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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망설이고 있다

행복한 고민

by 최명숙


온이는 첫째 외손자다. 이름은 시온이. 또온이는 온이 동생, 이름은 예온이다. 둘을 함께 일컬을 때는 온이들이라고 한다. 이 두 아이들 덕분에 나는 수시로 딸네 집에 불려 가고,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불려 간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부를 때만 가기 때문이다.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가니까 불려 간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부르지 않을 때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다.


누가 그랬다. 딸이든 아들이든 결혼하면 절대 자발적으로 그 집에 가지 말라고. 이유를 몇 가지 댔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생각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결혼한 자녀들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면 불편해하고, 쌓이다 보면 부모를 홀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결혼한 자녀가 집에 온다고 해도 아무 때나 드나들게 해선 안 된단다. 부모의 사생활을 훼손하기 때문이란다. 결혼하면 독립된 가정을 가진 것으로 간주해서 일정 부분의 경계가 있어야 한다며.


딸을 결혼시켜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딸네가 우리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본다. 불연 듯 어미가 보고 싶어 온다면 말릴 생각 전혀 없다. 자식들이 가장 안온하게 생각할 곳이 자기들이 살던 곳, 부모가 있는 곳 아닐까. 세상에서 그런 곳 한 곳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몸보다 마음을 쉬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딸이 오지 않는다. 올 새가 없다. 대신 내가 간다. 그것도 부르기만 하면 달려간다.


딸이 나를 부르는 때는 세 경우다. 첫째는 온이들만 둘 수 없을 때다. 토요일이 대부분인데, 딸과 사위가 모두 출근해야 하는 경우다. 토요일에는 온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러면 제일 먼저 나에게 올 수 있는가 묻는다. 공적인 일이 아니고 사적인 약속이 있더라도 그런 경우, 온이들이 먼저다. 토요일이 아니라 평일에도 가끔 불려 가는 일이 생긴다. 온이들이 아플 때다. 딸과 사위가 휴가를 내거나 조퇴할 수 없는 경우에 나를 부른다. 온이들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육아와 살림과 직장일로 지쳐 딸이 병이 났을 때다. 휴일인데 혼자 온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몸을 쓸 수 없으니, 결국 나를 부른다. 내가 안 갈 수 없다. 나도 쉬어야 하지만 나보다 딸이 먼저다. 어미 노릇 제대로 못한 걸 항상 인식하고 있으므로 거절할 수 없다. 엄마, 좀 와줄래? 하면, 응 하는 대답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다. 그게 어미다. 물론 이런 일이 자주 있지 않다. 어쨌든 자발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셋째는 온이가 나를 보고 싶다고 하는 경우다. 전화로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온이가 내일 오세요 한다. 그 말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응 알았어, 내일 갈게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안 가면 온이가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온다. 아차! 싶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깨지기 때문에 안 된다. 온이와 전화할 때, 유의하는 것도 그래서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될까 봐.


마지막은 그냥 오라고 부르는 경우다. 온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딸이 병이 난 것도 아닌. 그런 때 나는 망설인다. ‘부르기만 하면 달려간다’에서 빼야 할 항목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저께 토요일에 온이네 다녀왔다.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힘들다며 나를 불렀다. 열일 제쳐놓고 달려갔다가 하루 종일 있다 왔다. 그런데 어제 전화가 왔다. 오늘 오라고. 이유는 없다. 그냥이란다.


그냥 오라니, 누구 말대로 남는 게 시간이고 자랑할 게 미모도 아닌데. 내 시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나를 보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그냥 오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더구나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온이들 보고 싶은 거 생각하면 두말도 하지 말고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쌓여 있는 일을 생각하면 가지 말아야 한다. 딸도 적당한 이유가 없으니 ‘그냥’이라고 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안다. 딸이 한 ‘그냥’의 의미를. 소고기다. 딸은 내가 소고기도 못 먹고사는 사람으로 아나보다. 나만 가면 소고기를 못 구워줘 안달이다. 이걸 나는 극진한 대우라고 본다. 지난 토요일에 저녁 먹고 가라는 걸 만류하고 왔다. 밤 운전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비도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날 사다 놓은 소고기를 이 어미에게 ‘멕이고’ 싶은 것이리라. 이건 ‘먹이고’가 아니고 ‘멕이고’다. 억지로 먹게 하는 거니까. 요즘 가끔 어지럽다. 그날도 그랬다. 딸은 그게 걱정되나 보다. 내가 소고기 사 먹었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이제 이 소재로 글 한 편 과제를 했으니 갈까. 마음의 갈등이 인다. 가면 온이들은 깜짝 놀라 달려올 거다. 어쩌면 온이는 숨고 또온이만. 이제 말문이 터진 또온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나오는 말이 얼마나 귀여운가. 그 생각만 하면 그냥 달려가야 하는데, 내일 강의와 수요일 강연 준비, 또 읽어야 할 책과 아직도 정리하지 않은 장롱을 떠올리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비라도 죽죽 내리면 그 핑계를 댈 텐데 그것도 아니고. 딸의 마음을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하는 것도 내 성정에 맞지 않는다.


오늘, 나는 망설이고 있다. 온이네 집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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