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오픈식에서
전시회 오픈식에 다녀왔다. 작업공간을 함께 쓰는 작가와 아들, 두 사람이 하는 2인전이다. 일 년 동안 둘이 그림을 그리며 그 공간에서 나눈 담론들이 전시회 주제가 되었단다. 물론 두 작가의 그림 세계는 다르다. 그것도 현저히. 어미로서 아들의 전시회 참관이 의미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것과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전에 두 번의 전시회를 했는데, 그때는 단체전이어서 오픈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 점의 그림을 미리 보았고 아들로부터 그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 내지 설명을 들었다. 대략적으로. 아들의 성향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했다.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모든 예술이 그렇다. 작가와 무관할 수 없다. 작가의 삶이나 작가의 세계관 내지 인생관이 알게 모르게 투영되어 표현되기 마련이다. 작업하는 동안 내게 숱한 이야기를 했다. 그건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 제대로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등이 내포돼 그럴 수도 있다.
아들의 그림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 동화가 가지고 있는 환상성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는 게 흥미롭고 참신했다. 거기에 ‘이상’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은 문학의 특성과 닮아 있다. 갤러리 관계자들이 나의 유전자를 장착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단다. 내가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 같았다.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아들이 해온 독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아들은 책벌레다. 지금도 그렇다.
아들의 그림에는 모두 이야기가 들어 있고, 그 이야기들이 작품마다 연결되어 있다. 한 편의 글을 읽는 느낌도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 걸린 그림 주제의 시작은 어릴 적에 읽었던 어떤 동화로부터란다. 거기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감, 소망, 꿈, 위로, 이상을 담았다고 했다. 그것을 동화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기법이 아니라 내포된 의미와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르지만 두 작가 모두 열심히 했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드로잉만 걸렸다. 드로잉은 볼수록 매력이 있었다. 다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솔직한 내면이 보이는 듯했다. 자세히 보면 미세한 감정 하나까지 읽을 수 있다. 물감으로 덮이지 않은 그 내밀함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작가의 민낯과 만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것은 정직함이기도, 성실함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었다. 따뜻하고 행복했다.
내가 추구하던 이상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 공감되고 감동되었다. 척박한 땅과 같은 현실을 갈고 다듬어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지난한 길을 가고 있는 두 작가의 삶의 철학, 그것이 보였다. 그렇게 걸어가야 하는 게 그들에게는 사명일까, 재미일까.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재밌나 보다, 할 만한가 보다,라고 느꼈다. 그 모습 또한 공감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물질로 환원돼야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술이 아닐까. 거기에 의미를 두고 그 행위를 하는 이들, 그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물질로 환원되어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데에 있다. 예술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숱한 예술가들이 고민했던 것을 아들 때문에 한다.
아들의 표정은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 되었다. 본인이 행복하다는 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복잡한 생각 속에서 마음을 다독거렸다. 푯대를 세우고 그것을 행해 걸어가고 있으니 내가 할 건 응원이리라.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본인이 선택했고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니 되었다. 믿고 지켜보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마음을 다독이며 그림을 보노라니, 나도 행복해졌다.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어 그림이 나에게로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아들은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픈식 하루를 남겨놓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설레기도, 기대되기도, 두렵기도 하다며. 그 말에 나도 첫 책을 낼 때 그랬다며 공감해 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부분이다. 전시회 준비하며 많이 배울 수 있고, 또 성장하게 될 거라며,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그 정도. 더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없다. 누구라도 자기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므로. 그게 각자의 몫이므로.
오픈식은 조촐하지만 의미 있었다. 아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단체전 이후 첫 2인전이니까. 내년에는 개인전을 할 거라고 했다. 수채화와 유화로. 그때는 더 성장해 있으리라 기대한다. 두 작가의 그림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위로와 소망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그랬듯.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의외로 소박한 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