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봉, 진정한 선물

일상

by 최명숙

메시지가 떴다. 택배 물품이 도착했단다. 현관문을 열었다. 와 있다. 개봉했다. 셀카봉. 이제야 갖게 되었다. 이 셀카봉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으리라. 세상에는 별의별 물품이 다 있다. 모두 다 가질 일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꼭 필요한 것은 있어야 한다.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 지인과 함께 나들이를 했다. 우리가 찾은 곳에 많은 상춘객들이 몰려 붐볐다. 지나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둘이 찍기 위해서 할 수 없었다. 미안했다. 그때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아, 저걸 하나 장만해야겠다 싶었다. 지인에게 말했다. 저걸 하나 사야겠다고. 그러면 공연히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좋을 것 같다고.


바쁜 세상이 되어서 그렇지, 예전에는 남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일이다. 지금도 부탁했을 때 거절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구든 찍어주는 게 우리 인심이다. 그런데 가끔 난감할 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같이 있는 사람들과 찍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든가, 있어도 무척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고 있다든가 할 때 말이다. 머뭇대다가 꼭 한 사람이 빠진 사진을 찍고 만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럴 때 셀카봉을 떠올렸던 것 같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는데, ‘정’이 톡을 보냈다. 셀카봉을 주문했다는 거다. 종류가 많으나 써보니까 편하고 가방에 쏙 들어가서 좋으며 가격도 부담 없으니 마음 편히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줄 알기 때문에 구구절절 쓴 것 같았다. 정의 말대로 첨부된 셀카봉 실물 사진과 함께 찍힌 가격은 무척 저렴했다. 12,500원. ‘정’은 그 지인의 딸이다.


얼굴이 동글동글 예쁘고 늘 생글생글 웃는 아이. 내가 며느리 삼고 싶었을 정도로 성품이 착하고 온유하며 귀여운 정이다. 말할 때는 또 얼마나 애교가 넘치던가. 마침 내가 출강하는 대학에 입학한 정이는 내 수업 조교를 했던 제자이기도 하다. e-러닝 수업으로 전환했을 때였다. 그때 내 추천으로 조교가 되었다.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라며 일절 어떤 일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모두 다 했다. 조교가 할 일까지. 그렇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정이다.


학교 졸업 후 취직을 했고 시간 맞을 때 두어 번 식사를 하며 근황을 듣기도 했다. 이제 8년 다닌 회사에서 퇴직해 건축사 준비를 하고 있단다. 대견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딸이 안 입는 괜찮은 옷도 잘 물려받아 입었던 정이. 내가 며느리 삼고 싶을 정도였지만 못한 이유는 나이 차가 너무 나서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제자다.


정이어머니를 알게 된 건 평생 교육 기관에서였다. 내 강의를 수강했다. 십오 년 정도 되었는데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녀가 모두 제자라면 제자다. 가까이 지내면서 정이어머니가 간절히 취직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취직을 알선해 주었다. 선배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경리로. 정이어머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성실하다.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으니까.


그날 나와 헤어지고 집에 가서 나를 만났다며 셀카봉 이야기를 했단다. 정이가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했고, 내가 살까 봐 얼른 주문한 것이었다. 내 성품을 아는지라 비싸지 않은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해드리고 싶은데, 마음 편치 않을까 봐 그랬단다. 흔쾌히 받기로 했다. 고맙다고 톡을 보냈다. 조만간 우리 만나서 회포를 풀자는 말도 했다. 생각해 보니 정을 만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더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봄꽃이 지기 전에 우리는 만날 것이다. 맛있는 것을 사줘야지. 마음은 벌써 부풀고 있다. 이렇게 엽엽하고 착한 정이가 건축사 시험에 척 붙고 시집도 잘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왜 안 그러겠는가. 정이가 시집가서 아기 낳으면 옷도 사줘야지. 내가 할머니 노릇도 해야지. 갑자기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남자친구도 있다니까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결혼할 수도 있다. 아니 그전에라도 할 수 있으리라.


셀카봉이 담긴 상자를 풀었다. 앙증스러운 물품이 나왔다. 마음에 쏙 든다. 사용설명서에 따라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접힌 것을 하나씩 펴고 늘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근사한 셀카봉이 만들어진다. 리모컨을 눌렀다. 찍히는 소리, 차악! 소리도 맑다. 활짝 웃는 정의 모습이 연상되는 소리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사용법을 익혔다. 솔직히 익히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설치가 편리하고 다시 접기도 쉬웠다.


선물은 이게 진정한 선물이다. 꼭 필요하고, 부담 없으며, 기쁜 것. 그동안 많은 선물을 받았고 했다. 그럴 때마다 고민하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꼭 필요한 것일까. 이것을 해서 부담 느끼지 않고 기뻐할까. 그런 면에서 정이의 선물은 만족스럽다. 아무런 티 없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비싼 물품이었다면 나는 거절했을 거다. 내 주소를 입력하지 않으면 배달되지 않고 취소된다는 걸 앎으로. 기분 좋다.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주어서.


오늘 친구와 여주에 가기로 했다. 봄나들이 삼아. 이 글 발행 후 바로 떠날 것이다. 어제 셀카봉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착하고 엽엽한 제자 정의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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