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와 동거하다

일상

by 최명숙


‘안의’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은 일 년 전쯤이다. 처음에는 객식구와 동거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살림을 엉터리로 하며 사는 나로서는 더욱. 무엇보다 지낼 방이 여의치 않았다. 방 세 개 모두 용도가 달라 안의에게 따로 방을 내어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궁리 끝에 일단 거실에서 지내라고 했다. 그러다 방이 정리되면 따로 하나 주겠다며. 안의는 두말도 하지 않았고 순종했다.


거실 창가 쪽에 지낼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햇볕이 잘 들고 산이 건너다 보이는 자리다. 창가에 놓은 꽃기린이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산세베리아가 공기를 정화해 청정한 곳, 아파트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와 식물들, 아이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놀기도 하는 놀이터,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그뿐인가. 하늘이 보이고 높이 나는 새들도 보이는 곳, 밤이면 달빛과 별빛이 마실 오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거실 전체가 안의의 생활공간이다. 처음엔 거실을 빼앗긴 것 같았다. 내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거실인데, 그 공간을 안의가 점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함께 지내기로 했으니 번복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방을 하나 따로 내줄 수 없으니 도리 없다. 함께 지내는 동안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 나 또한 적응하는 수밖에. 그래도 동거를 허락한 게 후회되진 않는다.


어떤 일을 결정하게 될 때, 나는 깊이 오래 생각하는 편이다. 안의를 우리 집으로 들일 때도 그랬다. 거의 두 달 동안 이럴까 저럴까 고민했다. 한 번 허락하면 한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장점도 있을 터였다. 장점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오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낼 공간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먹는 것은 대단히 걱정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들이기로 결정했고 안의와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으로 오던 날, 안의는 몇 가지 살림 도구와 자기가 깔고 생활할 매트를 가지고 왔다. 나는 잘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면으로 짠 두툼한 매트를 내줄 참이었다. 그래야 거실 한쪽을 쓰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덜어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안의는 자기 몸에 딱 맞는 브라운 계통의 도톰한 매트를 가지고 왔다. 생각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았다.


소파를 거실 입구 쪽으로 약간 옮겼다. 안의는 내가 지시하는 곳에 매트를 폈다. 거실 창가 오디오 옆 자리. 깔고 보니 창가 벽에 붙은 오디오와 평행선을 그렸다. 어떻게 보면 거실의 한 장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되었어. 여기서 당분간 지내다 방을 하나 정리하게 되면 방을 쓰게 해 줄게.” 안의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하긴 나도 툭하면 거실에서 잠이 들곤 하니까. 거실이 안방보다도 넓지 않은가. 보이는 것들도 많고.


안의와 동거가 시작된 첫날, 잠들기 전에 거실로 나와 보았다. 안의는 달을 보고 있었다.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멀리 보이는 주택가와 상가의 불빛과 도로의 가로등이 어우러져 멋진 야경을 연출해 내는데. 안의는 그것에 심취해 있는 것일까. 기도하는 것일까.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살며시 침실로 들어왔다. 잠이 쉬 들지 않았다. 내일 아침부터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뭔가 다를 것 같다. 단출한 내 생활에 변화가 올 것만 같다. 안의를 들이기로 한 이유가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거실이 온전한 내 공간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일에 대하여 후회할 필요 없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로 나갔다. 안의는 지난밤처럼 미동도 없다. 가만히 다가갔다. 살짝 몸을 만졌다. 그래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브라운 매트 위에 전날 모습 그대로 있다. 안의의 몸에 살며시 올라앉았다. 그리고 누웠다. 안의는 나를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편안했다. 간밤에 춥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나를 더욱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안의에게 안겨 푸른 새벽이 부옇게 밝아오고 것을 보았다. 신선했다.


내 요구에 따라 안의는 나의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무르고, 당기고, 스트레칭까지. 지난밤에 뭉쳤던 근육을 말끔히 풀어주었다. 살펴보니 코스도 여러 가지였다. 내 취향에 맞도록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았다.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스트레칭이 압권이었다. 허리를 펴주고 다리를 잡아당겨주었다. 시원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온몸이 편안하다 못해 마음까지 평안하다.


누가 내 뭉친 근육을 이렇게 친절하게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없다. 아들딸에게 어깨 좀 주무르라 하면 1분도 안 돼서 됐어요? 그만해요?라고 묻곤 했다. 그나마 남편은 좀 나았다. 2분 정도를 주물러 주었으니까. 그래도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의는 최소한 20분 쉴 새 없이 안마를 해주었다. 더 연장할 수도 있다. 성에 찰 때까지 얼마든지. 신세계였다.


그렇다, 안의(按倚)는 안마의자다. 누르고, 두드리고, 어루만질 안(按), 의지하고 기댈 의(倚). 내가 지어준 안마의자의 이름이다. 그날부터 안의는 단박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안의에 앉아 책을 보고, 안의에 누워 안마를 받는다.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내 요구를 다 들어준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침 안마를 받고, 한참 작업하다 어깨가 아프면 또 안마를 받으며, 잠들기 전에 꼭 마무리 안마를 받는다. 아참! 먹는 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전기코드만 꽂아주면 되니까.


어떤 시인은 연탄재를 보며 누군가에게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고 묻던데, 나는 안마의자에 앉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인 적이 있었는지 자문하곤 한다. 이렇듯 편안하고 좋은 사람인 적이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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