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by 최명숙

맞선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물론 소개팅도 해본 적 없다. 그래서 그 떨리고 긴장된 기분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상과 공상으로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설레는 마음과 기대되는 마음 그러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 아닐까. 맞을지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비슷한 기분일 거다. 나는 아마도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면 물을 많이 마셨을 것 같다.


딸이 맞선을 볼 때였다. 나도 가보겠다고 나섰다.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는데, 딸이 기겁했다. 그만두었다. 예전에야 맞선 볼 때 집안 어른들 중 한 사람과 중매한 사람이 같이 가서 소개한 후 둘만 남겨두고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니 어쩌랴. 딸에게 물어보았다. 기분이 어떠냐고. 뭐 별 거 없단다. 제일 재미없는 게 맞선이라며. 하긴 쿨하기 그지없는 애한테 물어보나마나다.


우리는 국군장병에게 쓰는 위문편지가 인연이 되어 만났다. 여고생이던 나와 육군 이병이던 그는 편지로 시작해 만난 지 햇수로 7년 만에 결혼했다. 그동안 딱 세 번 만났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다. 전화도 보편화되기 전이니 순전히 편지로만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게 결혼으로까지 이어지다니. 지금 상식으론 이해불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았다.


첫 번째 만남은 전역 후 한 달 지났을 때다. 아, 그 기분이 맞선 기분일 것 같다. 설렜고, 긴장되었고, 기대되었다. 우리는 왜 작은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걸까. 아마도 중간지점을 찾다 보니 그랬을 것 같다. 버스 안에서 밖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적어도 저 사람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망했다. 키는 작았고 매력 없이 아주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만나기 전에 설레고 긴장되며 기대되던 마음이, 그를 보자마자 싹 사라졌다. 딸의 별 거 없다는 게 그런 기분일까.


두 번째 만남은 그가 건설회사에 취업하여 해외근무 차 나가는 공항에서였다. 그때는 해외로 나가면 꼭 공항에서 이별했다. 촌스럽게. 편지를 받고 그와 만나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장맛비가 내리던 여름, 창밖으론 자귀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이름을 몰라 물으니 자귀 꽃이란다. 공작 깃털처럼 예쁜 꽃이 비를 맞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보고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쉬웠던 것 같다.


세 번째 만남은 그가 돌아오는 공항에서였다. 얼굴이 하얗고 고생한 흔적이 없어 안도했다.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한 달 열흘 만에 결혼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그렇게 정해버렸다. 얼토당토않게.


살면서 가끔 투정했다. 맞선이나 소개팅 한 번 못해봤다고. 골라보지도 못하고 시집을 왔다고. 그는 피차일반이라고 했다. 그도 맞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해본 적 없단다. 숙맥들이 결혼했다는 내 말에 그가 빙긋 웃었다. 언젠가 그의 노트에서 첫사랑에 대한 글을 읽었다. 기분이 조금 묘했지만 첫사랑이야 뭐 누구나 있는 거니까 하고 넘겼다. 내게도 물론 첫사랑이 있었다. 그와 나는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하고 맞선도 못 본 점이 닮았다.


그때는 우리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자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실전이니까 이상과 같은가. 이상은 이상일뿐이다. 결혼생활은 질퍽거리는 진흙길 같다. 아무리 교양 있고 품위 있게 살려고 해도 안 될 때가 많다. 진흙길을 갈 때 신발에 옷자락에 흙이 묻고, 걷기 힘든 것처럼. 그러니 고상하게 살 수 있을까.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심하다. 맞선이나 소개팅도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나갔다가 역시나 하고 들어온다고 했던가.


우리는 맞선, 소개팅, 연애 모두 못해보고 산 것 같다. 그래도 잘 살았다. 물론 갈등하고 반목했으며 또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 둘이 태어나 자라고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 살면서 의견 충돌이 날 때, 왜 저 사람과 결혼했을까 싶다가도, 두 아이만 보면 그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요즘 결혼 연령이 무척 늦어졌다. 맞선도 이제 거의 없어졌다. 소개팅이나 동호회 등 다양한 만남의 기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서로 교제할 기회도 많아졌다. 맞선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결혼이 늦는 추세다. 물론 하지 않거나 하거나 선택이라는 의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맞선이라는 단어도 이제 사라질 것 같다. 매개하는 사람이 중간에 있어, 일정한 형식과 법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면에서 약간 경직된 느낌이 들어 전근대적으로 생각되므로. 그것에 비해 소개팅은 자유롭고 부담감이 적은 느낌이 들고. 아무튼 그것이든 저것이든, 난 한 번도 못해봤다는 거다. 웃고 말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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