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관리비 명세서 나올 때가 되었다. 들고 날 적마다 우편함을 쳐다보았다. 없다. 이번 달에는 늦는 것 같았다. 조바심이 났다. 얼른 결과를 보고 싶은데. 시험을 쳐놓고 성적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러했던가. 날짜를 보니 이르다. 매달 20일이 지나서 나오던 것인데, 아 조급한 이 마음. 느긋함을 키워야 한다. 남편과 연애할 때 편지 기다리던 마음만큼이나 간절히 기다렸다고 하면 과장일까.
내가 이다지도 명세서를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지지난 달부터 집안 온도를 2도 낮추고 전기도 아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로 살진 않았다. 목에 머플러를 하고 조끼를 하나 덧입으면 되었다. 방바닥이 따뜻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차지도 않았다. 밖에 있다 집에 들어왔을 때, 훈훈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만하면 되었다. 지난날에 비하면 온실이나 진배없다.
남자어른이 없는 우리 집은 늘 추웠다. 옆집 상희네 사랑방 아랫목은 절절 끓다 못해 콩댐한 방바닥이 꺼멓게 탔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간신히 찬기만 가신 방바닥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객지에 나가 살 때도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견디고 잠든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난 추위에 강하다. 그렇게 단련되었으니까. 체지방이 많아 강한 것은 아니다. 약간 그 영향도 있겠지만.
그런 나에게 집안 온도 2도 줄인 것은 못 견딜 일이 아니었다. 더 줄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혹시 감기에 걸릴까 염려되어 못했다. 달라진 환경을 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이제 모험은 안 하는 게 좋다. 안전 제일주의.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만사에 의욕적이었는데, 이제 지나치지 않는 정도로 숙련되고 있는 중이다. 다행한 일이다.
침대, 그것도 돌침대를 쓰기 때문에, 집안에 찬기만 없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다. 더구나 얇은 머플러를 자나 깨나 목에 감고 있으니 감기 걱정은 없다. 작년부터 한여름만 빼고 집안에서 늘 목에 머플러를 하고 지낸다. 오히려 밖에 나갈 때는 안 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목감기 발생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작년에 코로나에 감염되기 했었지만 그 외에 딱 한 번 목감기에 걸렸으니까. 기관지가 부실하여 툭하면 목감기에 걸려 고생했던 날들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효과다.
아, 돌침대. 그렇다. 돌침대를 쓰므로 바닥이 차도 상관없다. 두꺼운 양말이나 슬리퍼를 신으면 되니까. 거실에 깔린 카펫도 도움이 된다. 어쨌든 나는 양말은 신지만 슬리퍼는 신지 않는다. 돌침대 온도는 낮추지 않고 예전과 동일했다. 바뀐 것은 수면에 들어가기 30분 전에 전기 코드를 꽂는 것이다. 전에는 한두 시간 전에 꽂았는데. 미지근한 상태에서 잠이 든다. 아침에 깨면 따끈따끈하다. 꼭 옆집 상희네 사랑방 아랫목 같다. 이만하면 함함하다. 무슨 부족함이 있으랴.
따지고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한 것들이 많다. 컴퓨터를 왜 하루 종일 켜놓고, 쓰지 않는 불을 켜놓는지. 서재에 있을 적엔 거실 불을 모두 껐다. 거실은 언제나 불을 환하게 켜놓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당연한 듯 켜놓던 습관을 바꿨다. 전기는 꼭 필요할 때만 켜고 코드 뽑기를 실천했다. 알면서도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실천하기 시작했다. 지지난달부터.
운동하러 나가며 우편함을 보았다. 앗! 꽂혀 있다. 관리비 명세서가. 얼른 꺼내 살펴보았다. 지난달보다 57,610원이 적다. 액수로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오분의 일 정도 적게 나왔다. 조금 신경을 썼을 뿐인데 이렇게 눈에 띄게 효과가 나타나다니. 무엇이든 노력하면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다음 달에는 더 적게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야 한다. 정당한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 사회 구성원들은 부조리함을 느낀다. 그것은 불신으로 이어지고 불안해지며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부조리한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인지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종교적 신념으로 초월하면 모를까, 특별한 의식을 가졌다면 또 모를까, 보통사람으로서 부조리한 것을 당연한 듯 수용하긴 어렵다.
관리비 명세서를 받고 흡족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점에서다. 내가 노력한 만큼 달라졌다는 것. 몸무게도, 글쓰기 능력도 그럴 것이다. 먹은 게 있고 움직임이 적었기 때문에 체지방이 느는 것이고, 많이 읽고 쓰고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도 나아지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이게 문제다. 어떤 것이든 자꾸 글쓰기와 연결하고 마는 게. 끝에는 꼭 그렇게 귀결되고 마는 게. 어쩌랴. 이렇게 글쓰기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증거인 것을.
인터넷뱅킹으로 관리비를 얼른 납부했다. 한 달에 57,610원을 절약했다. 땅 열 길을 파도 안 나올 것인데 약간의 노력과 관심으로. 이러다 거부되는 것 아닌가. 또 비약이다. 환한 미소가 나온다. 노력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나아가, 정당한 대가가 있는 사회는 건강하다.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