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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인연

펜팔친구

by 최명숙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녀를 알게 되었다. 충청북도 산골에 사는 나와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하는 작은 섬 모도에 사는 그녀. 그녀의 학교와 우리 학교가 자매결연을 한 것은, 완도에 수해가 나면서부터였다. 우리는 조금씩 모은 의연금으로 학용품을 사고, 학용품 속에 4학년 대표로 두세 명이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중 한 아이였던 내가 보낸 편지에, 그녀가 답장을 보낸 게 인연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서로의 안부와 학교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일명 펜팔이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편지를 주고받았다. 가끔 그녀로부터 말린 미역이나 김이 소포로 왔다.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 나는 고맙다는 편지를 쓰면서 보내줄 것이 없어 늘 안타까웠다. 그렇게 우리는 6학년이 되었다. 나는 중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그녀에게서 중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편지가 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편지는 끊어졌다. 그랬다가 다시 이어지고, 또 끊어졌다. 그때만 해도 주소가 지금처럼 자주 바뀌지 않아, 언제고 편지를 보내면 또 이어지곤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건 스물일곱 살 쯤이었다. 우리 모두 결혼을 했고 자녀도 있는 상태였다.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와 나는 영등포역에서 처음 만났다. 사진처럼 예쁘장한 그녀, 편지 나눈 지 십육 년 만에 만났지만 오랜 친구 같았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영등포시장을 구경했다. 그게 다였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헤어지고 삼십오 년이 넘도록 또 연락이 끊어졌다.


우리의 삶이 지난했던 걸까. 전화번호를 아니까 언제고 다시 연락해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무튼 우리는 그 후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녀를 잊은 건 아니었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아이를 키우고 자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아 그녀에게 연락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듯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듯하고. 우리는 서로 연락이 끊어진 채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육십 고개를 넘은 어느 날, 그녀가 불연 듯 생각났다. 찾을 길이 없었다. 완도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연락해도 닿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어촌이라 해도 누가 그 집에 살고 있으랴 싶었다. 언젠가 한 번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했다. 그것을 떠올리면 막막해지기만 했다. 찾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자 걷잡을 수 없이 간절해졌다.


고심하다가 그녀의 초등학교동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녀의 성이 드문 성 씨였기 때문에 혹시 그런 성 씨를 가진 사람이 올린 글이 있으면 유심히 보기로 했다. 졸업연도를 떠올리며 그 비슷한 시기에 졸업한 같은 성 씨를 가진 사람을 찾았다. 몇 사람이 있었다. 그중 여성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그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구하고 찾으면 길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 우리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받았다. 역시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내 이름을 말하자마자 어머나! 어머나! 감탄사를 남발했다.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녀도 나를 찾고 싶었단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처음 통화에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무슨 인연이기에 반세기를 넘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단 말인가.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의 나이에 편지로 맺어져, 스물일곱 살 꽃 같은 시절에 딱 한 번 만나고, 끊어졌다가 또 삼십칠 년이 지나 이어지다니. 같이 공유한 시간이 거의 없고, 추억도 별로 없는데.


몇 년 전에 해남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녀를 만나고 싶어 연락했다. 만나지 못했다. 여수에 살고 있는 그녀는 공교롭게 서울 아들 집에 가 있었다. 해마다 올해는 꼭 만나자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만나지 못했다. 올해는 꼭 만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못 만나면 그런대로, 만나면 또 그런대로, 다 괜찮을 것 같다.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속에 있는 친구니까.


지금은 가끔 문자로 또는 전화로 대화를 나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엊그제 불쑥 그녀가 생각나 문자를 보냈다. 반가워하는 그녀의 문자가 바로 왔다. 옛날에 보내준 미역과 김 고마웠다고, 난 보내준 게 없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적이 있냐며 생각이 안 난단다. 워낙 주는 사람은 잘 잊고, 받은 사람은 기억하는 법 아닌가.


이제 그녀와 소식이 끊어질 일 없다. 살아 있는 한 우리를 이어주는 매체가 있으니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이리라. 아무리 매체가 있더라도 마음이 없다면 오십오 년이 넘도록 우리가 이어졌을까. 요즘은 사람을 알기도 쉽고 관계가 끊어지기도 쉽다. 연락처가 있다고 해도 차단하거나 삭제하면 끊어지고 마는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그녀와 나의 인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하다.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연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들이 엮어낸 결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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