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휴머니티의 작은 실천

일상

by 최명숙


마트에 다녀오다 군인 다섯 명을 만났다. 미국인이었다. 군복을 입은 그들은 청년들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오다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환한 웃음,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큰 몸집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상대적으로 무척 작아 보였다. 나를 보더니 싱긋 웃는다. 치아가 고르다. 탱탱한 볼, 보송보송한 노란 솜털, 군복이 터질 듯 살진 몸. 귀엽다. 나도 살짝 웃어주었다. 그가 목례를 했다. 그는 친절했다.


사진을 다 찍은 그들은 승용차에 오른다. 자주색이다. 그 작은 승용차가 그들을 흡입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작게 뭉쳐 꿀꺽 삼키는 것처럼. 내게 웃어 보였던 군인이 마지막으로 탔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승용차는 사라지고 청년의 손동작만 남았다. 그는 누구일까. 이국땅에 와서 직업군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왜 내게 손을 흔들었을까. 또 미소를 지어 보였을까. 티 없이 맑은 미소와 흔드는 손. 그건 친절이었다.


나를 보며 아마도 고국에 두고 온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아니면, 조금 더 인심 써서 누나를 연상했을까. 지나가는 나이 든 여인에게 젊은 그가 호기심을 보였을 리 만무하고. 하긴 미국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단다. LA에 사는 지인이 하는 말이니 신빙성은 있다. 초등학생도 내게 누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떠올랐을 확률이 가장 높다.


불쑥 공중전화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던 외국인이 생각난다. 예전 이층 집에 살 때였다. 아래층 벽에 공중전화가 붙어 있었다. 가끔 아주 시끄럽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오곤 했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외국인 남자가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슬픈 목소리로, 때로는 짜증 섞인 말투로. 처음엔 시끄러워 불편했는데, 차츰 괜찮아졌다. 내 서재 밑에서 들리는 소리는 직통으로 창문을 통해 귀에 들어오곤 했는데도.


이국땅에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친구든 동료든 이곳으로 같이 돈을 벌기 위해 왔으리라.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면 공중전화에 매달려 서로 위로하고 상의하며 견디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불편한 마음을 추호도 가질 수 없었다. 그것도 하나의 친절일 수 있을까. 지금은 휴대전화를 모두 갖고 있다시피 하지만 90년대 말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코리안 드림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물밀 듯 유입되던 때였으니까.


그를 잊을 수 없었던 건 그날의 통화 때문이다. 봄비가 바람도 없이 자분자분 내리던 날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얼핏 얼핏 들렸다. 빗소리도 거의 나지 않게 자분자분 내리는데, 그 가느다란 빗소리에 섞여 울음처럼.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는 비가 그의 머리와 어깨에 내리고, 몸을 웅크린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었으리라.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급기야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고국에 있는 가족 중 누구에게 변고가 생긴 걸까. 아무런 상관없는 그가 안쓰러웠다. 내 눈도 씀벅거렸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면 물어보았을 거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울음은 처절했고,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나도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어 창가에서 떨어졌다.


언젠가는 창문을 열었다가 그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집 뒤 공원에 갔다가 그를 본 적도 있다.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가 씩 웃으며 어눌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했다. 그 후로도 가끔 그를 보았다. 그때마다 그와 나는 미소를 띠며 목례를 했다. 알고 보니 우리 집 옆 건물 지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뿐이다. 우리가 이사하는 바람에 그를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굵은 쌍꺼풀진 맑은 눈이 생각난다. 지금은 고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거라 짐작한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느꼈던 것은 그곳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다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같이 사진 찍기를 청하니 흔쾌히 아주 멋진 포즈를 취해주던 청년, 유명한 햄버거 집에서 만난 종업원 네덜란드 아저씨, 모자 가게의 아가씨. 음식점에서나 길에서나 마트에서나 만나는 미국인 모두 친절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리라 다짐까지 했다. 그만큼 그들의 친절은 몸에 배어 있었다. 그것에 대한 진정성 여부는 따지지 않으리라.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게 손을 흔들고 웃어 보였던 미군 청년도 그저 습관처럼 한 행동일지 모른다. 그래도 인상 쓰거나 무표정한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의 밝고 친절한 그 표정이 내게 남았듯이, 그 파키스탄 사람의 기억 속에도, 공중전화박스 위층에 살던 내가 기억에 있을까. 스칠 때마다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인사 나누던 내가. 친절은 휴머니티의 한 표현이라고 볼 때, 작은 실천을 한 것 같다. 미군 청년과 미소를 교환한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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