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by 최명숙


울 뻔했다. 힘 빠진다는 게 이런 걸까. 생전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작가와의 만남’ 강연을 했는데, 시쳇말로 죽을 쑤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자동차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빨리 이 느낌과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스레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니 페달이 밟아지지 않았다. 힘이 빠져서 그런 것 같았다. 밖에는 어스름이 몰려오는데, 모멸감 비슷한 느낌까지 함께 밀려왔다.


강연 요청을 받은 건 한 달 전이었고,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솔직히 철저하고 말고도 없었다. 내 작품집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고, 몇 번이나 같은 내용으로 예서제서 ‘작가와의 만남’을 한지라 염려하지 않았다. 물론 반응도 무척 좋았기에 더더욱. 그래도 혹시나 싶어 다시 책을 다 읽었고, 거울 앞에서 리허설까지 했다. 어르신들에게 맞춤형으로 강연 내용을 다시 구성했다. 흥미롭게 들을 만한 것으로.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예정한 두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낸 강연. 초유의 사태. 지루하다는 듯 마지못해 앉아계신 노인들을 더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거기다 한 시간이 지나면서 반 이상 일어나 나가기까지. 그래도 굳세게 30분 더 지속하였지만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끝냈다. 마지막까지 십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책 선물까지 주최 측에서 준비했는데. 어르신들은 책도 원치 않는 듯했다. 나는 그날따라 강의가 계속 있어 종일 굶다시피 했건만, 시장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만 뇌리에 가득했다.


강의와 강연을 30년 넘게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연세 드신 분들은 하도 겪은 게 많으니 모든 게 심드렁한 걸까. 내가 너무 자신만만했던 걸까. 노인들의 속성과 문제가 드러난 소설을 연구해 학위까지 받았고, 노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 해도, 노인복지관 수업이 처음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나. 집에 돌아와서도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다음 주에 있을 2차 강연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음대로 한다면 강연을 그만두고 싶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름대로 이 분야에 전문가인 내게. 이런저런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부딪쳐보는 수밖에. 다음도 내 책 가운데 다른 한 권이 강연 주제다. 심기일전. 여기서 힘을 잃기엔 아직 할 일이 많다. 오히려 내게 약이 될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마음을 다스렸다.


실패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했다.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적었다는 것, 당연히 성공할 것으로 과신했던 것, 무엇보다 타성에 젖어 방심했던 것, 등이었다.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하는 강연보다 담화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오히려 준비하지 않고 흐름에 따라 진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편으로는, 바닥까지 내려갔는데, 더 내려갈 곳이 있을까 싶었다. 배짱도 생겼다. 아니, 더 폭 망하는 일이 생겨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끝을 보고 싶은 이상한 오기도 생겼다.


드디어 2차 강연 날이다. 마음을 깨끗이 비웠다. 현장 분위기에 맞춰하리라 생각했다. 시작 10분 전에 강연 장소로 올라갔다. 노인 한 분만 계셨다.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일주일을 무척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색종이로 접은 모빌을 선물이라며 주셨다. 지난주에 받은 책을 단숨에 읽었는데, 감동을 많이 받았단다. 내 손을 꼭 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순간, 이 한 분만 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되면서 삼삼오오 노인들이 강당으로 올라오셨다. 펼쳐 놓은 의자에 금세 가득 앉았다. 내가 인사를 하자 반가운 듯 웃으며, 지난주에 들었는데 좋아서 또 들으러 오셨단다. “그런데 왜 도중에 가셨어요?” 농담 삼아 말했더니, 한 시간만 되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 그런 거지, 강연이 재미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단다. “화장실 가셨다가 다시 들어오셔야지, 그냥 가셨잖아요. 저 울 뻔했어요. 반 이상 가셔서요.” 진담을 섞어 반문했다. 어르신들 몇이 히히 웃으시며, 워낙 강연은 한 시간만 하면 된단다. 아무튼 오늘은 도망 안 가고 잘 듣겠다고 하셨다.


강연을 잘하려는 마음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마음을 가지니, 노인들이 먼저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에 모두 흥미로워하셨다. 대성공이다. 끝날 때까지 한 분도 나가시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동참했다. “한 시간이 넘었는데, 왜 화장실에 안 가세요? 오늘은 수업 도중에 도망가시지 않네요.” 내가 놀리듯 말했더니, 막 웃으셨다. 의사소통이 되니까 지루하지 않고 흥미도 생기신 듯했다. 물론 끝까지 계신 분에게 드리기로 한 ‘기념품’ 덕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강연이 끝나자 재밌고 의미 있었다고 말하는 분들이 여럿이었다. 내 손을 잡으며 아쉬워하고, 다음에도 꼭 또 듣고 싶다고도 하셨다. 어디서 강의하냐며 들으러 가겠다는 분, 나를 꼭 안아주는 분, 멋진 작가를 만나 즐거웠다고 하는 분. 두 번의 만남에 서로 가까워진 듯했다. “기념품 때문에 계셨던 거죠?” 했더니,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소년소녀 같았다. 그랬든지 저랬든지 친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마음 비우길 잘했다. 내가 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관심 갖고,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주효했다. 어떤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타성에 젖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하리라. 나도 그랬다. 늘 하던 것이니 당연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항상 살얼음판을 디디듯 조심하고 처음 설레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그래서 평생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가 보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허기가 어둠처럼 밀려와 자동차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퇴근시간이 가까운데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내 가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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