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미’가 연락을 했다. 찾아뵙고 싶다고. 소미, 딱 한 학기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사무사하다. 교양필수 한 과목을 입학한 첫 학기에 수강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것도 타과 학생이었으니까. 나를 볼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태권도 경호학과 이소미입니다.”를 외치던. 모든 학생들이 목례만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 학과 학생들은 모두 그렇게 큰소리로 인사하곤 했다. 그 가운데 군살 없이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여학생이 소미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모습과 일치하는지 만나기 전까지 정확하지 않았다. 앞자리에 ‘다애’와 같이 앉았고 둘은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솔직히 몇 학번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한 학기에 많게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만나는데 모두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국문과가 아닌 타과 학생들은 한 학기, 많아야 두 학기 정도, 교양과목을 듣는 게 보통이라 더더욱 기억하기 어렵다. 학생들도 한 번 수강한 과목의 교수에게 특별한 감정이나 의미가 없을 터다.
소미는 달랐다. 전화한 적 없지만 문자로 안부를 가끔 물었다.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이나 스승의 날 같은 날, 안녕하십니까? 태권도 경호학과 이소미입니다, 로 시작되는 문자 안부였다. 어느 때는 미국에서 또 베트남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시범 나왔다고. 그런 문자는 모두 졸업 후에 보낸 것들이었다. 재학하고 있을 때는 대개 그렇듯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교정에서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 없었다.
내 강의를 수강한 후 4년쯤 지나 처음 소미의 문자가 왔을 때 약간 의아했다. 그때 나는 이미 소미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져 있었으므로. 혹시 졸업했니?라는 문자를 보냈고, 기억해 주시는 게 놀랍다는 답이 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삼 년에 한 번씩 문자 안부가 왔다. 잊을 만하면 오는 소미의 문자에 무언지 모를 온기가 마음 한 곳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참 특이한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공교수도 아닌 나를 기억하고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는 게.
올해가 시작될 때 소미로부터 또 안부 묻는 문자가 왔고 그 간격이 좁혀졌다. 삼월 초에 또 문자가 왔으니까. 나를 꼭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전에는 그저 막연한 것 같았는데, 소미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습 또한 더 확연해졌다. 머리 모양과 얼굴의 세세한 부분까지 오르르 되살아났다. 그림으로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고 있던 옷까지 생각났으니까.
2023년 4월 3일, 소미와 만나는 날이다. 오전 강의를 끝내자마자 약속장소로 향했다. 설렜다. 간혹 졸업생들을 만난 적이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소미는 나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 차번호를 문자로 보낸 터였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소미가 맞을까. 전혀 다를까. 요즘엔 보통 카카오 톡 프로필에 사진을 올려놓곤 하는데, 소미는 사진 한 장 올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약속장소로 들어가자 소미가 뛰어왔다. 아, 맞다. 내가 그려보았던 그 모습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머리 모양도 눈도 코도 몸매도 모두 맞았다. 나는 초능력을 가진 것일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정확한 소미의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소미에게 물었다. 몇 학번이냐고. 11학번이란다. 그렇다면 12년 만에 만난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신입생시절의 소미와 옆에 앉았던 친구 다애의 모습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니, 소미는 모두 맞다며 놀라워했다.
내 제자 소미가 맞았다. 겨우 한 학기 공부했으나 이렇게 나를 만나고 싶어 한 소미가 진정한 제자 아닌가.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 둘이 이야기 나누며 남한산성으로 향했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사진을 찍고 양평 아름다운 벚꽃 길 드라이브도 했다. 화르르 피어나 온 세상을 화사하게 만든 벚꽃의 미소만큼이나 환하게 웃는 소미. 지금은 태권도가 아닌 애견미용 숍을 운영하고 있단다.
태권도 경호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멋을 내지 않았다. 나를 볼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되는 관등성명을 힘차게 대던 그 학과 학생들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을 자아낸다. 그랬던 소미도 이제 서른두 살이란다. 나와 수업했던 자료들을 파일에 끼워 지금까지 가지고 있단다. 내가 첨삭해 준 리포트도 모두. 내 수업이 그냥 좋았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해주는 인문학 관련 이야기도. 그래서 졸업 후에도 연락하게 되었단다. 가슴 벅차다. 선생으로서 이보다 뿌듯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드라이브를 마치고 남한산성 카페에서 차와 빵을 먹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는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그간 있었던 일까지. 소미는 감성적이었다. 왜 나를 잊지 않았는지 충분히 이해되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글쓰기도 잘했기 때문이리라. 웬만해서 책을 증정하지 않는 나지만 소미에게 내 산문집도 한 권 사인해서 주었다. “감상문은 리포트로 내야 돼.” 소미는 환하게 웃으며 당연히 그러겠단다.
봄날의 해처럼 길고 긴 우리들의 이야기도 이만큼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이제 자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미를 지하철역에서 내려주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럴까.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인사하고 손 흔드는 소미. 내 제자 소미의 앞날이 그야말로 꽃길만 계속되기를 기원했다. 꽃비 내리던 남한산성과 양평 벚꽃 길처럼. 참으로 행복한 봄날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