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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와 산행

나를 위한 시간

by 최명숙


순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집안일은 언제나 찾기만 하면 일이다. 표시 잘 안 나는 게 그거다. 그래, 어차피 표시 안 나는 거 뒤로 미루자. 내가 주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강의 준비를 위한 책 읽기나 쓰기도 따지고 보면 일이다. 순전히 그런 것과 맞물리지 않은, 오롯이 나를 위한 그런, 하찮은 거라도 그걸 하리라. 곰곰이 생각했다. 드라이브다.


새 차를 산 지 7개월이 되어 가는데, 한 번도 순전한 의미의 드라이브를 한 적이 없다. 강의나 임무를 위해 매일 운행해 왔을 따름이다. 생각지도 못했다. 좋다. 오늘은 드라이브를 해야겠다. 가깝거나 멀거나 상관없다. 정녕 매칼없이 순전히 드라이브를 위한 드라이브를 하리라.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가보리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핀 길을 달리며 ‘현재 쾌락적 시간’을 누리리라.


내가 잘하는 것 한 가지는 마음먹으면 빨리 실천하는 것이다. 5분 안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세수, 간식, 물, 손수건을 작은 가방에 담고, 기초화장까지. 나머지는 차에서 신호 대기 시, 마무리하면 된다. 옷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 총 7분. 이만하면 초스피드 아닌가. 이 정도로 빠른 건 숱하게 해 와서 숙련되었기 때문이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 그건 내게 댈 바 아니다. 무슨 사정이 있을지라도 준비하고 차에 오르는 시간까지 10분 안에 해결되는 게 보통이다.


드라이브 시작. 몸이 시키는 대로 갈 생각이다. 차에서 보이는 풍경은 이틀 만에 바뀌었다. 하천 가의 버드나무는 연노랑과 연두가 섞인 묘한 색을 연출해 낸다. 잎새가 나오는 것이리라. 차에서 보니 달라진 게 더 확연했다. 그뿐 아니었다. 사거리에 이르자 벚꽃이 피었다. 다른 나무는 꽃망울만 맺혔는데. 딱 두 그루에 꽃이 피었다. 매화와 벚꽃이 어우러져 봄 경치를 완연히 드러냈다. 어느새 나는 남한산성 쪽으로 향하고 있다. 몸은 습관에 충실하다.


남한산성 오르는 길은 언제나처럼 정겹다. 구불구불한 산 길, 온 세상을 노랗게 만들어 버릴 것 같은, 손을 대면 노랑물이 묻어날 것 같은 개나리가 긴긴 봄날의 해처럼 끝없이 피어 있다. 거기에 드문드문 진달래도. 그래, 정녕 봄은 오고야 말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오는 계절과 피어나는 꽃들. 그 정직한 믿음 앞에, 인간이 저지르는 부정과 불신은 한갓 허섭스레기 같다. 아, 저 아래 파릇한 잎사귀, 꽃보다 더 예쁜 귀룽나무다.


산성을 향해 오르면서 다시 계절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차츰차츰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듯, 개나리와 진달래는 꽃망울만 맺혀 있고, 벚나무도 마찬가지다. 산성마을에는 다시 겨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과거의 공간인 듯했다. 좀 전에 보았던 개나리와 진달래는 환각이었던 걸까. 우리 마을 사거리에서 보았던 벚꽃과 버드나무는. 우리 인생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할까. 묘한 기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수어장대를 향해 걷는다. ‘침괘정’을 지나 솔밭 길을 걷는다. 등산객들이 내려온다. 남녀가 손을 잡고, 혹은 중년 여성 서넛이 이야기 나누며. 나처럼 홀로 산에 오르거나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호젓하다.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마을 아래서 김밥과 만두를 사 들고 온 적 있었다. 포도와 복숭아를 갖고 와 저 의자에 앉아 먹으며 웃었던 적도. 의자는 여전히 그대로다. 우리가 앉았던 그곳이 빈 채로. 눈길을 돌렸다. 눈물이 괸다. 그래도 괜찮다. 그리운 것은 그리워하는 게 맞으니까. 억지로 슬픔을 가슴속에 욱여넣을 필요 없다. 그것이 새살이 되지 않으므로.


수어장대가 저만큼 보인다. 땀이 흐르고 그리움도 흐른다. 나를 떠난 그들은 높은 곳에서 나를 보고 있을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눈으로 들어오는 건 흐릿한 하늘뿐이다. 산 정상은 더욱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새싹이 껍질을 터치고 나오는 게 보였다. 강하다. 저 생명력이. 여리고 여린 새싹이 껍질에 금을 만들고 급기야 뚫고 나오다니. 그래야 한다. 슬픔도 가슴을 터치고 나와 삶의 현실에서 보송하게 말라야 한다. 그래야 그리움으로 자리할 수 있을 테니까.


산성에서 내려올 때 마음은 평온하게 가라앉았고 그리운 이들을 떠올림으로써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과 함께 걸었던 길을, 그들을 불러내 함께 걸었으므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일 거다. 한동안 남한산성에 오르지 않았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지나친 적은 수없이 많았다. 그 이유를 잘 안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고, 슬픔이 닳고 닳아 그리움으로 자리 바뀜 했기 때문일 거다. 그리움은 아름답다.


찻집에 들러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내 계획이었는데 그건 남겨두기로 했다. 산행 후여서 그럴까, 깊은 생각이 잠겼다 빠져나와서 그럴까, 허기가 밀물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혼자 사 먹는 음식,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며 서서히 봄이 오는 풍경을 감상했다. 2월 말이었다가, 3월 초였다가, 3월 중순을 지나, 3월 말을 향해 갔다. 3월 말이 가까워지는 세상은 온통 개나리와 진달래로 흥성댔다.


순전히 나를 위해 가진 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드라이브와 산행, 좋았다. 그 시간은 슬픔을 그리움으로 바꾸는 시간이었고, 필립 짐바르도의 견해에 따른 ‘현재 쾌락적 시간관’의 중요성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또 현재를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 아, 소고기. 오늘은 기필코 소고기를 사리라. 훗, 살짝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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