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식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도전의식이 강한 것도 문제다. 내 경우가 그렇다는 거다. 그것을 도전의식으로 봐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도 도전은 도전이니까. 어제 어떤 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도전의식이 참으로 강하단다.
퇴직 후 한가할 줄 알았다. 일중독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한가하다는 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한다지 않던가. 글 쓰고 강의 서너 군데 하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학교 마당을 밟지 않는 게 그렇게 이상할 수 없었다. 관성을 끊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현수막을 보았다. 아파트 정문 옆에 휘날리는. ‘통장 모집’ 현수막이었다. 십 년 동안 이곳에 살아도 주민 한 사람 제대로 사귀지 못한 나였다. 옳다, 저걸 해보면 사람도 사귀고, 마을에 봉사도 하겠구나 싶었다. 딱 그 생각뿐이었다. 아니, 꼭꼭 숨겨놓았지만 진정해보고 싶은 게 있긴 했다. 그건 인문학적인 마을로 만들고 싶은 것. 얼토당토않게 웃기는 일이지만. 글짓기 대회, 음악회, 그림 대회, 유적지 탐방 등을 하는 마을로.
아무튼 동사무소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여 정성껏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드디어 면접 보는 날을 통보해왔다. 십 분 전에 도착하여 대기하란다. 난감했다. 앞에 일이 있어 조정해야 했으니까. 조금만 시간을 늦출 수 있느냐니까 안 된단다. 할 수 없이 일을 조정하고 가기로 했다.
그전에 통장의 업무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갑자기 회의를 소집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였다. 주민들과 소통은 잘할 수 있겠지만 익명으로 살다가 실명으로 드러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면접 날까지 며칠 고민했다. 서류 낸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아들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단다.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을 거라고. 학생들과 주민들은 너무 다르다고. 그건 나도 안다고 했지만 마음은 벌써 한 발 빼고 있었다.
그렇게 도전한 데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서울시장과 장관을 지냈던 한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물러난 후, 지방의 한 중학교 교장이 된 일과 미국 카터 대통령의 퇴임 후 행적 같은 것 말이다. 감동적이었다. 나도 나중에 가장 작은 일이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동화를 쓰는 나니까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라도.
드디어 면접 날이다. 정장으로 갈아입고 엷게 화장도 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 몇이 대기실에 있었다. 모두 조용히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한 사람씩 호명을 했고, 나는 마지막이었다. 밖에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대기실에 있느니 밖으로 나왔다. 그 앞에 놓인 국화 화분들. 갖가지 색으로 핀 국화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면접 보러 왔다는 걸 잊은 채 꽃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때 내 이름이 불렸다.
여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동장과 부서의 팀장들일 것이다. 우리 동을 위해 애쓰는 분들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내가 몇 통에 속한지도 몰랐는데, 통장 지원이라니. 행정에 전혀 관심 없던 나였다. 온화한 표정이지만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졌다. 호칭은 ‘교수님’이었다. 최대한 내게 예의를 지키는 면접관들에게 나도 성의껏 답변했다. 나는 처음부터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려고 면접에 왔다는 걸.
상황극도 했다. 주민과 소통하는 방법에 관한. 모두 재미있다며 웃었다. 지원을 철회했는데도, 묻고 또 물었다. 20여 분 동안 다양한 질문과 답변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동의 일에 협조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마을 신문 만들기의 제반적인 것, 인문학 강연 등.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물러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직도 나부끼고 있는 현수막을 보았다. 행정의 가장 기초적인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마을의 ‘통장’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명감과 봉사심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지원을 철회한 것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다. 그 일이 하찮아서가 아니다. 물론 절대로 하찮지 않다.
한가할 거라고 생각했던 퇴직 후의 삶이 사실은 더 바쁘다. 부르는 데가 많아졌고 시민 대상 강좌도 늘었으며,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글 쓰랴, 운동하랴, 사람들 만나랴, 강의하랴, 청탁 원고 쓰랴, 아주 바쁘다. 다행이다. 아직은 이렇게 바빠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니 확실히 나는 일중독인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에서 벗어날 거다. 벗어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지는 여유도 즐길 것이다. 면접관이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앞으로 한가해지면 꼭 다시 지원해 달라는. 그것도 좋다. 아무튼 내 도전은 어디까지일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유를 즐기려는 것도 도전 중의 하나이겠지만. 아무튼 못 말리는 나의 도전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