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잊어야 할, 그 말

다행스럽다

by 최명숙


그날 엄마와 나는 고구마 밭을 매고 있었다. 동악산자락 아래 척박한 땅, 고구마나 담배 말고 농사가 잘되지 않는 땅이었다. 담배 심고 난 자투리땅에 심은 고구마. 자주색 줄기에 붙은 잎사귀는 무성했다. 넌출진 줄기를 걷어 밭이랑에 올려놓고 밭고랑에 난 풀을 뽑았다. 밭이랑 사이도 호미로 긁적여주었다. 산소가 들어갈 수 있도록.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여름 끝이라 해도 한낮 더위는 삼복더위와 맞먹었고, 그늘 하나 없는 밭에선 호미로 긁적일 때마다 마른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까만 단발머리 위로 쏟아지는 땡볕에 현기증을 느꼈다.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여느 집과 달리 농사일에 애들을 동원한 적이 없었다. 농사거리도 적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날은 어째서 나를 데리고 고구마 밭을 매러 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슴아슴한 기억 속에 있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아버지 이야기를. 한숨과 함께 호미 긁히는 소리가 높아지면, 엄마가 우는 게 아닐까 싶어 슬쩍 옆을 보았다. 붉어진 뺨 위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른 척했다. 할 말이 없었으니까. 엄마의 이야기에 주고받으며 장단 맞출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말의 의미와 엄마의 심정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군인이던 아버지와 외가 사랑방에서 맞선을 보았고, 그날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외삼촌과 아버지가 술이 거나할 정도로 취했다는 이야기. 즉, 어른들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고 혼인시키기로 마음먹었으며, 그 증표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외가 어른들에게 흡족한 사윗감이었단다. 그랬을 법하다. 원체 인물이 잘났고 키가 큰 데다 똑똑했다니까. 한미한 집안이라는 것이 흠이 되지 않을 만큼.


그랬으면 뭐 하니, 5년도 못 살고 가는 사람을. 무슨 꿈이 그리 대단해서 제대를 했는지, 차라리 군대 있다 죽었으면 니들 공부라도 편히 시킬 수 있을 것을. 생각할수록 밉살스러워.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마도 내 중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라도 엄마의 원망은 듣기 싫었다. 묵묵히 듣고 있기 거북했다. 돌멩이에 부딪치는 호미 소리가 커지면 가슴이 움찔댔다. 듣기 싫으면서도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쉬었다 하자며 일어났다.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울었기 때문이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는 밭을 다 매야 집으로 갈 수 있는데, 쉬면 더 늦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쉬어, 난 그냥 할래. 짧은 내 말에 일어났던 엄마가 다시 앉았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면서도. 솔직히 내일 또 고구마 밭을 매러 오기 싫었다.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또 온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늦더라도 다 매고 가야 했다.


그날 우리는 고구마 밭을 다 맸다. 밭고랑에서 걸어 나올 때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고집도 대단하다며 칭찬인지 타박인지 모를 말을 했다. 왜 일찍 죽어 날 고생 시키느냐며 아버지를 원망하던 엄마의 눈길이, 고구마 밭 위 산중턱에 있는 아버지 묻힌 곳에 한동안 머물렀다. 나도 그랬다. 산소 봉분만 어렴풋이 보였다. 속으로 아버지를 몇 번 불렀다. 어색했다. 입 밖으로 내본 호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어둡기 전에 내려가자며 채근했다.


엄마 뒤 따라 밭에서 내려가며 몇 번 뒤돌아보았다. 아버지 산소가 차츰 멀어지고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는 앞서 가며 코를 몇 번 팽 풀었고, 나는 몰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존재가 그때부터 내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그전에는 잊고 있었는데. 생각할 만한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었으니까. 내 나이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길 추억이 어디 그리 있었으랴. 그때부터 몇 개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물었다. 지금도 아버지를 원망하느냐고.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무슨 소릴 하느냐고, 하나도 원망 안 하고 원망한 적도 없다고, 이 좋은 세상 못살고 일찍 간 게 불쌍할 뿐이란다. 엄마는 고개까지 살래살래 흔들며 딱 잡아떼셨다. 고구마 밭에서 한 말을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덧붙여, 아버지가 얼마나 잘난 사람이었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씀하실 때,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엄마의 걱정은 딱 하나였다. 이제 머잖아 만날 텐데, 서른두 살의 아버지가 다 늙은 자신을 알아볼까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엄마는 외모에 관심이 많다. 검버섯이나 잡티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서 제거한다. 세숫비누를 피부에 좋은 것으로 따로 사놓고 쓰신다. 더구나 옷차림도 무척 신경 쓰고. 그게 모두 아버지 만났을 때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불쑥 든 생각이었다. 그곳에서는 평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다니까 당연히 알아볼 거라며 엄마를 달랬다. 엄마 표정이 밝아졌다.


사람마다 정해진 숙명 같은 삶이 있다면, 엄마에게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 있다. 스물일곱 꽃 같은 청춘에 세 아이와 남겨졌을 때, 어떤 생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노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그런대로 건강하고, 자녀들 효도받으며 별 어려움 없이 지내신다. 엄마는 과거의 삶을 다 잊은 듯, 내 평생이 이만하면 좋지, 뭘 더 바라겠느냐고 하신다. 그런 생각 역시 다행스럽다. 그래서 고구마 밭에서 엄마가 아버지를 원망한 말을 이제 잊어야겠다. 이제 잊어야 할,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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