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된 그녀
그녀를 알게 된 건 글 쓰는 사이트에서다. 벌써 이십여 년이 넘었다. 나는 작가로 그녀는 독자로 만났다.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가 어느 날부터 그녀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플랫폼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친정 같은 그 사이트에서. 사십 대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거기 올렸던 글 중 선별하여 첫 번째 산문집을 출간한 바 있다. 그녀는 여주에서 농사지으며 사는데 가끔 농산물 사진을 글과 함께 올리곤 했다.
우리는 이십여 년 동안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십 년도 훨씬 넘은 어느 초여름이었고, 또 한 번은 우리 딸의 결혼식에서였다. 이십여 년 동안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매 같은 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주 만나야 정이 생기는 게 맞는 말이겠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랬다. 각자의 사정을 잘 앎으로 더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그게 정이리라. 가끔 전화나 메시지로 안부를 확인하는 게 다였지만 마음은 그랬다.
보름 전에 모처럼 전화를 걸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녀가 걱정되어서다. “언니, 괜찮아요. 요즘 일도 시작했어요. 밥집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손이 많이 가는 밥집을 시작했다니, 그 몸으로 어떻게 그 일을 할까 싶었다. 경쾌한 목소리는 희망적으로 들렸지만. 얼마 전에 딸이 결혼해 함께 하고 있단다. 그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저혈당으로 툭하면 쓰러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딸의 결혼식에 왜 초대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가족끼리 작은 결혼식으로 했단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주가 옆 동네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된다. 우리 집에서 약 60Km 정도 거리. 우리 아이 결혼식에 딸과 함께 왔던 그녀다. 저혈당으로 쓰러져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목발까지 짚고. 그 몸으로 버스를 타고 왔었는데, 가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바로 그날 밤 축의금 봉투를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보름 만에 실행에 옮겼다. 마침 그 사이트에서 그녀와 나의 글에 댓글을 달며 소통하던 친구도 함께.
함께 가는 친구는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언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 식사하고 산책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만나게 된 건 얼마 안 되지만 아이들 혼사에도 오고 갈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어느 날 불쑥 시간이 났다며 데이트를 신청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적극성에 감동해 웬만한 일이 있어도 제치고 만나곤 한다. 만나기만 하면 기분 좋은 친구가 그 언니다.
우리는 그녀가 하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주에 도착했을 때 10시가 조금 넘었다. 한 시간 정도 산책하기로 했다. ‘강천보’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우산을 펴고 강을 따라 걸었다. 바람이 불기도 했는데 가는 빗줄기가 바지에 부딪쳤다. 부쩍 자란 쑥을 보며 어머, 저 쑥 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누런 흙탕물을 안고 남한강은 흘렀다. 다리를 건너 강 옆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었다.
이른 점심때쯤 그녀가 하는 음식점 ‘그냥 밥집’에 도착했다.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대견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삶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경건해 보였다. 아름답다. 아직도 완쾌되지 않은 다리를 절룩이며 다가와 나를 끌어안는 동생. 그래, 그녀는 동생으로 마음에 자리한 지 오래다. “언니가 오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요.” 그녀가 감격한 듯 말했다. 우리는 마음을 맞대듯 안고 기꺼워했다.
그녀의 음식점은 말 그대로 소박한 그냥 밥집이었다. 들나물, 콩나물, 감자전, 고구마 묵, 겉절이, 멸치볶음, 계란말이, 무김치, 순두부찌개, 특별히 내놓은 간장게장. 깔밋하고 맛있었다. 더 이상 다른 게 필요하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충분했다. 고향의 냄새가 물씬 나는, 어떤 화려한 밥상과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간 진정한 밥상이었다. 말갛게 쓸어놓은 마당, 그 마당에 펴놓은 멍석, 거기 어머니가 차려준 어릴 적 소박한 밥상처럼. 그랬다.
식사 후 찾은 그녀가 살고 있는 산 아래 황토방은 따끈따끈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그녀는 가게로 가고, 친구와 나는 세종대왕 능인 영릉으로 향했다. 비는 거의 멎었고 벚꽃과 진달래는 물기를 머금은 채 피어 있었다. 정이가 준 선물 셀카봉을 이용해 수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산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둘이 다정하게 찍고 혼자 찍고 풍경만 찍고. 세계적인 어학자이기도 했던 세종대왕 앞에서 가만히 묵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계속했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 깊게 교유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여주의 그녀는 자기가 쓰고 있는 방을 작업실로 쓰라고, 언제든 와서 지내라고 했다. 잘 정돈되지 않아 자연스러운 그녀의 집.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지천으로 질서 없이 심겨 더 편안한 집.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는 또 가자는 다짐도 들어 있었다.
글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남다른 것 같다. 숱한 만남 중에서 진정성을 따진다면 글로 만난 사람들이 단연 제일일 것이다. 그 이유는 글은 내면을 드러내며 깊은 사유와 감정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작가의 세계관과 감정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다른 관계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기간이 짧고 긴 것과 상관없이. 본 적 없는 작가의 글을 읽고 연대감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일 거다.
집에 도착해서도 무질서 속에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그녀의 집이, 그리고 그녀가 지은 밥과 음식이 있는 ‘그냥 밥집’이 눈앞에 어른댔다. 무엇보다 나를 반기던 그녀, 동생의 모습이. 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들어 파는 그냥 밥집에 많은 발길이 찾아와 내가 느낀 소박한 밥상의 감동을 맛볼 수 있기를. 그래서 동생이 용기 내어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상호도 재밌지 않은가, 그냥 밥집. 이러고저러고 장식할 것도 없는 그냥 밥집이라니.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그녀의 성품과 딱 맞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