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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주는 선물

내가 숲으로 가는 이유

by 최명숙


숲이 우거졌다. 덜꿩나무 꽃이 말라 떨어졌고, 후박나무도 잎사귀만 무성했다. 거기 뱀 나와요, 산이 무서워요. 지난번 산책로에서 만난 여인이 말했었다. 숲으로 들어가니 그녀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겁이 많은 사람이 나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오랜만에 산행하는 것이므로. 따지고 보면 산행이랄 것도 없다. 산책이다. 단지 산을 선택했다는 것뿐. 그것도 뒷산을.


허리길이라고 부르는 오솔길.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길은 나무꾼이나 다닐 정도로 조붓한 길이었다. 십 년이 넘으니 두 사람이 걸어도 남을 정도로 넓은 길이 되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가팔라 그런지, 오솔길을 발밤발밤 걷는 게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넓어졌다. 두세 사람만 다녀도 길이 난다더니 맞다. 내리막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지 같은 길이다.


내가 볼 때 이 길은 ‘허리길’이 아니다. 산의 허리라면 중간정도 높이에 있어야 하는데 아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종아리길’이 적당하다. 무릎에도 못 미치는 종아리. 전체적인 산 높이로 볼 때 그게 맞다. 굳이 허리길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도 발음이 종아리길보다 편해서일 거다. 보통 이 길의 발음을 허리길이 아니라 ‘허릿길’로 낸다. 사이시옷을 붙여서. 맞춤법 도구에서 맞지 않는다고 뜨는데, 나도 그렇게 부른다. 언중을 따라서. 이러다 언젠가 허릿길이 맞는 것으로 인정될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허리길 따라 걷다 보면 갖가지 나무를 만난다. 덜꿩나무도 그렇지만 팥배나무 때죽나무 가중나무 밤나무다. 무엇보다 참나무가 많다. 참나무는 종류도 다양하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잎사귀 모양을 보고 이름을 달리 붙인다는데, 아무리 봐도 그게 그것 같다. 두어 가지만 정확하게 구분될 정도다. 아무튼 모든 참나무에 공통적으로 열리는 게 도토리다. 도토리 모양을 보면 조금씩 다르다.


목적한 곳까지 2.8Km쯤 된다. 그 중간쯤 가면 참나무 연리지를 만난다. 한 나무에서 나온 참나무 가지 두 개가 2m쯤 높이에서 서로 엉겨 붙었다. 연리지는 한 나무에서 나온 다른 줄기가 합쳐지는 경우와 각각 다른 나무의 줄기가 합쳐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단다. 그렇겠지.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부부의 화목이나 남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원래는 효심을 뜻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모두 어렵다는 것을 내포하는 의미인 듯하다.


연리지가 있는 곳을 조금 지나면 오리나무가 있다. 내가 이름 붙인 건 의자나무다. 앉기 좋게 ㄴ자를 반대로 한 것처럼 생겼다. 의자나무에 앉으면 바로 앞에 개암나무가 보인다. 딱딱한 열매가 굵어지면 따서 깨물어 알맹이를 꺼낸다. 아, 그 고소한 맛이란 밤에 비할 바 아니다. 개암나무는 딱 한 그루다. 장마가 지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면 꼭 의자나무 앞에 몇 개 떨어져 있곤 했다. 그걸 주워 까먹는 재미도 괜찮다. 올여름에도 그 맛을 보리라 기대하고 있다.


숲은 어둑했다. 눈을 비벼보았다. 여전히 어둑하다. 모처럼 쾌청한 날인데. 그만큼 숲이 우거졌기 때문이리라. 소만이 지난 지 벌써 보름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잎사귀가 커질 테니까. 더구나 며칠 전에 비가 사흘이나 내렸으니. 꿩이 푸드득 날았다. 깜짝 놀랐다. 내 발걸음을 듣고 달아나는 것 같았다. 아무 짓도 안 할 건데, 미리 겁을 내다니.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또 걷는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반대쪽에서 오고 있다. 남자는 앞서고 여자는 스틱을 짚고 뒤에 온다. 몸이 불편해 보인다. 약간 오르막길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여자가 잡는다. 투박한 남자의 손을. 산책하거나 산행하다 보면 가끔 보는 장면이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운동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리라. 저렇게 노력하다 보면 분명히 몸이 나아지리라.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남은 날들을 더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낫지 않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아야 한다. 잠시 그 부부를 위해 기도했다. 마쳤을 때, 그들은 나와 반대방향으로 저만큼 가고 있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순해 보인다. 인(仁)한 사람들이 산을 좋아해서 그런 걸까. 산을 좋아하다 보니 인(仁)해지는 걸까. 아무튼.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일 거다. 조붓한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들이 서로 배려하는 모습도 흔히 본다. 도로에서 울리는 경적이나 무리한 끼어들기에 대한 불쾌함을 떠올릴 수 없는 모습들이다. 산에서 만나는 이들이나 도로에서 만나는 이들이나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모두 자연이 연출하는 장면이다.


산에 가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산에 가면 마음이 맑아진다. 산에 가면, 가기만 하면 저절로. 의도하지 않아도 그리 되고 만다. 산이 주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값없이 준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해야 할 것은 산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것만 한다면 누구라도 받을 수 있다. 덤으로 주어지는 것도 있는데, 그건 건강이다.


목적지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더 이상 무리할 필요 없다. 이렇게 걸으면 8,000보쯤 된다. 오늘 과제 끝. 마을로 내려가는 입구 의자에 그 부부가 앉아 있었다. 고요히, 그림처럼. 한 폭의 한국화. 살짝 목례를 했다. 여자가 빙긋 웃으며 목례를 건넨다. 남자는 미소만 짓는다. 가슴에 가만히 밀려드는 충만감, 그건 인간애일까. 역시 산이 주는 선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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