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
연둣빛 잎사귀가 꽃보다 더 곱다. 어쩌면 저리도 청정한 빛일까. 나도 저리 청정한 모습으로 존재했던 날이 있었을까. 아기 때야 그렇겠지만 자아가 형성되면서 다 잃지 않았을까. 저 모습은 하늘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부여해준 성정, 천명지성 같은 것일지도 몰라. 저 청정하고 순전한 모습을 지향하며 살려했건만 욕심만 더덕더덕 붙은 것 아닌가.
룸미러를 본다. 얼굴이 맑지 않다. 화장을 다시 고쳤는데도 칙칙한 느낌이 든다. 저 산의 나뭇잎처럼 청정하고 순전한 얼굴이고 싶다. 그래야 한다. 일 년 하고도 넉 달 만에 만나는데, 이런 모습은 안 된다. 신호대기가 걸릴 때 다시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친다. 입술도 밝은 색으로 다시. 평소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나, 그럴 수 없다. 특별한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특별한 분. 누구라도 그렇지 않으랴마는 그분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건 내 바람 덕분이었다. 살아계시기나 한 걸까. 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찾지 못해 거의 포기 상태였을 때, 우연찮게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간절한 바람은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더니 그랬다.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마치 손에 쥐고 감추었다가 여기 있지, 하며 내놓은 것 같았다.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들렀을 때다. 한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 와 있었다. 표사 글을 보던 친구가 내게 한 번 봐달라고 했다. 그 작가도 부추겼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찾고 있는 특별한 그 분과 작가가 동향인 것을 알게 되었다. 불쑥 그분의 이름을 대며 찾고 싶다고 하자, 작가는 자기가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다며 근황을 말해주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내가 찾는 분과 작가가 아는 사람이 동일인이었다. 놀라웠다. 이렇게 쉬운데 그렇게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당장 통화를 하게 되었고 며칠 내로 만났다. 그 후 3년 동안 간간히 만나는 중이다. 그분을 만나면 나는 아이가 되고 만다.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떤다. 손을 잡기도 하고 둘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만나러 갈 때도 옷차림에 신경 쓴다. 화장도 최대한 밝고 곱게. 여전히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가 아니라, 예뻐지고 어려진다. 그러고 싶다. 아니, 그렇게 된다. 저 산의 연둣빛 잎사귀처럼 나도 야들하고 나긋하며 순전한 소녀로 돌아가고 싶다.
그 특별한 분은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열두 살 소녀 적 담임선생님이다. 방과 후엔 교실에 남아 선생님을 도와 환경정리를 했고 시험지 채점을 하곤 했다. 다 마치고 나면 도서실로 데리고 가서 동화책 두 권을 고르라 하셨으며, 내가 원고지에 쓴 글을 교실 뒤 환경 판에 압정으로 꽂아 게시해 주신 분. 그 때문에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선생님. 작가가 된 것도 어쩌면 그 게시된 한 편의 글 덕분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작년 여름 내가 퇴임하자 기념으로 밥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미루다 이제야 만나게 되었지만.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인데, 자주 뵙지 못한 게 송구스러웠다. 선생님이 나오셨다. 차에서 얼른 내려 뵈었다. 어찌나 곱고 멋스러운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포옹하며 여전히 곱고 건강하신 모습이 좋다고 했더니, “제자 만나려고 최대한 예쁘게 단장했어.” 하신다.
선생님과 경치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연둣빛 산자락을 건너다보며. 눈이 시원하고, 마음까지 나뭇잎처럼 청정해지는 듯했다. 학교 다닐 때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사는 이야기, 선생님과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시인이며 수필가로 활동하고 계셔서 문학 이야기까지 무궁무진했다. 나의 어깨를 도닥여주고 손을 잡아주시니, 나는 열두 살 소녀가 되고 말았다. 대견하고 뿌듯하시는 모습은 내가 나의 제자들을 볼 때와 닮았다.
헤어질 때, 건강하기를 당부하며 조심해서 가라고 손을 흔드는 선생님. 퇴직했으니 창작에 열중해서 박경리 작가 박완서 작가 못지않은 좋은 작품 쓰라고 덕담을 하셨다. 아들에게 내 말을 했더니 요즘 세상에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나. 50년도 넘은 어린 시절의 선생님을 누가 찾겠느냐며. 선생님은 나를 다시 만난 것에 행복해하셨다. 다행스러웠다.
제자들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선생님을 만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내가 선생이 되어 보니, 그보다 그저 제자들이 무탈하게 성실히 자기 몫의 삶을 살기 바라는데. 이름이 나도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말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선생님을 찾으려 했던 것은, 그런 마음이 들어서다. 이름난 사람이 되는 게 어디 쉬운가. 지난번 나를 찾아온 소미에게 감동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도 그래서다.
이제 곧 오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달이다. 일 년 내내 사느라 바빠 일일이 못 챙긴 고마운 분들, 특히 선생님들께 전화로라도 인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식사대접을 해야겠다.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사람 노릇하며 사는 것에, 가르치고 일깨워주신 선생님들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손 흔드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스물네 살 정도의 활기찬 선생님, 저 연둣빛 나무 같은 모습이 겹쳐진다. 제자의 퇴직을 기념해 밥 사주는 분은 많지 않을 거다. 열두 살 소녀 적 나의 선생님, 최고다. 삶의 모범을 보여주며 끝까지 가르침을 주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꽃보다 더 고운 연둣빛 산자락이 나에게 안겨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