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고궁에서 하루를 보내다

여고 친구 선이

by 최명숙

비원이라 불리던 창덕궁 후원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의 진정성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숲길에 우거진 소나무 단풍나무 아니 모든 나무들은 아름드리였다. 몇 백 년이나 된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서 후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연못은 또 어떤가. 영·정조와 효명세자의 일화보다 연못의 풍광에 빠져 그야말로 연못 속으로 빠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달도 아닌데 말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후원과 창덕궁을 비롯하여 창경궁과 낙선재에서 긴 봄날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여고 때 친구 ‘선’이 보름 전에 연락을 해왔다. 보고 싶다고. 지금 쉬고 있다고. 반가워서 선뜻 약속을 정했다. 병원 예약까지 미루고. 일단 친구를 만나 놀고 보자, ‘현재 쾌락적 시간’을 보내는 것에 관심을 두기로 하지 않았던가. 선이는 고궁에 가고 싶단다. “좋아, 창덕궁에 갈까? 후원은 예약을 해야 하는데 될지 모르겠네.” 내 말에 선이는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했다. 안 되면 창덕궁과 창경궁에라도 가자고.


어제였다. 아침까지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쌀쌀했다. 올해는 꽃샘추위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옷을 조금 도톰하게 입길 잘했다. 이상했다. 마음이 설레는 게. 꼭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처럼 그랬다. 하늘은 약간 흐렸다. 그래, 이런 날이 다니긴 더 좋아. 혼잣말을 중얼대며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고궁 근처에서 만났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일렀다. 웃었다. 그만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라 생각하며. 선이도 내 마음을 아는 듯 미소 지었다. 전과 그대로다, 예쁘네. 이것을 으레 하는 인사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정을 담은 인사다.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고궁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없으니까. 선이가 국수를 먹고 싶단다.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다른 것은 어떠냐고 했지만 선이는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 나면 가끔 자장면을 먹었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끝나면 무척 배가 고팠다. 젊고 푸르던 시절 아닌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더구나 점심 도시락을 못 챙겨 온 날은 더욱. 의기투합. 또 한 명의 ‘선’까지 우린 자장면을 먹으러 학교 앞 식당에 가곤 했다. 두 명의 ‘선’을 one선, two선이라고 했고, 나까지 우린 삼총사였다. ‘Two sun and suk’, 이것이 공식적인 우리 삼총사 이름이었다. 그땐 왜 그리 영어로 붙이길 좋아했던지.


고궁 앞 중국음식점에서 간짜장을 먹었다. 오랜만이다. 선도 그렇단다. 음식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우린 어느새 여고생이 되어 있었으니까. 희한한 일이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초등학생이 되고, 여고시절 친구를 만나면 여고생이 되는 게. 우린 나이를 잊고 얼굴의 주름도 잊은 채, 식당에서 손을 잡고 나왔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우린 꼭 붙어 있었다.


후원을 걸으며 말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여자끼리 손을 잡고 다니면 레즈비언으로 오해한대.” 그렇대? 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다 둘이 쿡쿡 웃었다. 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나는 가는 곳마다 살고 싶은 곳이었다. 선이 그럴 때마다 쿡쿡 웃었다. 저 조그만 방에서 탁자 하나 놓고 앉아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다 산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들어오는 햇살에 눈길을 빼앗기며, 해찰 부리는 삶을 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충만해졌다.


그렇게 가슴 차오르는 느낌을 후원과 창경궁 풍광에 빠져 실컷 느꼈다. 몇 백 년씩이나 되었다는 아름드리나무, 애기똥풀과 꽃마리 고들빼기 민들레 등의 들꽃, 피고 지는 모란, 매발톱꽃, 산사나무꽃이 서로 어우러져 봄날의 풍경을 자아냈다. 거기다 유유히 걷는 관광객들. 일상의 풍경과 동떨어진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멀지도 않은 곳인데 왜 그렇게 누리지 못했을까.


그곳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래도 이제 돌아가야 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고궁에서 나왔고, 광장시장 구경도 하고 가자며 종로 거리를 걸었다. 40년도 훨씬 전에 내가 걸었던 길이다. 그때 다니던 학교도 저 후원 뒤쪽이 아니었던가. 이 종로 거리를 걸어서 다니곤 했는데, 이제 땅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우리는 자주 길을 물으며 광장시장을 찾았다.


광장시장에서 견과류 몇 가지를 샀고 호떡과 순대와 떡볶이 등의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그러면서 웃었다. 손을 꼭 잡고. 광장시장은 옛날 못지않게 붐볐다. 어쩌면 더 붐비는 것도 같았다. 인구가 줄어 걱정이라는데 복잡한 곳에 가보면 그 말이 실감 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만원인 것 같으니까. 함께 못한 또 한 명의 ‘선’에게 둘이 찍은 사진을 전송했고,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서로 엇갈려 하지 못해 아쉬웠다.

헤어지며 손을 꼭 잡고 우린 말했다. 자주 만나자고. 시간만 되면 이렇게 나들이하자고. 그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때만은 굳게 다짐했다. 그러기로. 이제 ‘현재 쾌락적 시간’을 자주 가지며 그 부분을 보완해 나가리라고. 인생에서 이렇게 달콤한 시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많이 변했다. 변해가고 있다. 그건 발전이다. 아무튼 즐겁고 행복한 봄날 고궁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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