날 풍경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은 농사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첫 단락에 ‘구운 김’이라는 어휘를 쓰다 보니, 그 김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과 나의 경험이 자꾸 떠올라 안 쓰고 배길 수 없었다. 그 정겨운 풍경들이 떠오르며 그날들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사실 정월 대보름에 관련된 이야기는 검색만 하면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식상하기도 했다. 변명일까. 아무튼.


어제는 정월 열나흘, 대보름 이브였다. 그냥 맨밥을 김치와 먹는 건 안 될 것 같았다. 뒤져보니 찹쌀과 갖가지 잡곡이 있어, 씻고 불려 솥에 안친 후 밖으로 나갔다. 나물거리를 살 생각이었다. 마트에 가보니 갑자기 마음을 바꿔 반찬가게로 갔다. 갖가지 나물반찬이 전시되어 있다. 호박나물, 고사리나물, 가지나물, 취나물 네 가지를 샀다. 한쪽에 보니 오곡밥도 팔고 있다. 안쳐놓고 나온 밥 때문에 사지 않았다. 다음엔 옆에 있는 마트에 들러 들기름 발라 구운 김을 샀다. 이제 오곡밥상은 순식간에 차려질 것이다.


집으로 가면서 떡집에 들러 팥찰시루떡을 하나 사면 정월 대보름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으리라. 정월 대보름 전야에 집집마다 쪄내고 돌려 나눠 먹던 갖가지 떡. 우리는 주로 무시루떡을 했고 옆집 상희네가 해서 나눠주던 팥찰떡. 갑자기 더욱 먹고 싶었다. 하지만 떡집에 팥 찰시루떡은 없었다. 다 팔렸단다. 할 수 없이 찰떡을 하나 샀다.


집에 도착해 보니 오곡밥이 돼 있었다. 소금을 넣어 야간 고슬고슬하게 지은 오곡밥. 찹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물을 적당하게 부어야 한다. 질척하면 본래의 맛을 살릴 수 없다. 아무리 엉터리 살림 솜씨라 해도, 주방장 경력 사십 년이 그렇게 허술한 건 아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물 하나쯤은 내 손으로 해야 할 것 같아, 집에 있던 무를 채쳐 들기름에 볶아 무나물을 만들었다. 밥상이 제법 그럴듯했다. 다섯 가지 나물과 김, 오곡밥까지.


오늘 정월 대보름 아침밥상도 어제 밥상과 같다. 거기에 호두와 땅콩, 아몬드만 곁들여 ‘부럼 깨물기’를 하고, ‘귀밝이술’로 정종 한 잔 따라 마시면 제격일 거다. 아, 그런데 ‘더위 팔기’는 누구에게 하나. 어제저녁에 전화한 친구 순이는 제발 보름날 아침에 더위 팔 생각 말라고 선수를 치던데. 아무래도 더위는 한없이 착한 남자동창생 ‘홍’에게 해야 할까 보다. 작년에도 그 친구에게 더위 팔아 올까지는 좀 미안한데 어쩌나. 더위 팔기만 하면 정월대보름이 퍼펙트할 텐데. 누구 없소? 내 더위 사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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