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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길 스케치

단조로운 삶에 활기를 주는

by 최명숙


저녁 산책에 나섰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모두 ‘좋음’. 이틀 동안 내린 비에 먼지는 다 씻겨 내려간 모양이다. 며칠 동안 연이은 나들이로 고단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종일 쉬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 쉰다는 건 시간이 아까워 못했던 일인데. 이제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무엇이든.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바람이 조금 불었다. 우줄우줄 춤을 추는 듯 움직이는 나무들. 아파트 정원의 꽃이 대부분 다 지고 말았다. 고들빼기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뽑았다면 저 고운 꽃을 못 보았을 거다. 집에 들어가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나올까. 옷을 얇게 입은 것 같아 잠시 갈등했다. 그대로 나섰다. 정원 옆 개울로 나가는 길에 장미가 꽃망울을 키우고 있었다. 머잖아 장미의 계절이 오겠네.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개울을 옆에 끼고 걷는 산책로. 며칠 동안 공사를 하더니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듯했다. 아마도 장마를 대비해 한 공사일 것이다. 웬만큼 비가 오면 개울물이 넘치곤 했으니까. 올여름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예상과 다른 일이 언제나 일어나는 게 삶이니까. 한동안 개울가 산책로에 나오지 않은 건 이제 생각하니 공사 때문이었다. 가끔 내가 한 행동의 원인을 잊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산책로에 들어섰다. 삼삼오오 어울려 걷는 사람들,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 개를 한 마리 또는 두세 마리 데리고 걷는 사람들. 산책자의 모습은 다양하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큰 개를 위협적으로 느낄 때 있다. 대부분 훈련이 잘 돼 있어서 괜찮고, 어린 강아지는 귀여워 싱긋 미소 짓게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확실히 늘었다. 오래전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처음 읽었을 때, 소재와 제목을 이질적으로 느꼈었다. 그런데 이제 일상적으로 보이는 광경이 되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곁을 지나며 그 생각이 떠올랐다.


당조팝나무 꽃이 휘휘 늘어져 피었다. 몽글몽글 꼭 구름이 피어나고 있는 듯. 조팝꽃과 모양은 같은데, 아기 주먹만 한 꽃송이를 가지 따라 줄줄이 매달고 피었다. 꽃송이를 이룬 것은 작은 꽃들이다. 조팝꽃이 지고 나면 당조팝꽃이 핀다. 어머니는 저 꽃들을 보고 설유화라고 했다. 맞다. 꼭 하얀 눈이 소복소복 무더기로 내려앉은 것 같다. 설유화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


창포도 피었다. 창포는 물가에서 소담스레 웃고 있다. 푸르고 길쭉한 꽃 대궁을 밀어 올린 끝에 노란 꽃을 매달고 있다. 창포가 작년보다 더 많아진 듯하다. 번식했기 때문에 그러리라. 단오가 가까워지고 있다. 단오가 되면 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지 않던가. 노란 창포꽃 옆 징검다리를 아버지와 딸이 건너고 있었다. 두 사람 미소가 창포 꽃을 닮았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난다.


왜가리 두 마리가 물속에서 물고기를 노리고 있다. 나를 보는 듯하더니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는다. 금세 피라미 한 마리를 입에 물었다. 버둥대는 피라미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가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먹이사슬, 약육강식. 때로 자연의 법칙은 잔인하다. 아름답고 자연스러움의 내부에 그런 잔인함이 숨 쉬고 있다니.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피라미를 삼킨 왜가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너, 미워! 또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열두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징검다리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 개울 양쪽에 구경꾼들이 열 명 남짓 서서 남자애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다. 그 아이들은 물속에 있는 무엇을 손으로 움켜쥐려고 했다. 잉어다. 어른 팔뚝만 한 잉어 두 마리가 징검다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 잉어가 어디서 왔을까. 저 잉어를 왜 잡으려고 하는 걸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 있는 어른들은 또 왜. 아이들이 잉어를 잡을 듯 말 듯, 어른들은 약간 소리 내서 웃거나 미소를 지었다.


그곳을 지나쳐 붓꽃 군락지 옆을 지날 즈음, 민소매 아가씨가 달리는 것을 보았다. 건강한 모습. 저 붓꽃의 꽃대처럼 곧은 몸매. 연분홍 민소매 셔츠와 레깅스 위에 묶은 바람막이 점퍼, 긴 머리를 나풀대며 내 곁을 바람처럼 스쳐 달려갔다. 나도 힘차게 걸었다. 물오리들은 보이지 않고, 물오리 놀던 곳 옆 풀 섶에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미나리아재비도 모여 피어있으니 예쁘다. 토끼풀꽃과 푸르게 대궁을 밀어 올리는 갈대도, 다 예쁘다.


물결 넘실대는 탄천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둘은 입을 맞추었다. 깜짝 놀랐다. 나만 지나쳐 가면 아무도 없는 곳이 나올 텐데, 내 눈앞에서 입 맞추다니. 학교에서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다. 딱 한 번.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보는데 순식간에 뽀뽀하던. 그만큼 간절했던 걸까. 사랑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 저런 열정이 이제 내게는 없다. 예쁘게 봐주기로 했다. 안 봐준들 어쩌랴.


우리 아파트 불빛이 저만큼 보인다. 붓꽃도, 창포도, 애기똥풀도, 잉어도, 왜가리도, 당조팝나무도 모두 그대로 있는데, 산책자들은 없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빈 산책로, 그 빈 곳을 자연물이 지키고 있다. 인위적인 가로등도 함께. 그 길을 홀로 걷는다. 모처럼 저녁 산책길, 오가는 길에 보았던 다양한 모습들, 그것은 단조로운 삶에 활기를 주는 것들이었다. 촉촉하게 흐른 땀이 밤바람에 선득선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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