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봄나들이를 나섰다. 이번에는 사촌시누이들과 함께다. 한 달 전쯤 근처 사는 사촌시누 '오'아가씨가 전화했다. 봄나들이 가자고. 코로나 전엔 가끔 만나곤 했는데 근 3년 동안 만난 적이 없다. 좋다고 했다. 누구랑 가느냐고 물었더니 위로 두 분 형님들과 아가씨들 넷 그리고 나란다. 가평에 팬션을 예약했으니 가잔다. "아가씨, 난 시누들 등쌀을 어찌 견디라고. 올케는 나 하나란 말인가요?" 오아가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깔깔 웃었다. "언니가 기죽을 사람인가요" 하면서.
서울 동탄 천안 수원 곳곳에 사는 시누들과 집합지인 가평 어느 음식점으로 모이기로 했다. 나도 모처럼 차를 운행하지 않고 오아가씨 차에 묻어가기로 했다. 천안에서 오는 시작은어머님까지 모두 8명. 대식구다. 코로나 이후 모두 만난 적 없다. 사실 나는 결혼해서도 그들과 집안 행사 아니고는 거의 만난 적 없다. 오아가씨 빼고는.
위로 두 형님을 빼고 손아래 시누들은 내가 결혼했을 때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이었다. 명절에 큰아버님댁에 가면 내 손을 잡고 마을 어귀까지 산책을 나가기도 했던. 그 단발머리 막내시누도 이제 육십이 되어간다니, 세월처럼 무심한 게 또 있을까. 내가 아는 선배오빠가 그 아가씨 담임이기도 했는데. 고등학생이던 오아가씨도 얼마나 살가웠던지. 부엌이 낯설어도 들어가 뭐라도 할라치면 쉬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데.
결혼하고 이태 정도 큰집에 갔고 그 이후엔 간 적 없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가 제사와 차례를 모셨기 때문이다. 또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삶의 기반을 잡느라 바빠 겨를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 경조사 아니고는 서로 만나볼 일이 없었다. 마음은 있어도 그게 쉽지 않게, 삶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랬던 것 같다.
차 안에서 음식점에서 유원지에서, 먹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고, 웃었다. 칠십을 훨씬 넘긴 손위 시누들은 걸음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등이 약간 굽었다. 딸이 없는 큰형님은 우리 딸 돌 때 예쁜 한복을 사 입히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런 옷을 딸에게 입혀보고 싶었다며. 생각해 보면 모두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엔 애들 아버지와 한 집에서 컸단다. 옛 말에 팔촌은 한 울타리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팬션 독채였다. 방이 세 개나 되고 거실도 꽤 넓었다. 저녁 먹을 때 막걸리도 한두 잔씩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옛날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나는 작은어머니와 형님들에게 남편의 어린 시절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대책없이 순하고 욕심이 없었다는, 어찌보면 숙맥 같던 그의 이야기를. 그런데도 공부를 잘했다니 그건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한없이 그리워졌다.
밤이 깊어가는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공유한 것들이 아닌 추억담은 호기심으로 들었고, 현재 사는 이야기는 공감하며 들었다. 아까 보니 역시 언니는 며느리던데요?오아가씨가 갑자기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주방으로 가더라나. 그리고 차와 과일을 준비하더라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게 딸과 며느리의 다른 점일까. 글쎄요, 시누님들 등쌀에 주눅이 들어 그랬나 보죠? 내 말에 모든 시누들이 박장대소했고 작은어머님은 내가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타성은 우리 둘 뿐이었다.
솔직히 농담이었고 주눅들 일이 없다. 이 나이에 겁날 게 무엇이고 거칠 게 무어란 말인가. 시누 올케 관계라기보다 이젠 친구 같은 관계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작은어머님이 인정하며 기특해 하시는데 울컥했다. 시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를 유난히 예쁘게 보시던 아버님과 인정해주시던 어머님도 생각이 났다. 아직 충분히 살아계실 나이에 일찍 그리 가버리신 시부모님. 그 때문에 더 고달팠던 지난날. 시동생 학비와 시누이들 결혼 등으로, 부모 역할을 해야했던 우리였다.
이제 시대와 의식이 바뀌어, 맏이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꿈도 꾸지 않을 거다. 우리 세대만 해도 암무적으로 가졌던 의식인데. 시누들 대부분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이 아름답게 생각됐다. 열심히 산 덕에 지금은 모두 살만 해지기도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 서로 인정하고 쓰다듬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집 나오면 잠이 잘 안 오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눈을 뜨니 여섯 시간 동안 푹 잘 잤다. 운악산 아래 팬션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했다. 이제 아침 산책을 나가리라. 발밤발밤 산 길을 걸으며 나무와 들풀 그리고 새들을 만라리라. 오늘 하루도 기대하면서. 시누들 등쌀에 더 행복해지는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