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게 고마운 날

일상

by 최명숙


친구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늘 입에 담던 딸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게 놀랍고 반갑다며 친구는 들떠 있었다. 나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그 친구의 인생여정을 대충이라도 아는 나였기에. 남자친구 생겼다고 다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도 어딘가. 일단 미혼여성 그것도 비혼을 입에 담던 여성이, 이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혼에 희망적이란 의미 아닌가.


솔직히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남녀들이 결혼하기 바란다. 덜 세련되어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냥 그렇다. 이유를 모두 대다 보면 쟁점화될 것 같아 그만둔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앞으로 결혼할 것인지 아닌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하겠다는 학생이 90% 되더니 차츰 줄어 60%쯤 되었을 작년에 퇴직했다. 내가 결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한 다음에 다시 손들어 보라고 하면, 결혼하겠다는 비중이 5~10% 정도 상승했다. 친구 딸에게 남자친구 생긴 게 반가운 것은 그런 나의 생각도 반영되었으리라.


어쨌든 그 소식을 들은 게 작년 봄이었다. 어느 날은 예비사윗감이 인사 왔다고, 어느 날은 상견례 날짜가 정해졌다고, 어느 날은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고, 연락이 왔다. 친구는 들떠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듯했다. 걱정이 되면 내게 전화했다. 먼저 딸을 시집보낸 입장이어서 묻는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고 딸이 결혼한다는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딸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의견 충돌 날 땐 딸의 의견대로 하라고. 다른 건 중요하지 않고, 내 딸이 결혼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이다.


나도 그랬었다. 과년한 딸이 결혼한다고 할 때, 두말도 않고 허락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다행히 사돈댁도 마찬가지여서 사위와 딸 둘이서 모든 준비를 했다. 둘은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것처럼 재밌게 준비했다. 다툴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때도 나는 말했다. 무조건 사위와 사돈댁의 생각에 맞춰서 하라고, 난 다 괜찮다고.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주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알아서 다 하니까 지켜보면서, 할 수 있다면 비용만 조금 조력해 주라고.


드디어 어제 친구 딸이 결혼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단비였다. 친구가 내게 축의금 접수를 봐달라고 해서 일찍 출발했다. 전날 친구가 날이 궂을까 봐 걱정이라고 하기에,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 산단다고 했다. 친구가 히힛 웃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딸이 잘 살기만을 기도하라고 했다. 비는 결혼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산야에 자라는 식물들에게 꼭 필요한 생명수 같은 비다. 오늘 결혼하는 친구 딸 ‘람’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운전했다. 혹시 길이 막힐까 염려되어 일찍 출발한 덕분에 두 시간이나 이르게 도착했다. 차 안에서 잠시 휴식했다.


처음으로 만난 신부 ‘람’이는 친구와 똑같이 닮았다. 축하하는 말을 전하고 친구의 손을 잡았다. 왜 눈물이 나려는 걸까. 얼른 마음을 다잡고 접수대로 향했다. 지금까지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나로선 눈물이 안 날 수 없다. 그래도 꾹 참고 밝은 표정으로 앉아 일을 보았다. 주례를 서 본 적은 있으나 접수대에 앉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친구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조력하고 싶었다. 부탁받았을 때 흔쾌히 걱정 말라고 한 것은 그래서다. 우스갯소리로 축의금 다 갖고 튈 수도 있는데, 그래도 된다면 맡겠다고. 친구가 하하 웃으며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무사히 일을 마쳤다. 들어온 축의금과 명단, 화환의 리본까지 접어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연회장에서 식사하는데 음식 맛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나도 ‘람’이의 결혼이 긴장되고 설레었던 모양이다. 우리 딸 결혼식 때도 그랬다. 밥맛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람이가 신랑과 함께 인사를 하러 왔다. 다시 또 손을 꼭 쥐어주며 잘 살라고 했다. 기도해 주겠다며. 람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구가 전화했다. 고맙다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어.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람이는 아주 잘 살 거야.” 친구가 또 고맙다고 했다. “우리 사이에 뭐가? 당연한 거지. 어여 쉬어.” 친구는 또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딸의 결혼식 때 세상 모든 것이 고마웠다. 해와 달과 별과 하늘과 나무와 풀과 사람과 지나는 바람에게도 고마웠다. 친구의 마음을 잘 안다. 공감한다. 세상 모든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날이 자녀의 결혼식 날일 것이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후에는 해가 비쳤다. 비구름이 걷히고 있는 하늘엔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단비에 씻긴 가로수 이파리가 더 푸르고 햇살에 더 반짝거렸다. 친구 딸의 결혼 생활도 저렇게 푸르고 반짝거리길 바라면서 가속페달을 밟았다. 돌아오는 길엔 길이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한강물도 넘실대며 람이의 결혼을 축하하는 듯했다. 나아가 앞으로 람이의 엄마 내 친구의 인생도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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