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불연 듯 강릉에 다녀왔다. 1박 2일. 언제 가도 좋은 곳 강릉. 이번에는 친구 ‘순’을 만나러 갔다. 남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도 가지 못한 게 걸렸다. 마침 삼총사 중의 한 친구 대전의 ‘화’도 가보자고 연락이 왔다. 강릉에 가면 늘 머무는 숙소에 얼른 예약했다. 드디어 떠나기로 한 날 아침에 일찍 올라온 화와 함께 강릉으로 출발.
우리 셋이 함께 만나는 건 2년 만이다. 우린 자칭 삼총사다. 나이 들면서 허물없는 친구들 만나 지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서로 그렇다. 다 이해한다.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하지 않는다. 물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다행히 사는 형편이나 생각도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편한 점도 있다. 서로 더 못해줘 한이다. 몇 년 전에 며칠간 함께 여행한 적 있는데, 추호도 불편한 게 없었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에서 삼총사 아닌가.
초등학교 때 ‘순’은 나와 거의 같은 반일 때가 많았다. 키가 비슷해서 그럴까, 짝꿍도 여러 번 했다. 한 시간 끝나면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화장실에 갔다. 왜 그렇게 한 시간만 끝나면 화장실에 갔던지. 한 사람이라도 화장실 가자고 하면 같이 갔다. 방학 끝나고 개학하는 날 운동장에서 마주치면 둘이 손을 맞잡고 콩콩 뛰며 반겼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쳐다볼 정도로 반가움과 기쁨을 표현했다.
‘화’는 당시에 우리보다 키가 컸다. 순과 나는 중간 정도였는데, 화는 맨 뒤에 앉을 정도로 컸다. 공부도 잘했다. 초등학교 교사와 교장을 거쳐 몇 년 전에 퇴직했는데, 지금은 교회에서 갖은 봉사를 하며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있다. 아름다운 신앙인이다. 화와 같은 반을 한 것은 딱 한 번, 4학년 때다. 그때 우리는 선생님을 도와 환경정리를 같이 했고 채점을 하며 친해졌다. 그 후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마음을 나누다 깊어졌다.
나와 화는 개신교 신자인데 순은 불교 신자다. 친구끼리 만나면 하지 말아야 할 게 두 가지 있단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 우리는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 불편하지 않다. 서로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순이 다니고 있는 사찰의 스님을 내가 먼저 알았다는 거다. 우연히 그 절에 순이 다니고 있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웠다. 모르는 사람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아는 사람이 된다더니, 그럴 필요 없이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강릉에 가면 우리 셋이 그 절에 가서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신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도로는 한산했다. 순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벌써 나와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병산 옹심이 마을로 갔다. 늘 가던 그 집에서 감자전과 전병 그리고 옹심이를 먹었다. 먹는 것보다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순의 남편은 다행히 수술 경과가 괜찮단다. 먹다, 이야기하다, 웃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웃음이 터졌으니까.
산책 나간 송정 솔밭엔 송홧가루가 조금씩 날렸다. 바다를 옆에 두고 조붓한 오솔길을 손잡고 걷다 팔짱을 끼고 걸었다. 사진을 찍었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유명하다는 ‘흑임자라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가 또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바다를 보며. 바닷가는 한적했다. 몇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도 카페에서 나와 바닷가를 거닐었다.
셋이 숙소에 들어왔을 때는 밤이 깊었다. 소쩍새가 울었다. 화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 고향집에 갔을 때도 소쩍새가 울었다고. 맞다. 우리 집은 뒷산에 인접해 있어서 각종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부엉이, 산비둘기, 소쩍새 등. 나는 순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안고 젖을 먹이던 아기에 대해. 그 동생이 벌써 오십 후반이란다. 밤이 주는 정서 때문일까. 우리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옛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먼저 잠들었고 슬그머니 모두 잠이 들었다.
새소리에 잠을 깨니 아침이었다.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순을 두고, 화와 나는 아침 산책에 나섰다. 숙소 뒷산과 앞의 습지에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셨다. 순의 남편이 어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걸었고. 우리가 습지에서 나와 숙소로 향할 때, 순이 전화를 했다. “어디야?” 습지라고 말했다. 금세 저만큼에서 순이 보였다. 걸음은 힘차 보였다.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았다. 순을 만나 함께 지내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순은 식당을 운영하는데 저녁 장사만 한다. 우리는 가게를 열기 전까지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이야기하자고 했다. 강릉의 관광지에 다니기보다 셋이 꼭 붙어 있자고 했다. 모두 찬성이었다. 그 무계획대로 우리는 1박 2일 동안 지냈다.
체크아웃하면서 숙소 앞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리를 꼬고 한 컷, 어깨를 겯고 한 컷, 손으로 꽃받침을 하고 한 컷, 웃으며 한 컷. 숱하게 다양한 포즈로. 그럴 때마다 우리는 웃었다. 순이 말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웃어본다고. 그럼 되었다.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순이 1박 2일 동안 많이 웃어 주름이 생길 것 같다고 하니까. 숙소에서 나와 죽헌저수지 인근에서 점심을 먹었고 경포를 걸었으며 안목에서 커피를 마셨다.
빗방울이 하나 둘 던지기 시작할 때, 순을 가게로 태워다 주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했다. 화가 말했다. 어느 여행보다 더 즐겁고 의미 있었다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삼총사 맞다. 그냥 셋이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삼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