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서울역 그리고 민과 수

민과 수

by 최명숙


버스를 잘못 탔다. 번호를 착각한 것이다. 논현역에서 내려 갈아타야 하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앞의 숫자만 보고 덜컥 탄 게 문제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서울역에서 갈아타면 된다. 실수로 예정에 없이 서울역까지 갔다. 놀랍게도 옛날 서울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기했다. 뜻하지 않게 전철을 타고 옛날을 회상하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 지난 어느 겨울이었다. 그때 왜 서울역에 갔는지 모르겠다. 추웠고, 지하도에는 몇몇 노숙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어둑한 지하도를 건너갈 때, 낯익은 얼굴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순간, 착각이 들었다. 고향의 어디쯤일까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 ‘민’이었다. 그를 지하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민도 나를 보고 놀란 듯했는데, 말 한마디만 던지고 휙 가버렸다. 어이없게. 그 말은 “댕겨 넘어가.”였다.


우리 고향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만났다 헤어질 때 인사로 하는 말. 충청도 사투리. ‘다녀 가’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민은 그 말을 하며 손 흔들고 가버렸다. 꿈속에서 본 광경 같았다. 나는 그렇게 가버린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다가 서둘러 지하도를 벗어났다. 환상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고모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순식간에 우연히 일어난 그 일이 정녕 있었던 것일까 싶었다.


객지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 하지 않던가. 나는 솔직히 반가웠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댕겨 넘어가’라는 말만 하고 가버렸다. 이상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무리 우연히 만났더라도 그렇게 헤어지고 말 사이는 아니었다. 한 교실 한 선생님 아래 함께 공부한 사이가 아니던가. 내가 부지불식간에 무슨 잘못을 했나 싶기도 했다. 말 한마디 해 볼 겨를도 없이 가버렸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민도 나도 서울에서 사느라 바빴으리라. 겨우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올라와 머리가 굵어져가고 있었으니까.


그 후로 서울역에 한 번 더 간 적이 있다. 추석 때 고향에서 친구들끼리 했던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오지 않는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민’이 아닌 ‘수’를 만났다. 그때 만났던 ‘수’와 남산을 걸었고 도서관 앞 의자에 앉아 쨍한 낯빛으로 개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왜 그런지 슬펐다. 눈물을 몰래 닦는데 수가 내게 말했다. “너를 공부시키고 싶었어.” 그 말이 부담되어 다시는 수를 만나지 않았다. 서울에서 몇 년 동안 살면서 두 번밖에 서울역에 간 적이 없다.


몇십 년이 흐른 후 동창회에서 ‘민’을 다시 만났다. 수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쉰 살이 넘었고, 조금씩 잔주름이 생겨 늙어가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직도 그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었을까. 민에게 물었다.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스무 살 쯤의 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그때 그 말만 던지고 그냥 가버린 것을. 민은 기억에 없단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서울 한복판에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연히 만난 동창생에게, 댕겨 넘어가라는 한 마디만 할 수 있느냐고 했지만 민은 기억에도 없는 일이라니, 맥이 빠졌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나여서 그랬을까. 민에게 조금도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유난히 섭섭하게 느낀 건, 그때 외로워서였을까. 아니, 그보다 고향 까마귀도 반길 마당에, 어릴 때 한 교실에서 공부한 동창생이었기 때문일 거다. 언제나 나는 그게 문제다. 사람을 지나치게 믿는 것 말이다. 모두 내 맘처럼 여기고 믿는 그것이.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불쑥 떠오른 ‘민’과 ‘수’에 대한 기억은 잘못 탄 버스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이제 모두 추억이 되었다. 서울역 건물 앞으로, 민과 수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모든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옛날처럼 시계탑 앞에서 만나 남산을 걷는 것도 좋으리라. 70년대 중반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서울역, 그 낯설고 두려움이 엄습했던 순간의 느낌도 소환해 본다면.


이제 이해된다. 어쩌면 민도 바쁘게 서울에서 사느라 여유가 없어 그 일을 기억조차 못하는지 모를 일이다. 또 나를 공부시키고 싶었던 수의 그 마음은 순정한 것이었으리라. “네가 왜?”라고 물었을 때, 수는 머뭇대며 말했었다. “너는 공부 잘했고 난 아니잖아.”라고. 공장에 다니며 동생들 학비를 벌고 있는 수라고 해서 공부할 마음이 없었을까. 똑같은 처지에 있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고향친구에게 가질 수 있는 동기간 같은 마음.


때로는 이렇게 버스를 잘못 타도 나쁠 것 없다. 인생길을 걷다가 예기치 못한 곳으로 접어들어도. 새로운 것을 만나거나 뜻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포슬포슬한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젠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조급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아니, 계획하지 않고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랜덤으로 전혀 다른 것과 마주할 수 있을 테고, 그것 또한 겪어낼 연륜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본 서울역, 스무 살 무렵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낯설고 두려움 섞인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가웠다. 아직 네가 있었구나, 있었어, 중얼대며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뜻하지 않게 서울역 앞을 지나며 떠올려 본 옛 기억, 아슴아슴한 그 기억 속에도 민이 했던 말은 또렷이 남아 있다. 무심한 듯 던졌던 그 말은.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안내 음성이 전철 안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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