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편한 게 최고다

일상

by 최명숙

임플란트 할 치아의 본을 뜨기 위해 치과에 갔다. 의사는 친절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한 번 나와 말다툼을 하고 난 후 친절해졌다. 사실 의사와 환자가 말다툼을 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웬만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의사와 말다툼을 하게 된 건 전적으로 그 의사의 무례한 말투 때문이었다. 의사라고 말을 함부로 할 특권을 받은 건 아닐 터였다. 또 환자라고 그걸 무조건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지난겨울이었다. 치통을 견디다 못해 치과에 갔던 때였다. 의사가 대뜸 말했다. “미련하게 왜 그래요. 바로 오지.” 경어와 반말을 섞어 말하는 태도보다 ‘미련하게’라는 어휘가 거슬렸다. 일단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의사에게 물었다. 아까 한 말이 지나치다 생각하지 않느냐고. 의사는 뜨악한 표정이었다. 나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고. 안 그래도 아픈데 그렇게 말하면 되겠느냐고. 사정이 있어서 바로 오지 못한 건데, 무례하게 들렸다고.


의사는 얼굴이 빨개졌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내게 사과했어야 옳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고 변명했다. 아프면 바로 병원에 와야지 참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고. 그 말이 거슬리면 안 와도 상관없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은 말까지 내뱉는 의사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말을 나오는 대로 해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던 듯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불쾌하다고.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섰다.


십여 년 동안 다닌 치과였다. 내 치아 몇 개를 거기서 치료받았지만 의사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없다. 의사가 들어오기 전에 나는 치료 의자에 누워 얼굴에 천을 둘러쓰고 있었으며, 입을 벌리라면 벌리고 다물라면 다물었다. 누워서 설명을 들었고 끝났다고 할 때 의사는 치료실에서 나가고 없었다. 다음 일정을 언제나 간호사에게 들었다. 그러니 치아 두 개를 신경 치료하고 씌웠지만 의사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없다. 그렇다고 얼굴을 모르는 건 아니다. 머리카락이 센 것도 아니까. 제대로 정확하게 본 적 없다는 말이다. 그날 비로소 의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나라 굴지의 병원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관절이 좋지 않아 걸음이 원활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하기 위해 어렵게 예약하고 찾은 병원이었다. 엑스레이를 수없이 찍은 후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휠체어에 타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한 번 쓱 보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분 치료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어머니라도 못 해 드린다면서.


어이없었다. 환자를 면전에 두고 그런 막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사진을 찍고 검사를 한 것일까. 그것을 살펴보지 않고 어머니 얼굴만 한 번 보고 무성의하게 말하는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1분 진료니 3분 진료니 하는 말이 있어도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조목조목 따졌다. 그리고 환자 면전에서 곧 땅 속으로 들어가실 것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당신 어머니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무슨 의사가 그러냐고.


그때가 생각나서 더 화가 났던 것일까. 이틀 동안 생각했다. 그 치과에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안 와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오지 말라는 의미일까. 치료 중이니까 그 치과에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물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치과도 있다. 치료를 받으러 가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 다니던 곳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그건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나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별한 의도 없이 말한 건데 듣는 쪽에서 불쾌하다고 하니, 당황해서 안 와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한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습관이 안 되었으니 사과도 쉽지 않았을 테고. 더구나 나이도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차트를 보면 내가 십여 년이나 다닌 것을 알았을 것이니, 한 편으로는 편하게 한다는 게 그렇게 말이 나왔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의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이해하려는 것인가. 늘 남의 마음을 배려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어리석어서 그런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나도 의사도 선을 넘은 게 맞다. 나는 그렇게 어휘 하나에 날 세우지 말고 웃어넘겼다면 어땠을까. 의사는 단골 환자이다 보니 그냥 편하게 한 말일 수도 있으니까. 의사 역시 아픈 게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다고 기분 나쁘냐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안 와도 상관없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날 우리는 선을 넘었다. 내가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잘한 일이다. 자존심 세우고 끝까지 싸울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까.


어쨌든 치료 날짜에 맞춰 치과에 갔다. 의사는 친절하게 물었다. 아프지 않았느냐고.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고. 지난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행동으로 볼 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거라고 나는 해석했다. 의사가 스케일링까지 직접 해주었다. 지금까지 간호사가 했던 일인데. 엊그제 일에 대하여 그는 언급하지 않았고,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치료를 받았다. 더구나 다른 치아의 임플란트까지 시작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의사는 늘 친절하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면서 임플란트 본을 떴다. 심어놓은 뿌리가 단단하게 잘 굳었단다. 관리를 잘했다며 칭찬도 했다. 내가 그 치과에 가지 않았다면 그 의사는 말실수한 것이 작은 상처로 남았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을 테지만 마음 불편했을 것이다. 그걸 아는 나는 그 치과에 안 갈 수 없었다. 의사의 마음까지 미루어 짐작해 배려할 필요 없을지 모르겠으나, 그것 역시 불편한 일이니까.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은 개울가 산책로를 선택했다. 잿빛 왜가리와 하얀 두루미가 물속에서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황매화와 철쭉이 피어 있는 길은 아름다웠다. 흐르는 물도 맑았다. 이제 며칠 후면 임플란트 한 튼튼한 이로 맛있는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보인 행동을 의사가 알고 개선하려 노력한 것 같아 마음 편하다. 편한 마음처럼 임플란트 한 치아도 편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편한 게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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