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소렌토로

by 최명숙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언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이태리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일부다. 지금까지 소렌토에 가본 적 없다. 이태리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들르고 싶은 도시.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이 노래의 낭만적인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가 좋았다. 가끔 흥얼거리다 차를 사게 되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소렌토’를 샀다. 디자인이나 가격이 내게 맞아서 산 것이 아니다. 순전히 ‘소렌토’라는 이름 때문에 샀다. 십칠 년 전에.


십칠 년 전에 샀으니 참으로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십만 키로밖에 안 탄 차다. 혼자 사용하다시피 한 것이니 겉이나 속이나 아직은 쓸 만하다. 노인이지만 몸 관리를 잘해서 신체 나이가 젊은 사람 못지않은 어르신 같다고 할까. 더구나 정기적으로 정비소에 가서 점검했고, 엔진오일과 소모품을 때맞추어 교환했기 때문에, 사용하면서 문제 생긴 적이 없다. 기름만 넣어주면 어디든 내 몸을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 이 소렌토는 내 친구이며 동반자다. 조금 과장한다면 별장이기도 하다.


웬만한 것은 차 안에 다 있다. 시간이 맞지 않을 때 허기를 달래줄 비상식량 몇 가지, 물, 상비약, 갑자기 여유가 생겼을 때 산책할 수 있게 갈아 신을 운동화, 구두가 하나 있다. 그뿐인가. 책 몇 권, 화장품, 시디, 무릎담요, 메모지와 필기구, 비상금, 장갑, 갈아입을 셔츠 하나, 텃밭에서 쓰는 작은 호미까지 있다. 작은 살림을 옮겨 놓은 것만큼 된다면 과장이겠지. 그러나 당장 여행을 떠나 한 달쯤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외부에 나가서 강의 시간이 남으면 뒷좌석에서 담요를 덮고 쉰 적이 자주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이지 않게 누워 있으면서 혼자 쿡쿡 웃기도 했다. 대중 속에 있으면서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 외의 장소에서 숙박을 하게 될 때, 그곳이 마땅치 않으면 차에서 자기도 했다. 그만큼 내게는 편안하고 익숙한 집 같은 장소가 차다.


이 차를 타고 가족 또는 지인과 함께 여행을 다녔고 드라이브를 했다.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과 웃음이 깃들고 묻어 있는 차. 또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도록 내 울음을 받아준 친구 같은 차. 때로는 차 안에서 목청껏 노래를 해도, 시끄럽단 말이 없이 묵묵히 들어준 내 차 소렌토. 그뿐인가, 누구에게 할 수 없는 말도 마음껏 한다. 그래도 다 들어준다. 이러니 친구이고 동반자가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심각해진 미세먼지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노후 경유차로 지목한 것이다. 내 차 소렌토가 십 년 이상 된 노후 차이며, 배출가스 5등급 차량으로 분류되었다고 대한자동차환경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해마다 자동차 검사를 받았고 그때마다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정부 산하 기관에서는 조기폐차를 하든지 저감장치를 부착하란다. 차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건만, 정부 시책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시책에 동의한다. 그러나 예상치 않았던 차를 새로 사야 하는 데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목돈이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쓰는 데에 문제가 없는 차인데 새로 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저감장치를 부착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갈등하다 새 차를 구입하는 게 어떨까 싶어 차를 보러 다녔다. 새로 산다면 하이브리드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손을 위해 환경문제를 염두에 두고. 가격 면이나 기능 면에서 마음에 딱 맞는 차가 없었다. 소렌토를 살 때에는 갈등 한 번 없이 샀는데.


며칠 망설이다 단골 자동차공업사에 들러 최종적으로 내 차를 점검했다. 몇 년 더 타는데 문제가 없다면 저감장치를 달 생각으로.

“이 차 더 쓸 수 있는지 봐주세요. 바꿔야 한다면 새로 사려고요.”

내 말에 꼼꼼히 살피던 기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체가 아주 좋은데요. 녹슨 데 한 곳 없고 5년 이상 타는데 지장 없을 것 같아요. 새 차도 고장 나려면 나는 거니까 고객님이 알아서 하세요.”

그건 맞는 말이다. 어찌 모든 걸 보증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몇 키로 타셨어요? 제 차는 십칠 년 넘었는데, 사십사만 오천 키로 타서 이제 폐차하려고요.”

깜짝 놀랐다. 그렇게 타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

“어머나 그렇게 많이 타셨어요? 제 차는 이십만 키로 정도밖에 못 탔는데요.”

“그럼 더 타셔도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 차 너무 쉽게 바꿔요.”

그 사람의 말이 내 갈등을 끝내주었다. 더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다음날 학교에서 한국자동차환경협회로 팩스 하나를 보냈다. 저공해 조치 신청서다. 저감장치를 달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서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이제 내 차에 저감장치를 달게 되면 최소한 2년 의무적으로 더 사용해야 한다. 2년이 아니라 차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리라.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래 제목처럼 돌고 돌아서 ‘소렌토’로 돌아왔다. 이 차와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고, 더 쓸 수 있다는 판정에 마음이 놓였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 또 노래를 흥얼거린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이 글을 삼 년 전에 썼다. 그후에 3년 가까이 더 타고 지난 8월 31일에 새 차로 바꾸었다. 새 차를 잘 타고 다닌다. 그래도 가끔 소렌토가 그립다. 보고 싶다. 그러면 찍어놓은 사진을 본다. 그래도 그립다. 온 가족이 함께 타고 다녔던 추억의 차여서 그럴까. 이렇듯 사람도 물건도 이별할 때가 있다는 게 쓸쓸하다.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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