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뜻깊은 결혼식에 다녀왔다. 다시 말하면 혼주와 나의 관계가 뜻깊다는 의미다. 혼주는 내가 어린이집 운영할 때 교사로 근무했던 문 선생님이다. 그녀와 나는 5년을 함께 일했고, 그녀가 결혼하면서 헤어졌다. 그런데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벌써 35년이 되었다.
요즘은 어떤 관계든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이 무거울 필요는 없겠으나, 맺어지고 끊어지는 것에 진중함이 덜하다는 느낌이다.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관계 맺기가 수월해진 점도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끊는 것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익명성을 가진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오프라인 공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시대에 그녀와 나의 관계는 확실히 뜻깊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서.
물론 오래 이어져야만 뜻깊고 좋은 관계는 아니다. 끊는 게 나은 관계도 있다. 서로에게 상처 주고 힘든 것보다. 내 말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계속해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몇 년에 한 번, 집안 행사 때나 만나는 게 다였다. 하지만 전화로 안부를 서로 챙겼고, 서로 신뢰했다. 더구나 우리는 동료 같은 동료 아닌 관계였다. 생각하기에 따라 상하관계로도 볼 수 있으니까.
함께 근무할 때에 우리 관계는 아주 좋았다. 다른 원에서 부러워할 정도였다. 문 선생님은 경험이 많아 내가 말할 것이 없었다. 알아서 모든 걸 척척 해냈다. 어린이집 근처에 살고 있어 출퇴근이 용이했던 점도 원에는 좋은 영향으로 작용했다. 다른 교사보다 일찍 출근했고 언제나 마무리를 한 후 마지막으로 퇴근했으니까.
그때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야간 대학에 다니느라 분주했다. 그러다 보니 원의 갖가지 행사를 준비하는 건 대부분 그녀 몫이었다. 그녀는 기꺼이 내 시간을 확보해주면서 공부하라고 독려까지 했다. 재롱잔치, 생일잔치, 체험학습, 소풍, 운동회 등 행사가 많았는데, 내가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렇게 5년 동안 근무하다 결혼했다. 결혼 일주일 전까지 근무했던 그녀의 성실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 신혼집이 먼 다른 지역이라 더 근무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다. 결혼식 날 담임했던 반의 원아 두 명을 들러리로 세웠다. 들러리보다 더 예뻤던 그녀의 결혼식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벌써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되다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진부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문 선생님은 결혼하고서도 원내 행사에 가끔 찾아와 도와주었고, 아기가 태어나자 안고 오기도 했다. 그 아기가 벌써 서른 살이 되었고, 결혼을 하는 것이다. 딸의 결혼식장에서 본 그녀는 고상하게 나이 들어 있었다.
사위를 보게 되어 기쁘다고 딸의 결혼 소식을 알려왔을 때, 나는 왠지 웃음이 터졌다. 여리고 순한 그녀가 벌써 사위를 보다니. 내게는 곱고 예쁜 단발머리 한 교사로 기억되는데.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랬나 보다. 그런데 신부 어머니로 만난 그녀는 세월을 훌쩍 넘어온 것처럼 경륜이 묻어 있는 모습이었다.
하객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식사를 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어느 쪽에 오셨느냐고 물었다. 신부 쪽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레 혼주와 관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놀라워했다. 어떻게 아직까지 관계를 이어올 수 있느냐며. 그 사람도 말했다. 지금 세상에 참 뜻깊은 관계 같다고. 나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결혼식장 앞 공원에 나무가 물들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그녀와 나의 현재는 우리 인생에서 가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게 물드는 저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곱게 물들어가는 것이리라.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이 맑아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듯, 아이들의 결혼으로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 같았다.
뜻깊은 관계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소중하게 여길 때 형성되지 않을까. 아무리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사실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쉬울지 모른다. 관계 맺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현대인의 삶은 더욱 그렇다. 관계가 형성되어도 좋은 관계로 발전되기 쉽지 않다. 뜻깊은 관계는 더더욱.
그녀의 딸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어 나갈 것을 믿으며 결혼식장을 떠났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바람과 볕이 좋은 가을날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