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행, 그 기억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저 산을 볼 때 감회에 젖곤 한다. 한 동네 사는 여성들과 산악회를 결성해 처음 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때였다. 스물아홉, 서른을 앞두고 있는 이맘때, 무슨 마음이 들어서 그랬을까. 위성도시로 분가해 두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는데. 왜 뜬금없이 등산모임을 만들고 싶었을까. 변화 없는 삶이 나른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 멀어져 가는 자아실현, 무기력해진 삶의 의욕, 그것들과 버무려진 평범하다 못해 구질구질하게 생각되는 일상. 힘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연년생으로 네다섯 살인 두 아이, 성실한 남편,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정경제. 무슨 대단한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나는 그 나이에 그 삶을 견딜 수 없어했는지. 하지만 그게 그때의 나였다.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이해되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았다. 어느 마을의 50대 여성들이 산행하는 장면을. 진달래꽃 숲에서 그 꽃처럼 웃고 있는 여성들을. 마음이 끌렸다. 나도 그들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강한 느낌은 며칠 내 생각을 사로잡았다. 마음먹으면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다. 안면 있는 몇 사람에게 의사를 물었고, 그들의 호응으로 회원 모집이 되었다. 여섯 명. 모두 평범하게 살림만 하는 주부들이었다.
첫 산행 도봉산, 잊을 수 없다. 코펠과 버너, 쌀과 반찬을 챙겨 나섰을 때, 마음이 설렜다. 결혼 전에 동네 뒷산에 나물 뜯으러, 혹은 나무 하러 오르내린 것 말고, 산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쉽지 않았다. 코스도 길었지만 험했다. 바위에 오르다 뒤를 돌아다보면 낭떠러지여서 얼마나 놀랐던가.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어, 발발 떨리는 발걸음을 이 악물고 옮겼더랬다.
즐겁기도 했다. 갖가지 나무와 꽃 위에 지저귀는 산새들. 모두 익숙한 풍경이었고, 도시에 살면서 잊었던 것들이었다. 그 느낌을, 아니 감성을 다시 깨우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산행 중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흐르는 계곡물로 밥을 지어먹었다. 먹고 나서 노래와 율동을 했고, 수다를 떨었다. 즐거웠던 그때의 나를. 단발머리 앳된 스물아홉 살짜리 나를. 지금은 첫 산행 때 찍은 사진 속에서 만나곤 한다.
나른한 일상을 견디기 힘들어 시작했던 산행은 도봉산을 기점으로 이어졌다. 관악산, 청계산, 북한산, 천마산, 운악산, 삼악산, 명성산, 유명산 등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했고, 서울 경기에 있는 산으로 갔다. 어느 산엔 약수터가 없고, 어느 산엔 돌이 많고, 또 능선이 길고, 계곡물이 흐르는지,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렇다.
두 아이를 맡기고 산에 갈 때마다 남편은 장난을 쳤다. 오늘은 무슨 산이야, 북망산?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지 키득거렸다. 들은 척 만 척 코펠을 챙기면 주섬주섬 필요한 것을 배낭에 넣어주기도 했다. 조신하게 살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을까. 물론 나는 그때도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산에 다녀오면 한동안 그날이 그날 같은 날이라 해도 견딜 만했다.
산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걸.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 같은 쾌감은 항상 잠시였다. 산길은 우리의 삶을 닮았다. 평평한 길이 있지만 거칠고 움푹 파인 길도 있다. 숨이 턱에 차도록 헉헉거리며 오르다가 느끼는 시원함. 그것 때문에 일이 힘들어도, 어려운 일을 겪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시원한 느낌은 같았으니까. 그걸 카타르시스라고 하면 비약일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학위 논문을 써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였을 때, 내 상황은 최악이었다. 건강은 좋지 않았고, 가정경제는 바닥났으며, 정신적으로도 모든 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꾸 다른 길을 제시했으니까. 그래도 끝장을 보고 싶었다. 정상을 앞에 둔 ‘깔딱 고개’를, 숨이 턱에 차더라도 넘고 싶었던 것처럼 해내고 싶었다. 그것은 등산에서 얻은 용기일 거다. 일 년 동안 매일 새벽기도 후 남한산성에 올랐다. 차츰 건강이 회복되었고, 정신적인 동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결국 썼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상당 부분에 등산으로 얻은 교훈이 영향을 끼쳤다. 남편은 놀리곤 했다. 내려올 것을 뭐 하러 올라가느냐고.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가 되받곤 했다. 또 배고플 건데, 뭐 하러 먹느냐고. 할 말 없는 그는 키득거리기만 했다.
나른하고 변화 없는 삶을 견디기 힘들어 시작했던 산행, 지금은 둘 다 즐긴다. 산행도 나른함도.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름대로의 것들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삶의 동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터다. 이만큼 살며 숱한 것들을 겪다 보니 내공이 생긴 걸까. 그렇다면 좋은 일인데. 어쨌든.
건너다 보이는 산이 검푸르다. 소만(小滿)이 지났으니 안 그러랴. 오늘은 산에 오르고 싶다. 저 숲 속으로 들어가 산새들의 노래에 화음을 넣으며 느릿느릿 걷다가, 잰걸음으로 걷고, 그랬다가 또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막길을 정신없이 오르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은 날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다가 산자락 풀 섶에 앉아 조용히 웃고 있는 들꽃에게 말을 걸고 싶다. 참 곱다고. 또 산에게 말을 걸고 싶다. 나른한 내 삶을 깨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