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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12. 2023

이것도 병은 병이다

인정하기 

    

내가 현대의학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신봉하는 것도 아니지만. 의식 저편에 불신이 똬리를 틀고 들앉아 있는 것도 맞다. 도대체 낫지 않는 손목을 보면서 그 불신은 더 깊어졌다. 아픈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 두어 달 가까이 치료를 받았는데 차도가 거의 없자, 한 달이 넘도록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온찜질을 하고 웬만하면 손을 쓰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병원에 가봤자 의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곤 했다. “어때요?” 조금도 낫지 않는다고 하면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며 또 말했다. “손을 자꾸 쓰니까 그렇죠. 약 드릴게요. 물리치료 하고 가세요.” 그 모습에 약 올라 물리치료받을 시간이 없다며 처방전만 들고 나오곤 했다. 가끔 받긴 했지만. 사십여 분, 물리치료받는 시간이 지루하기만 했다. 이 뻘건 불을 쬐는 게 효과가 있을까, 전기치료는 찌릿찌릿하기만 한데 이게 무슨 치료가 될까. 약이라고 주는 두 알, 한 알은 소화제요, 한 알은 소염진통제란다. 시간이 가야 낫는다고 하니, 쓸데없이 약을 몸에 넣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불신 가득한 마음이니 무슨 효과가 있었으랴. 아무튼 한 달이 넘도록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들딸 앞에서 아파도 아프단 소리를 못했다. 저절로 악 소리가 나올 지경이 되어도 참았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병원 약을 두 달 가까이 먹어본 사람은 알 거다. 약 먹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진통제 한 알도 삼키기 싫어하는 나, 병은 병이다. 알 수 없다. 왜 그렇게 약 먹기가 싫은지. 거의 병적이다. 


나는 감기 걸려도 약 먹지 않고 견딘다. 두통이 와도, 치통이 와도 최대한 참는다. 남편이 말했었다. 약 먹다 돌아가신 조상이 있느냐고. 눈만 흘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약 먹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단지 내가 좀 병적으로 약을 싫어할 뿐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러니 어쩌랴. 우스운 건, 건강식품은 잘 먹는다는 거다. 부득이 약을 먹게 되면 그렇게 최면을 건다. 이건 건강식품이야,라고. 마음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 이미 뇌리에 입력된 약과 건강식품이라는 정보 차이 때문이다. 


추석 연휴 때 온이들 봐주러 두 번이나 다녀왔고, 그전에 장거리 차 운행을 자주 했으며, 지난 일요일 시골에서 있는 결혼식에 갔다 오느라 또 긴 시간 운전했다. 거기다 청탁받은 원고 몇 개 마감까지. 손목을 써도 보통 많이 쓴 게 아니다. 살림이야 늘 하는 정도라 해도, 육아와 장거리 운전, 타이핑 등이 손목에 무리를 초래한 게 틀림없다. 


며칠 전부터 통증이 심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손목뿐 아니라 손가락에서 어깨까지, 자다가도 깰 정도로 아팠다. 그렇다고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잖은가. 최소한으로 쓰고 찜질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염증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플 수 없다. 가학증이 있는 사람처럼 왜 나는 이다지 나를 학대하고 있는 것일까. 불쑥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병이다, 참으로 병이다. 병원에 가기 싫고 약 먹기 싫은 것도 병이라고 스스로 진단 내렸다. 


진단을 내렸으니, 이제 치료해야 한다. 어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여전히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어때요?” 저 의사도 참 변하지 않는다. 쏘아주고 싶었다. “어떻긴요, 아프니까 왔죠.” 내 말에 의사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손 내봐요.” 손을 내밀었다. 손목 아픈 부위를 꾹 누른다. “아프죠? 약 드릴게요. 물리치료, 오늘도 시간 안 되시죠?”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의사와 반대로 하고 싶었다. “아뇨, 돼요. 물리치료받을게요.” 내 말에 의사가 빙긋 웃었다. 그것도 입만. 쳐다보지도 않고. 


의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말 안 듣더니 이제 순복하는구나 하면서. 알게 뭔가. 아프지 않으면 되었지 싶었다. 일어서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의사가 말했다. “자주 오셔서 물리치료 받으세요. 손 웬만하면 쓰지 마시고요.” 아마 또 그 냉소적인 웃음을 입으로만 웃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 역시 알게 뭐람.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나도 웃음이 나왔다. 참 나도 못 말리는 인간이다 싶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통증이 심해서 그럴까. 찌릿찌릿 전기치료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뻘건 불빛을 쏘아대는 원적외선 치료도 따끈따끈하니 좋았다. 사십 분 시간이 금세 흘렀다. 물리치료가 끝나고 손목을 움직여보았다. 어, 신기하다. 통증이 훨씬 덜하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다시 손목을 흔들어보았다. 덜 아프다. 그렇게 무시했던 물리치료가 효과 있다는 게 입증된 것 아닌가. 물리치료실이 늘 가득 차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병원 치료 시작하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었다. 자판에 손을 얹어보았다. 지금까지 이야기, 그걸 소재로 한 편 쓰기로 했다. 약 싫어하고 병원 가기 싫어하는 것도 병은 병이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병인 것을 알았으니 치료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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