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에 가는 길, 궁리 끝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토요일 강남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교통 흐름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 더욱. 내비게이션이 실시간 교통상황을 보아 안내해 주므로 괜찮을 수 있지만 보증할 수 없다. 길 찾기를 검색하니, 집에서 10km밖에 되지 않는다. 버스로 가는 데 59분, 자동차로 가면 25분이다. 바로 앞까진 아니지만 한 번만 갈아타면 예식장 앞에 닿을 수 있다. 그래, 버스를 타자. 마음을 정했다.
마스크가 해제된 후 처음 참석하는 결혼식이다. 며칠 전부터 입고 갈 옷과 신발을 정해놓았다. 결혼식마다 입고 다녀 ‘교복’이라고 지칭하는 정장. 이번에는 교복을 입을 것인가 다른 옷을 입을 것인가 궁리했다. 그래도 여전히 답은 교복이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브로치면 된다. 머플러를 조금 산뜻한 것으로. 구두는 단화지만 귀여운 장식이 달린 것으로 하리라. 가방은 늘 들고 다니던 숄더백이 아닌 미국 갔을 때 선물 받은 아끼는 토트백으로.
도착까지 두 시간 여유를 두고 집에서 나왔다. 가는데 1시간이 걸린다 해도 1시간 여유가 있다. 버스 정류장까지 3분. 예식장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12분 후에 온다고 떴다. 바람이 약간 불었다. 눈물이 나왔다. 나이 먹으면서 생긴 안구건조증이다. 심하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 가방을 열었다, 휴지를 꺼내기 위해. 이런! 휴지도 손수건도 없다. 아, 그런데 이게 뭘까. 손에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 나온다.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탕이다. 사탕이 오래돼 녹은 것이다. 낭패다. 옆에 서 있는 아가씨에게 혹시 물티슈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없단다. 자꾸 쳐다보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역시 없단다. 가방 안을 살피지도 않고 소지품을 넣다니. 혹시 사용할지 모른 마스크, 몇 개의 화장품, 축의금 봉투, 시집 한 권, 자동차 키. 녹은 사탕에 닿은 모든 게 끈적끈적했다. 마스크에 두 곳, 봉투모서리, 시집 모서리. 이대로 갈 수 없다. 내 차 안에 물티슈가 있다. 차로 가자. 자동차 키를 습관적으로 들고 다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동차에서 물티슈로 깨끗이 닦았다. 가방 속도 속속들이 말끔히. 작은 물티슈가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 그것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허둥대지 않았을 텐데.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를 갖고 가리라 마음먹고 시동을 걸었다. 2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린데, 길이 막혀도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 안에 들어오니 눈물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그래, ‘품위 있게’ 승용차로 가자.
그 ‘품위 있게’는 집에서 2km쯤 왔을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늘어선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시간 여유가 있었기 망정이지 조급한 마음이 들 뻔했다. 시선을 돌렸다. 막 피어난 개나리와 벚꽃이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언제 저렇게 다 피었을까. 봄의 요정이 어젯밤에 저렇게 꽃을 피웠을까. 나에게 보라고. 동화적 상상까지 하면서 서서히 차를 움직였다. 차를 갖고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버스를 탔다면 이 광경을 못 보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교통상황을 고려하여 새로운 길로 안내하겠다는 내비게이션 걸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막히지 않는 길로 가겠구나. 고마운 내비 걸이야. 콧노래라도 나올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조금 전의 숨쉬기 힘든 느낌은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예식장에 도착할 것이다. 내 앞에서 깜빡이며 끼워주기 바라는 자동차, 양보해 줬다. 모두 양보해 줬다. 운전은 나처럼 해야지, 이렇게 양보하면서 후훗. 허세까지 부렸다. 끼워준 차가 비상등을 켰다. 그래, 그래, 이 착한 누나 만난 거 행운이야. 먼저 가시오. 중얼중얼.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유유히 운전했다. 아, 뭔가 이상했다. 도착 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남은 거리가 8.7Km로 떴다. 뭐가 잘못된 것 같다. 교통상황을 고려한다더니, 잘못 안내한 것만 같았다. 예식장이 바로 근처인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온 걸까.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품위 역시 안드로메다로 갔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켰다. 3월에 에어컨을 켜다니. 그건 상관없다. 더우면 켜야지 어쩌겠는가.
이제 유턴할 길도 없다. 무조건 직진이다. 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간다. 차는 막힌다. 도착 시간은 자꾸 늘어난다. 노란 개나리가 언뜻언뜻 보여도 관심 없다. 예식장에 늦을 것만 같다. 한강 위에 놓인 보기만 해도 아찔한 가느다란 다리 위로 안내한다. 아, 저런 길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무리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한강을 쳐다보지 않고 길만 보고 천천히 돌아내려 간다. 이게 어딘가. 압구정이 나왔다. 어이 상실이다. 삼성역 근처까지 5km 남짓이다. 문제는 차가 엄청나게 막힌다는 것.
결국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땐 시작 5분 전이었다. 25분 거리를, 1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혼주는 이미 식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자리에 없었다.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악수하며 축하한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힘들여 온 것의 의미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인사를 나눌 시간은 있을 테지만. 일찍 도착해 ‘품위 있게’ 인사를 나누고, 로비에 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차를 갖고 나온 걸 어느 순간부터 후회했다. 내비게이션 말을 들은 것도 후회했다. 대략 알고 있는 대로만 했어도 1시간 전에 도착했을 터였다. 아니, 가방을 살피지 않고 들고 나온 걸 먼저 후회했다. 물티슈를 챙기지 않은 것도 후회했다. 품위는커녕 늦을까 봐 조급해 땀이 흐르고, 우아하게 인사도 못 나누고, 하루에 네 번이나 후회한 날이었다. 그뿐인가. 연회장의 스테이크도 별 맛이 없어 남겼다. 역시, 즉흥적 행동은 문제 발생 여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