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지난번 조수석 매트 일도 그렇고, 또 다른 일도. 조수석 매트는 엊그제 택배로 왔다. 차에 깔아보고 더 확실해졌다. 처음부터 깔리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사차원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잠든 새 물건들이 일어나 돌아다니는 게 맞는 것도 같다. 그러다 본래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튼 작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삶의 현장에서 무수히 일어난다.
내게 불가사의한 일 중의 으뜸은 양말이다.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대에 널 때 한 짝이 없을 때 종종 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나오겠지 싶었는데 몇 년이 돼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발이 달려 어디로 간 것도 아닐 텐데. 아무리 기다리고 찾아도 없다. 지금 양말 서랍에 짝 잃은 양말이 몇 개인지 모른다. 혹시나 해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버려야 할까.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그러다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얼마나 반갑던지. 어머! 너 어디 갔다 왔니? 이제 도망가지 마. 중얼대며 다시 만난 기쁨을 만끽한다.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양말 한 짝을 다시 찾았을 땐 더욱. 왜 빨래를 하고 나면 양말이 없어지는 것일까. 물을 싫어하나. 아니면 자고 있을 때 일어나서 돌아다니다 다른 곳에 정착한 것일까. 그렇다면 모르는 양말이 우리 집에도 있어야 하는데, 그건 없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 집만 그런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수 없다. 칠칠치 못하게 엉터리로 살림한다고 할까 봐서. 그게 맞긴 하다. 살림을 엉터리로 하는 것. 평생 그랬다. 일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물건이 없어지는 것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양말은 짝이 있는 물건 아닌가. 두 개를 맞춰 개켜야 하는 것이니 모를 수 없다. 이렇게 나에게 가장 불가사의한 일 중의 하나는 없어지는 양말 한 짝이다.
지난가을 산에 갔다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누가 주워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도토리들이 저절로 굴러와 모여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퍼뜩 든 생각이 있다. 우리 집에서 사라진 양말 한 짝들도 어딘가에 그렇게 모여 있지 않을까 하는. 물론 도토리는 다람쥐들이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고는 잊어버린. 나도 어디에 모아 놓고 잊어버린 것 아닐까.
아들에게 양말 이야기를 했더니, 동화로 한 번 써보세요, 했다. 그렇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작가인 나에게 신이 하는 일련의 훈련 과정일지 모른다. 안데르센 이상 가는 작가로 만들기 위한. 그렇다면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는데. 동화는 뭐니 뭐니 해도 판타지니까 내가 겪고 있는 양말 한 짝 사건은 얼마든지 동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은 나프탈렌이 여행하는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있다나 뭐라나. 그럼 나는 양말이 세탁기에서 탈출해 여행하는 이야기를 쓸까. 모티브가 비슷해서 독창성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 구상 중이다. 아, 이런 것을 발설해선 안 되는데. 프로작가라면 할 말이 있어도 꾹 참았다가 글로 써야 하는데. 이렇게 주절주절 말하면 누군가 보고 발상을 냉큼 가져갈 수도 있다. 아무튼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니까.
오래전 일이다. 작가들 모인 자리에서 누가 내게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물었던 적 있다. 왕 초보 작가였던 나는 그때 쓰고 있던 동화의 줄거리와 서술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도 아주 신나서. 그때 함께 있던 한 작가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먼저 써서 발표했다. 누구며 어느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소송이 걸릴 만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나는 양말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양말을 신기 위해 서랍을 열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도토리가 모여 있듯 무더기로 있는 짝 잃은 양말들. 도대체 양말 한 짝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또 몇 년이 지나도 왜 나타나지 않는단 말인가. 신지 못하는 양말 한 짝들을 버리지 못하는 건 혹시 언젠가 어디서 불쑥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탐낼 만큼 고가의 양말이 아니고,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드나들지 않는 집인데, 이 무슨 불가사의한 일인가. 어느 때는 내가 사차원의 세계로 옮겨온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틈새로 들어온 것만 같은. 그러면 모든 게 다 생경하게 보이기도 한다. 늘 마주했던 일상이 꿈처럼 생각되면서. 현실과 꿈 또는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한동안 그 세계에 빠져있다 나오기도 하는 나다.
지난번 자동차 매트 사건을 겪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없어지는 양말 한 짝이었다. 그처럼 불가사의했다. 유독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묻고 싶다. 여러분 집은 어떠한지. 양말 두 짝이 얌전히 잘 있는지 말이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이 있다면 단체 소송이라도 해야 할까. 아니 찾아 나서야 하는 일 아닌가. 양말 한 짝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한 짝이 없으면 나머지도 쓸 수 없다. 그건 중요한 일이다.
정작 관심 두어야 할 것은 잊고, 양말 한 짝에 관심이 집중되는 오늘 아침의 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렇게 엉뚱한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마는 아침이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양말 한 짝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