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프로 정신이란 무엇일까

일상

by 최명숙


요즘 나는 도서관 복지관 평생교육원 등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주로 문학과 글쓰기다. 또는 작가와의 만남 등의 문학 강연도 가끔. 학생이 아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삶의 연륜이 있어 공감도가 높고,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참여했기 때문인지 집중도 잘하는 편이다. 나 역시 만족도가 높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하고 있는 강좌도 있다. 도서관의 독서회와 복지관의 글쓰기 수업이다. 처음 이 강좌를 시작할 때 동료 교수들이 마뜩잖게 보았다. 뭐 하러 시간 낭비하느냐고. 그런 강의할 바에 논문 한 편 더 쓰고 자기 작품 한 편 더 쓰는 게 낫다고. 아니면 좀 쉬라고. 바빠 동분서주하는 나를 보고 충고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강사료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솔직히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의 수업은 거의 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내 생각은 달랐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따지지 않고 간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오직 그 마음으로 해왔다. 특강 의뢰를 받아도 강사료를 물어본 적 한 번도 없다. 많거나 적거나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또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나눈다는 것에. 그러다 보니 퇴직했어도 학교만 안 갈 뿐이지 바쁜 것은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찾는 곳이 많아져 더 바쁘다.


이런 나에게 프로 정신이 약하다는 이들이 있다. 프로는 값으로 결정되는 거라나. 적은 강연료를 제시하면 자기는 가지 않는단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배운 것을 갖고만 있으면 뭐 하자는 것이냐, 필요한 곳에 나눈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랬더니 그것 역시 프로 정신이 부족한 거란다. 받을 수 있는 한 최고의 강사료를 받아야 한단다. 안 그러면 이용만 당한다고.


그 말이 아예 틀린 것 같진 않으나 나는 물질주의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내 강의를 값으로 매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강사료를 받아도 강의에 대한 값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강사료가 많고 적음에 강의의 질이나 만족도가 달라지지도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강의를 준비해서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것을 어떻게 값으로 책정한단 말인가. 그건 나를 훼손하는 행위다. 그래서 어떤 이가 하는 말이 아주 틀리진 않았더라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더할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며 해외 문학단체의 초청 강연에 다녀온 적 있다. 그때 받은 대우를 물질로 환산할 수 없다. 그때도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어서 갔을 뿐이다. 모든 편의를 제공받는 그곳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강연을 한 것 아니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진정성을 가지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값으로 매긴단 말인가. 그저 나는 나일뿐이다.


그러나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건 태도에 문제가 있을 경우다. 요청하는 쪽에서 봉사를 당연하게 여길 때다. 물론 그런 일은 많지 않았다. 두 번 정도였다. 이번에 봉사하면 다음에 어떤 것으로 보답한다는 등의 대가성 있는 제의일 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야비하지 않은가.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는 게 낫다.


또 무리한 요구를 할 때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다섯 반의 아이들을 합반으로 강당에서 글쓰기 특강을 해달라고 했다. 강사료는 교육청에서 정한 거라며 얼마를 제시했다. 상관없다고 했다. 문제는 1시간 동안 아이들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리고 피피티 자료까지 미리 만들어 보내달라는 거였다. 어이없었다. 그냥 글쓰기에 대한 특강이라면 다섯 개 반을 모아놓든 열 개 반을 모아놓든 상관없이 했을 터인데, 잘 쓰게 해 달라는 것과 피피티 자료 요구가 거슬렸다. 또 당연하다는 듯 고압적인 그 태도가. 거절했다. 1시간 동안 무슨 재주로 글쓰기를 잘하게 가르친단 말인가. 몇 년 동안 배우고 익혀도 잘 쓰기 어려운 게 글인데. 거기다 백 명도 넘는 아이들에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따지지 않고 갈 만큼, 문학과 글쓰기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진정한 프로 정신이라는 말도. 그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설득력이 있어야 하기에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 과다한 정보 노출이 되고 말았으니까. 이러다가 적나라하다 못해 살갗까지 벗겨질 것 같다. 아무튼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어느 철학자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어설픈 나에게라도 문학 이야기를 듣고 싶어 부르면 간다. 강사료의 많고 적음에 상관하지 않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쓰기 방법을 말해주기도 한다. 아낌없이. 프로의 자세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걸 누가 정한단 말인가. 그렇게 폼 잡으면 더 멋있어 보일까. 아무래도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프로는 영원히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만의 프로페셔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도서관과 복지관 평생교육원 등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요즘, 나는 즐겁다. 그들의 공감과 관심은 나를 만족하게 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나오는 수강생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분야의 지식을 모두 알려주고 싶다. 그건 먼저 공부한 선배로서 할 만한 일이라고 믿기에. 이것도 진정한 의미에서 프로 정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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