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에 대한 다른 시각

일상

by 최명숙


엊그제 ‘두 남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더니 어떤 이들은 로맨스인가 했단다. 오늘은 그들과 또 다른 두 남자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통점은 있다. 웃기는 두 남자다. 웃기는? 아니 유머를 가진.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유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유머가 있는 두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하련다. 지금 생각하니 두 사람 다 웃기긴 했다. 그 모습이 닮기도 했고.


요즘엔 재밌는 사람을 좋아한단다. 특히 이상적 신랑감으로도 유머 있는 사람을 꼽는 여성이 많단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쓸데없이 심각하고 무겁기만 하다면 안 그래도 삶이 만만치 않은데, 숨 막힐 테니까.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이 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두 남자의 유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정반대이니. 두 사람은 짐작한 대로 남편과 아들이다.


남편이 하는 유머는 유머가 아니라 실없게 들린다. 그가 유머라며 구사하는 말에 나는 늘 눈을 흘겼다. 아재 개그 아니면, 화를 돋우는 거였으니까. 진부한 것은 딱 질색인 내게 그게 먹힐 리 없다. 그래도 참 끈질기게 진부한 개그로 보이는 유머를 구사한다. 들은 척도 않다가 종국에는 화를 부르르 낸다. 그러다 참을 수 없을 때, 아이고 이 양반아! 하면, 그래 이 상놈아! 한다. 어이없다. 유머랍시고 욕 같은 말을 내뱉고 혼자 흡족해한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번은 하도 어이없는 짓을 저질러 나도 모르게 속된 말이 튀어나왔다.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거다. 받을 수 없을 게 뻔했다. 게다가 가게 운영비를 덜컥. 그래놓고 내게 그 운영비를 빌려달라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여유가 있어서 빌려주었다면 또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고 이 인간아! 했다. 남편은 대뜸 그래, 왜 이 동물아! 하며 되받는다. 순식간에 그는 인간이지만 나는 동물이 되고 말았다. 그걸 유머라고 하는 사람과 무슨 더할 말이 있으랴. 그래 놓고 흡족해서 길길 거리며 웃는다. 낄낄도 아니고 그건 길길이다. 아주 음흉하게 웃으니까.


공손하게 말하라고 하면 두 손을 앞으로 내놓으며 공손! 한다. 이름도 모두 거꾸로 부른다. 옛날에 쓴 전화번호부를 보니 ‘백두’라고 적혀 있었다. 백두가 뭘까. 거래처 이름도 아니고, 사람이름도 아니었다. 궁금해서 물으니 피식 웃는다. 그 속내가 궁금해서 계속 물으니, 쉽게 가르쳐주지 않고 자꾸 암호란다. 자기만 아는. 그러니 더 궁금했다. 화가 날 정도다. 그깟 게 뭐라고 안 가르쳐주느냐고 하니, 머리가 하얗게 센 뒷집 남자란다. 참나, ‘뒷집’이라고 써도 되지 않나. 아무튼 그런 식이다.


화를 돋우는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시간을 물을 때다.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데 비해 남편은 시계를 좋아해서 늘 찼다. 몇 시냐고 물어도 절대 안 가르쳐준다. 빙글빙글 웃기만 한다. 화가 나서 소리치면 더 재밌어한다. 어서 말하라고 다그치면, 그럼 시계 찬 사람이나 안 찬 사람이나 똑같지 않으냐며 끝까지 안 알려준다. 비 오는 날 먼지 안 나게 두들겨 패주고 싶다. 하늘 같지 않은 남편이라도 패줄 수는 없다. 고소할지도 모르니까. 그런 사람이다.


아, 옛날 일인데도 꺼내니 열이 나서 안 되겠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다른 남자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아들, 그림쟁이 우리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발상이 기발하긴 했다. 남편에 비해 아주 고급스럽게 웃긴다면 너무 감정이 실린 것일까. 아무튼 아들은 남편을 닮았으면서도 결은 아주 다르다. 앞의 글에도 서술한 적이 있지만 아들은 다빈치, 고흐, 루벤스 등 세계적인 화가들을 다 선배로 지칭한다. 그런 허세는 남편을 약간 닮았다. 하지만 결은 확실히 다르다.


이 집으로 이사했던 십여 년 전, 아침에 일어나면 아들이 거실 창 앞에 서 있곤 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저 터널을 보세요. 도심으로 들어오는 쪽과 나가는 쪽 차량수가 무척 다르죠?” 그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었다. “한쪽 콧구멍 속에서 차들이 나오고, 한쪽 콧구멍 속으로 차들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들이 키들거렸다.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그런 발상이 떠오르는 걸까. 때로는 그 터널로 코끼리가 들어가는 상상을 하고, 나오는 상상도 한단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나를 보더니 웃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제야 충청도 사람들 말을 이해할 수 있단다. 보통 사람들은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걸 보면 그냥 닫는데, 엄마는 추운 것 같지 않느냐고 묻는다나. 그냥 닫으면 되는데 꼭 그런 식으로 에둘러 말한다고. 요즘 친구들이 아들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경우 있는데, 충청도식 말이라 그런 것 같단다. 엄마아빠를 닮아서. 그럼 나를 잘 이해하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며 또 낄낄 웃는다. 그래도 밉지 않다. 낄낄 웃는 건 남편과 똑같은데, 아들의 웃음은 나도 웃게 한다.


요즘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작업만 하는 아들에게 결혼 안 한 게 참 다행이라고 했다. 안 그러면 내가 생활비까지 조력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 말에 아들이 에이, 그건 아니죠. 그런 능력 있는 여성들이 저를 몰라보는 게 문제죠, 그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큰 손실인데요. 하면서 또 낄낄 웃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뭐 그 유머도 별로 유머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들의 말에는 웃음이 나온다.


아들 밥은 서서 먹고 남편 밥은 앉아서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남편보다 아들을 더 여기지 않을까. 그게 허당이라는 걸 아들 결혼하는 즉시 깨달을 것이면서. 같은 유머라도 남편이 하는 것보다 아들이 하는 게 더 재밌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남편의 말은 하나도 웃기거나 즐겁지 않고, 아들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재밌고 웃긴다. 두 남자에 대한 나의 시각은 대단한 이유 없이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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