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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n 25. 2023

갈등 후에 오는 것

단순하게 생각하기

     

어제 있었던 일이다. 차를 가지고 나갈까 갈등하다 놓고 나왔다. 복잡한 도심으로 들어갈 때 늘 망설인다.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할 때 더욱 그렇다. 눈이 올 때는 미련 없이 놓고 나가지만. 어제도 그랬다. 34도까지 올라갈 거라는 날씨 예보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게 뻔한, 둘의 상황 사이에서 망설였다.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한 거야, 그 더위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해. 그냥 나가자. 혼잣말까지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즉흥적인 면이 적은 편이다. 갈등이 늘 많다. 웬만한 일을 결정하게 될 때, 수없이 생각하고 갈등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잰다. 그래도 나를 즉흥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건, 오래 깊이 갈등한 다음 결정하고 나면 즉시 실행에 옮기기 때문인 듯하다. 갈등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그러다 결정하면 즉시 실행한다. 내가 즉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집 앞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차를 놓고 나온 걸 후회했다. 아스팔트를 녹일 듯 내리쬐는 햇볕은 초여름 날씨가 아니었다. 삼복더위를 능가했다. 집안에서 시원하게 있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나가, 목적지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놓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정해진 장소로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이렇게 더운 날씨인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산책을 해도 저녁에 했으니 몰랐다. 여름이 이렇게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갈등했다. 집으로 들어가 다시 차를 가지고 나올까 말까. 가로수 그늘에 서 있어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차가 지날 때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내게 엄습해 왔다. 갈등을 부추겼다. 겨우 이 문제 하나 가지고 이렇게 갈등하며 살다니, 참 나도 인생 복잡하게 산다고, 속으로 웅얼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을버스가 내 앞에 섰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냉큼 올랐다.


차 안은 비어 있었다. 내가 첫 승객이다. 시원했다. 손에 들고 있던 손풍기를 껐다. 두 개 정류장을 지나자 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래도 에어컨을 세게 튼 덕에 차 안은 여전히 시원했다. 승객들의 옷차림과 들고 있는 가방, 신고 있는 신발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자차로 움직일 때와 달리 마음이 한가했다.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뙤약볕 아래 핀 노란 금계국, 유난히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당연하게 보이던 것들이 달라 보였다. 저 뜨거운 여름 볕을 견디다 보니 더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일까. 금계국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근처에서 내려 약간 걸었다. 도심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산을 쓴 사람, 부채질을 하는 사람, 그냥 걷는 사람 등 다양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나는 다시 손풍기를 꺼내 들었다. 바람세기를 가장 세게 했다.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후회했다. 도로가 막히거나 말거나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자차로 움직여야 했다고. 내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였던가, 이깟 더위를 못 참고 투덜대다니. 이런저런 생각이 혼재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소용없다. 


사람은 때로 이렇게 아무 소용없는 짓에 매달릴 때가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타박하고, 자책한다. 그처럼 어리석은 게 없는데. 내가 그랬다. 지금 내게 형성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연륜이 이런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다. 겨우 이깟 더위 때문에,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하다니. 덜돼도 아주 덜된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실소가 나왔다. 땡볕이 쏟아지는 도심 도로에서 실실 웃었다. 


나를 파악하고 나니 더위가 괜찮아졌다. 뜨거운 저 햇볕은 아무 죄가 없다. 그러니 원망할 일도 없다. 내 행동을 자책할 필요 역시 없다. 이미 결정된 일에 대하여 후회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이제 목적지가 바로 저긴데. 저만큼에 건물 이름이 보인다. 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시원할 터이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웃음꽃을 피우리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모임을 마치고 귀가할 때, 지하철을 이용한 후, 마을버스를 타지 않았다. 걸었다. 집까지 4.5km. 더위는 여전했고 볕도 여전했다. 그래도 걷기로 작정했다. 금계국 때문이다. 그 군락지를 걸어서 지나고 싶었다. 운동량도 채우고. 일석이조다. 어릴 적엔 이보다 더 뜨거운 날 감자를 캐기도 했는데, 이깟 더위쯤이야 싶었다. 걸을 만했다. 한낮과 달리 오후에는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실소 대신 콧노래가 나왔다. 간사한 게 인간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땀이 흘러 옷이 젖어 있었다. 걸음수를 확인했다. 12,345보. 오, 걸음수가 재밌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 이 더위에 4.5km를 걷다니. 정녕 금계국과 운동량 때문이었을까. 더위를 못 참아 투덜댄 것을 반성하는 것이었을까. 참을성 없는 나를 담금질한 것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걸으면서 도중에 마을버스를 탈지말지 갈등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걷자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제 웬만하면 단순하게 생각하리라. 갈등하지 말고. 어제 깨달았다. 여름을 잘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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