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 발행한 작품 수가 152편이니 하루에 1편씩 쓴 셈이 된다. 한 편에 보통 2,500자 내외로 원고지 12-13매 정도다. 다작이다. 꼭 쓸 만한 것이었는지, 완성도 여부를 차치하고 괜찮은 성적이다. 일단 부지런히 쓰자는 의도에 부합했으니까. 브런치 글쓰기 5개월에 붙여 생각해 본다. 길을 가다가 쉬는 것처럼, 또 계획대로 움직이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그렇게.
브런치에 내가 올린 글은 모두 새로 쓴 글들이다. 아침에 발행할 글을 전날 저녁에, 또는 새벽에 썼다. 가끔은 미리 써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 글을 새벽에 퇴고해서 발행했다. 몇 달 동안 글쓰기만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다. 무슨 소재로 쓸까, 어떤 서술 방식으로 쓸까, 이것은 브런치 작가들이 늘 하는 생각과 같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매일 글을 써서 발행할 수 없을 테니까.
처음부터 매일 새로 쓰기로 작정했던 것은 아니다. 한두 편 쓰면서 재미가 생겼다. 또 제자들과 하고 있는 매일 글쓰기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데에 이유가 있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내 의지였고, 재미였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기 싫으면 못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묵은 글들이 많지만 그것을 들춰보지 않았다. 새로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23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퇴직한 것은 허전함이 남는 일이었다. 그 마음을 달래 보려는 게 목적이었다. 어떤 놀이에도 능하지 못한 나는 특별히 취미나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겨우 등산이나 산책, 여행 정도다. 여행은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야 하니까 쉽지 않다. 만만한 것이 글쓰기였다. 그렇다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겸하고 있던 외부 강의는 그대로 있고, 오히려 다른 직책이나 강의가 늘어난 상태다. 바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학교에서 떠났다는 게 아무래도 허전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아쉬움 내지 허전함은 금세 극복되었다. 매일 학교에 가듯 글을 썼으니까. 그런 점에서 브런치는 내게 고마운 플랫폼이다. 학기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듯, 새로운 브런치 작가의 글과 작가를 만났으니까.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토록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21세기 의사소통 도구로서 글쓰기가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를 수업시간에 했지만 현장을 목격한 것은 브런치에서였다.
글쓰기를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무수하다는 것이 새로웠고,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쓴 글이 많다는 것도 경이로웠으며,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라는 것 또한 놀라웠다. 내가 가르쳤던 글쓰기 방식대로 글을 쓰는 작가의 글을 간혹 읽게 되면, 혹시 내 강의를 들었던 제자인가 싶어 살펴보기도 했다. 그 방식이 왕도는 아니지만 그랬다. 무엇보다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글을 잘 쓰고 싶고 싶어 몸부림치는 작가들의 글을 만났을 때다. 그런 작가들은 매일 꾸준히 쓰다 보면 머지않아 원하는 만큼의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5개월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진단해 볼 때,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걱정 근심 할 새가 없다. 약간 소심한 편이고 예민하여 스스로 괴로울 때가 많은데,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그날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나면,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궁리하며 독서를 하거나 산책을 했다. 걱정근심 같은 것은 할 새 없다.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금세 잊거나 귀추를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평생 그렇게 생활하다시피 했다. 밤과 낮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할 일에 따라 시간을 사용했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보통 새벽 2시에 침대에 눕는 편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글을 퇴고해 올리면서 조금씩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일찍 일어나는 게 더 좋다 아니다 따질 일은 아니지만 낮 시간이 더 길어진 느낌이랄까. 시간 여유가 더 생긴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서재로 가 컴퓨터를 켤 때 그 기분은 설렌다. 아직까지 글감을 떠올리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나를 믿는다. 껌벅이는 화면의 커서를 보면서 한참 있다 보면, 글감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밖이 깜깜한 새벽 고요를 깨뜨리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생동감 있다.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한없이 설레는 이 느낌은 나의 아침을 여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 기분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
5개월 동안 발행한 152편의 글은 완성도 면에서 부족한 날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차차 퇴고하면서 보완할 생각이다. 브런치에 글쓰기 시작하기를 잘했다. 152편은 책 세 권 출간할 분량이다. 책 세 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 쓰지 않았다면 없을 글이다. 무엇보다 지난 십여 년 간 중단되다시피 했던, 글쓰기 습관을 회복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브런치 글쓰기 5개월, 발행한 글의 완성도에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퇴고 과정을 통해 채우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한두 번 하는 건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이든 꾸준하게 할 때 성과가 나타난다. 아무리 반짝이는 재능이 있을지라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게 된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부지런히 갈고닦을 일이다.
정약용 선생이 제자 황상에게 준 삼근계 (三勤戒)를, 언젠가부터 나는 가슴에 품고 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며 부지런하라는. 글쓰기도, 생활도, 독서도, 무엇이든 부지런히 하다 보면 길이 확 뚫려 빛이 나는 날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부지런히 글을 썼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므로. 그만큼 나를 성찰하고 마주한 시간들이었음에. 브런치 글쓰기 5개월은 부지런히 썼던 시간이다. 이 부지런함을 꾸준히 이어 갈고닦아나가기를 다시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