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생각하며 글 한 편 짓기

일상

by 최명숙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할 때였다. 내 캐리어 안에서 불순한 것이 발견됐단다. 검사원이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했다. 열었다. 노란 베갯잇이 입혀진 베개가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베개는 내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가 검증하고 있는 듯했다. 불순한 것은 다름 아닌 충전기 선이었다. 충전기를 꺼내 손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통과했다. 입을 떡 벌린 캐리어 안에 들어 있던 베개, 내 성격의 상징물일까.


집을 떠나 어디서든 하루라도 묵게 될 때, 나는 꼭 베개를 챙긴다. 호텔이든 펜션이든 콘도든 심지어 친정집이라 해도, 나는 베개가 맞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그래서 꼭 챙겨갈 수밖에 없다. 호텔의 그 푹신한 구름솜 베개는 가장 불편하다. 그나마 한옥의 딱딱하고 작은 베개가 낫다. 일단 여행 갈 때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베개부터 챙겨 캐리어에 넣는다.


목 디스크가 약간 있기 때문에 베개가 맞지 않으면 잠을 못 자고 며칠 목이 아프다. 거기다 자리덧까지 있는지라. 맞지 않는 베개와 자리덧이 겹치면 지옥 같은 밤을 보내야 한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게 베개 챙기기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베개는 가끔 여행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깜빡 잊고 나왔다는 걸 안 즉시 차를 돌린 적 있고, 늦은 밤 운전하여 집으로 온 적도 있으니까.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전에 친구 둘과 셋이 4박 5일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숙소에 들어가 캐리어를 연 순간 박장대소했다. 모두 베개를 챙겨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 셋이 어찌 4박 5일 동안 여행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염려와 달리, 우리는 두고두고 그때를 떠올리며 이야기 나눌 정도로, 즐거운 여행을 했다. 그 후 우리 셋은 한 번씩 함께 다니곤 한다. 각자 가지고 온 베개를 꺼내며 서로의 성격을 파악했기 때문인 듯하다. 잘 아니까 배려도 잘했던 게 아닐까.


우리 집에 나의 전용 베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침실에 있고 하나는 거실 소파에 놓여 있다. 모두 작다. 침실에 있는 것은 안에 매실 씨가 들었으며 원통형으로 길쭉하다.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속에 든 씨 때문에 무겁기도 하다. 가지고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그래서 하나 더 마련했다. 소파에 놓으면 팔을 올려놓을 수 있는 쿠션처럼 보이는 것으로. 속에는 편백나무 조각이 들어 역시 딱딱한데 가볍다. 가끔 거실에서 책이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눕고 싶으면 베기 편하게 소파 위에 놓아둔다.


언제 사용해도 목이 편하다. 참 잘 골랐다고 만족한다. 그 두 개의 베개를 고르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베개를 여러 번 바꾼 끝에 맞는 것을 찾은 것이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조금 쓰다 보니 목이 불편했고 아픈 것이 대부분이었다. 식구들 누구도 베개 때문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데, 유독 나만 그랬다. 내가 까다로워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래서다.


내가 베개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목 베개를 하나 만들어주셨다. 안 입는 옷을 잘라 베갯잇을 만들고 속에는 헝겊을 채워 넣었다. 꼭 맞았다. 한동안 잘 사용했다. 그런데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에서 오신 분들이 나도 모르게 버렸다. 그들이 볼 때 너무 허름해 보여 버려도 될 듯해서 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에 새로 하나 만들어주셨는데, 같은 솜씨로 해도 똑같지 않았다. 내용물이 달라서 그런지, 크기가 달라서 그런지, 내게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네가 클 때도 까다롭긴 했다며, 사서 쓰라고 하셨다.


베개는 수면의 질을 좌우하고 목의 편안 여부와 관계가 있으므로 중요한 침구다. 가끔 베갯속을 빨아 햇볕에 깨끗이 말리기도 한다. 매실 씨와 편백나무 조각들이 햇볕에 보송보송 마를 때마다 이 까다로운 성격도 깨끗하게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해마시라. 내 까다로운 성격은 베개 사용에서만 발현된다. 다른 곳은 절대 아니다.


딸네 집에 가서 잘 때였다. 그날은 묵을 생각이 아니어서 베개를 챙기지 않았다.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자리에 누우려는데 딸이 베개를 안고 왔다. 알고 보니 딸도 베개에 까다로워 목 높이를 재서 맞춘 거란다. 베고 누우니 아주 편안했다. 닮을 게 없어 그것을 닮았느냐고 했더니, 딸이 그러게 말이라며 웃었다. 그날 잠을 푹 잘 잤다. 유일하게 딸네 집 갈 때는 베개를 챙기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 내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것은 베개가 까다로운 성격을 상징하는가이다. 딸을 보면 아닌 것 같다. 딸은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까다로웠다고 하신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뇌를 쓰는 것은 괜찮은 일이겠지만. 소파에 놓인 베개를 보며 글 한 편 짓고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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