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앞날을

L교수

by 최명숙


그녀를 만난 건 내가 강의하고 있는 복지관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처음에는 맞는지 아닌지 어사무사했다. 첫 시간인지라 각자 소개할 때,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가 틀림없었다. 그 분야 전공자라면 금세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퇴직 후 문화 강좌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수필을 쓰고 싶어 이 강좌를 신청했노라 말했다. 명성에 비해 그저 그 또래 보통 노인으로 보일 정도로 평범했다.


그녀는 나를 알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수천 명이, 아니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는 제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리 없으니까. 그녀의 강의를 몇 년이나 들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제자이다. 그러나 만난 적 없었다. 방송 강의를 통해 그녀의 수업을 듣고 리포트를 제출했으며 성적을 받았으니까. 나는 평소처럼 강의를 진행했고 그녀는 열심히 듣고 적었다.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깊은 밤과 새벽에 방송으로 강의를 듣느라 잠을 설치곤 했던 날들. 밀물처럼 밀려드는 졸음과 싸우다 깜빡 잠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 강의가 끝나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했던가. 지금처럼 다시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더욱. 새벽에 강의가 있을 때에도 시간을 맞춰 깨고 들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나는 강의를 하고 그녀는 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숱한 교재를 쓰고 논문을 쓴 그녀에게 이 글쓰기 수업이 필요할까 싶었다. 퇴직하면 그렇게 심심한 걸까. 아니면 실용적인 글이 아닌, 정서적인 글을 써보지 않아 이 수업을 신청한 걸까. 나로선 조금 의아했다. 평생 가르치고 글을 썼는데 정서적인 글쓰기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닌데,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복지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에 교수 출신 노인들이 더러 있다. 교사, 공무원 또는 문학소녀였던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전직 교수 대부분은 이과 계통을 전공한 분들이었다. 약간의 문학이론과 글쓰기 이론을 강의하지만 대부분 창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합평 첨삭하는 것이 주된 강의 내용이다. 물론 내가 수업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학기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와 수필을 중심으로 하되 가끔 엽편소설 창작법도 강의한다. 그렇게 배워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한 분들도 있다.


그녀도 등단을 꿈꾸고 이 강좌를 신청한 것일까. 그저 퇴직 후 무료해 온 것일까. 강의하면서도 불쑥불쑥 궁금증이 일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연세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와 이름으로만 그녀를 기억하는 나는, 교재 앞에 나와 있던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맞았다. 흔한 이름이 아닌데 목소리도 똑같았고, 이제 얼굴까지 정확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의 스승이다. 틀림없다.


인사를 해야 할까. 제자에게 수업받는 게 쑥스러워 안 나오게 된다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러랴 싶기도 했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여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해맑은 표정으로 앉아 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질문도 했다. 별로 어려울 것 없는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 교수였다 해도 전공 분야가 아니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순수함이 오히려 멋져 보였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수업 마친 후 잠시 차 한 잔 하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유를 묻지 않고. 호기심이 환하게 웃는 얼굴에 가득했다. 그렇겠지. 첫날 만난 강사가 차 한 잔 하자고 제의하니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도 하리라. 나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까.


수업을 마치고 그녀와 함께 복지관 2층에 있는 카페로 갔다. 내가 차를 샀다. 그녀가 사겠다고 했지만. 먼저 공손히 인사를 다시 했다. 그리고 언제 무슨 과목들을 수강했는지 말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제자였지만 카페에서는 제자로 대해주었다. 선생님은 전국 어딜 가도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단다. 방송으로 강의를 듣고 공부한 많은 제자들이 곳곳에 있어, 오히려 퇴직한 지금 재미가 더 있다고. 우리는 옛날 공부하던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후 선생님은 내 강의를 한 학기 내내 들으셨다. 나도 퇴직해 보니 알겠다. 퇴직 후가 더 바쁘다는 것을. 선생님은 결석이 잦았다. 그러더니 다음 학기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여전히 바쁜 모양일 터였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복지관에 물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그만두었다. 선생님이 필요하다면 내게 연락할 테니까. 그리고 벌써 십오 년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엊그제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했다. 근황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낸 수필집이 떴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결국 수필집을 출간했다는 게 내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썼던 교재나 논문이 아닌 수필을 쓰면서, 나를 떠올리셨을 게 틀림없으니까. 그거면 되었다. 내게 연락이 있고 없고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나의 선생님이고 또 나의 제자다. 선생님도 카페에서 그러셨다. “전에는 최 선생이 제자였으나 지금은 나의 선생님이네.”라고.


재밌지 않은가. 사람은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앞으로 선생님이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나도 그래야 하리라. 선생님이 어느 날 내가 생각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반가울 수 있도록. 앞산이 어제보다 더 푸르러졌다. 내 마음도 푸르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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