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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가는 길 풍경, 풍경들

일상

by 최명숙


치과에 갔지. 걸어서.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개울가를 따라. 어머! 벌써 피었구나! 혼잣말을 하는데, 그 옆에 개망초꽃도 하얗게 피고 있었어. 여름이 가까이 온 모양이야. 저 개망초꽃 핀 들판을 한없이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지. 건넛집 은이네 묵정밭이었어. 할머니는 그 묵정밭 옆을 지날 때마다 중얼댔지. 도라지라도 심을 것이지 아까운 땅을 묵힌다고. 묵정밭에는 도라지를 심는 게 좋다는 걸 그때 알았지.


고향 근처에 사는 친구가 전원주택을 지었다기에 찾아갔었지. 텃밭이 묵고 있었어. 왜 저 밭을 묵정밭으로 만들었어! 도라지라도 심지.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물었어. 웬 도라지냐고. 도라지는 적어도 5년 지나야 캐잖아. 텃밭 가꾸기 힘들면 도라지 심는 거야. 몰랐어? 친구는 당장 도라지 씨를 사다 뿌렸대. 다음 해 여름, 텃밭에 도라지꽃이 만발한 거야. 보라색 흰색 풍선처럼 부푼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깔깔댔지.


날이 더웠어. 그늘을 찾아 걸었지. 개울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는 무성하지 뭐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입에서 줄줄 나오는 이 글귀는 뭐야, 성경의 한 구절이잖아. 버드나무 옆에 노란 창포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네. 어머나! 너 지난번에는 몇 송이 피었더니 아주 단체로 피었구나. 예쁜 꽃들, 고맙다! 늘어진 푸른 버드나무와 노란 창포꽃의 어우러진 모습을 한참 쳐다보았어. 쉬기도 할 겸.


다시 걸어야 해. 치과 예약 시간이 있거든. 열 걸음쯤 옮겼을 때야. 오랜만에 보는 꽃이 있었어. 지칭개야. 소박하다 못해 있는 듯 마는 듯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이 지칭개지. 보라와 자주가 섞인 듯 조금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색을 갖고 있는 꽃이야. 저 지칭개가 내 고향 들판엔 개망초만큼이나 지천인데, 여기는 도시라서 그럴까. 가끔 눈에 띄는 정도지. 썩어도 준치라고 서울 변두리라도 도시라는 건가. 하하. 혼자 웃었어.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었거든.


어릴 때 산이나 들에서 뛰어다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피가 날 때 있었지. 그때 저 지칭개로 응급처치를 했거든. 지칭개를 꺾어 넓적한 돌멩이 위에 올려놓고 짓찧어 깨긴 무릎에 올려놓았어. 쓰라렸지만 피가 멎고 아픈 것도 진정되곤 했지. 무릎에 올려놓은 지칭개가 떨어질까 봐 걷지 못하고 앉아 있으면, 동무들도 옆에 옹기종기 앉았어.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아, 그리운 내 동무들. 그들의 눈길을 피해 눈을 아래로 깔았어. 하얀 토끼풀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 아니, 내 엉덩이 아래도.


지칭개 옆에 그 토끼풀꽃도 지천이었지. 토끼풀꽃 그 긴 줄기를 떼어 한 무더기 쌓아놓고 화관을 만들어 서로 씌워 주고,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팔찌와 반지도 만들어 착용했지. 그 토끼풀꽃만으로 우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패물을 다 가질 수 있었어. 내가 지금도 패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그때 마음껏 가져봐서 그런 것 같아. 화관까지 만들어 쓰고 다녔는데, 아쉬울 게 뭐야. 다 가져본 사람은 모든 게 시들한 법이지.


엊그제 전성기를 누렸던 당조팝꽃은 시들고 있었어. 세상의 이치가 그런 거지. 꽃필 때가 있으면 시들어 떨어질 때가 있는 거야. 시드는 당조팝은 아마도 얼마 전 누렸던 전성기를 가슴에 안고 있을지 몰라. 사진 찍던 나를 기억할까. 지나는 산책자들의 눈길도. 나는 그걸 소용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랬던 날이 있기에 시드는 것도 당당할지 모르잖아. 그렇게 전성기를 갖지 않았다면 오히려 아쉬울 테지.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아니라 못 살 뻔했다가 맞지 않을까. 사람마다 의미를 두는 게 모두 다르니까, 나는 그렇다는 거야.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해. 즐기면서.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약간 울적해지는 것 같아. 아마, 그건 치과치료에 대한 부담감일 거야.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치과 치료거든. 치이이이, 시이이이이, 드르르르르, 뽀록뽀록.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 그래도 가야 해. 치과 치료를 미루면 아픈 것도 그렇지만 비용이 많이 들거든.


잿빛 왜가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네. 아마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하는 걸 거야. 괜찮다고, 오늘은 쉽게 끝날 거라고. 엊그제 간호사가 한 말을 들었나 봐.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걸 보면 왜가리도 더운 걸까. 설마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한 물에 살면서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그래? 왜가리에게 무언의 말을 던졌어. 왜가리는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물에 비친 구름과 나무 그림자가 정지된 듯한 한낮이야.


치과가 저만치 보여. 가로수 발밑 그 틈새에도 꽃이 피었네. 씀바귀야. 긴 목 끝에 매달린 노란 꽃들. 가로수 심긴 그 틈에 삶의 터전을 잡고 저리도 예쁘게 피었다니. 강하다, 씀바귀는 나보다 강해. 치료가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훨씬. 입에 꾹 힘을 주었지. 그래, 부담 갖지 말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다 지나가는 거야. 앞으로 30분쯤 후면 나는 이 길을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을 테니까. 후련한 마음으로.


치과 가는 길 풍경, 그 많은 풍경들에 친밀감을 느꼈어. 아파트 쪽만 쳐다보지 않으면 고향의 냇가 비슷하거든. 내 기억 속의 그 냇가 말이야. 거길 걷고 있는 느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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